
검찰이 난국에 휩쓸렸다. 한나라당 경선에서 나름대로 중심을 잡으며 ‘정치 검찰’의 오명을 벗으려던 시도도 유야무야로 흘러간 상황. 검찰이 견뎌내야 할 상황은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
고소·고발전 재개
정치권에 검찰 개입의 2막 신호탄을 터뜨린 것은 청와대의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 고소다. 한나라당은 국정원·국세청의 ‘이명박 후보 죽이기’ 공작정치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배후로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를 지목했다. 청와대는 이 후보와 이재오 최고위원, 안상수 원내대표, 박계동 공작정치분쇄 범국민투쟁위원장을 명예훼손 및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청와대는 고소의 근거로 이 후보가 “열린우리당의 ‘이명박 죽이기 플랜’이 확인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노 대통령과 김정일이 공격하더니 안팎에서 총공세가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 결탁 조짐이 보인다”(6월13일 한나라당 창원시당 당원간담회), “지금 국정원, 국세청 할 것 없이 여러 정부기관이 정권 연장을 목적으로 하는 전략을 꾸미고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은 만천하가 다 알고 있다. 권력의 중심세력에서 이것을 강압적으로 지시하고 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참여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9월3일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최고위원회) 등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문재인 비서실장 명의의 고소장이 접수되자 검찰은 이 사건을 배당해 수사를 진행키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선거 관련 사건은 신속하게 처리하려고 하고 있다”며 속전속결을 외쳤다.
정치권은 수사가 늦어지게 되면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곳이 ‘정치검찰’ 혹은 ‘권력의 시녀’라 지칭되는 검찰 자신일 것이라며 “검찰의 빠른 수사는 정치권에 휘둘려 희생양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민단체도 가세
검찰은 청와대의 고소에 대해 고소 내용과 취지, 명예훼손 대상 등을 검토하고 고소인을 먼저 소환해 조사한 뒤 발언의 구체적인 내용과 진의, 근거,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이 후보 등의 소환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도 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더욱이 대통령 후보도 법을 지켜야 한다. 검찰 조사에 필요하다면 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강재섭 대표는 “한나라당은 검찰 수사가 편파적이고 야당후보 죽이기에 나서면 결코 후보를 검찰에 내보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 등 당내 반발 의견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 뉴라이트 부정선거추방운동본부가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 박성수 대통령 비서실 법무비서관 ‘공직선거법 9조’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위반했다”며 서울중앙지검에 형사고발하며 고소·고발전을 확산시켰다.
이들은 고발장에서 “청와대가 정당하게 사용돼야 할 국가공권력을 악용해 다가올 대선국면에서 고소·고발을 남발함으로써 선거과정을 혼탁케 하고, 정당의 정치행위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해 강경 대응함으로써 신공작정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청와대가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선 후보측에 대해 형사처벌을 구하고, 그 후보측과 법적·정치적 공방을 주고받는 동안 선거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만큼 검찰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양측의 공방 수준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정아씨 비호 의혹과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로비 의혹 등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권력형 비리 의혹’ 사건이 정국을 뒤흔드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변양균 전 실장의 사건은 정치권과 청와대의 각 세우기로 흐르고 있다. 정윤재 전 비서관의 로비 의혹 또한 한나라당으로까지 불길이 번지고 있다.
권력형 비리 확산 확산

홍준표 당 권력형비리조사특위 위원장은 “대통령과 관련한 내용도 나올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 대선자금 관련 문제를 포함해 2, 3가지 문제가 조사 중이며 당선축하금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은 “검찰의 수사결과가 당의 조사와 다를 경우 국정조사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해 검찰에 채찍질을 가했다.
홍 의원은 또 “송광수 전 검찰총장이 노 대통령 대선자금에 대해 수사하고도 상당 부분 은폐됐다는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면서 “그 때 대선자금 수사가 형평있게 진행됐느냐는 것을 이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 당시 과연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했고, 은폐된 게 없었느냐는 말을 하며 수사 관계자들이 의심을 품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정가 소식통은 “당의 조사가 흐름을 타기 시작할 경우 노무현 대통령을 위시한 청와대뿐 아니라 검찰도 후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한나라당은 이후 대선정국에서 검찰의 개입을 피하기 위해 강도 높은 조사를 펼칠 것이고 검찰의 조사가 이에 준하지 못할 경우 ‘검찰 때리기’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檢 발목 잡기 계속
범여권의 이명박 검증 공세도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국정감사를 ‘이명박 국감’으로 만들겠다며 범여권의 대선후보 진영마다 이명박 후보를 낙마시킬 자료를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가 이미 정치권을 휘감은지 오래다.
정치권은 그동안 정치권의 진행구도를 봤을 때 검증 공세는 고소·고발과 검찰 끌어들이기로 이어질 것이라며 검찰이 필연적으로 여·야 공방의 중심에 놓이게 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정치권이 대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 검찰을 정치권으로 끌어 들인다”며 울분 섞인 한숨을 토해냈다.
청와대의 이명박 후보 고소와 권력형 비리를 두고 한나라당의 검증 공세, 또 ‘이명박 X파일’의 부활로 칭해지는 범여권의 이 후보 검증공세로 검찰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검찰의 수사 내용에 따라 일희일비를 반복하는 정치권과 정치권의 커져가는 요구와 불만의 목소리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검찰의 딜레마가 계속되며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