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시내에 진풍경이 벌어졌다. 지난 9월11일 주먹계 원로들과 아우들 3천여명이 총집합하는 이색 광경이 연출된 까닭이다. 이날 모임은 천안 세종웨딩홀에서 열린 일명 ‘천안곰’ 조일환의 고희연을 축하하기 위해서 마련된 자리다. 조일환은 1950~ 1960년대를 풍미했던 의송 김두한의 공식 후계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주먹계에서는 그를 ‘큰형님’이라 부르며 따르고 있다. 특히 이 날엔 주먹계의 전설 명동파의 신상현(신상사)과 ‘오따’로 더 유명한 정종원이 자리를 빛냈고, 범서방파 김태촌의 부인이 축가를 불러 눈길을 모았다. 주먹계 실세들이 한자리에 모였던 조일환의 고희연. <시사신문>이 그 현장을 찾아가봤다.
칠순 된 조일환 내외 ‘신상사파’ 신상현에게 큰 절 올려
김두한 미망인과 한때 라이벌이었던 조창조 참석해 눈길

화환을 실은 차들이 끊임없이 오가자 웨딩홀 입구는 물론 웨딩홀 앞 작은 공터까지 화환들로 금세 가득 찼다. 영화배우 김보성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화환도 눈에 띄었다.
아우들의 경호 막중한 임무
화환을 둘러보는 기자 앞을 스쳐지나가는 검은 세단. 차에서 내리는 중년의 한 남성에게 수십 명의 아우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형님, 오셨습니까.”
‘형님’들이 속속히 도착하자 웨딩홀 입구는 어느새 붐비기 시작했다.
5층 연회실에는 식순이 진행하기 전부터 많은 하객들이 참석해 있었다. 그 가운데 조일환은 연회장을 거닐며 지인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주먹계 선후배들의 악수가 수차례 오가며 그들은 서로 새 명함을 돌리기도 했다.
‘형님’들의 얼굴에는 미소와 여유가 감돌아 연회장의 분위기는 경쾌했으나 ‘병풍’처럼 서 있는 아우들의 모습은 사뭇 진지했다.
취재진이 ‘형님’을 가리키며 성함을 묻자 아우들은 “당신이 누군 줄 알고 말해주겠냐”며 대답을 피했다. 그리고는 중간쯤 되는 형님에게 취재진의 존재를 알렸다. 시시콜콜한 사건들은 물론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윗선에 보고하는 눈치였다.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내는 그들의 표정에서 전국의 ‘형님’들이 한 자리에 모인 만큼 아우들의 경호 임무가 막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3시가 되자 사회자가 고희연 시작을 알렸다. 연회장 입구는 하객들로 더욱 붐비기 시작했고 이내 연회실 2곳을 가득 채웠다. 3년 전부터 하나님을 믿고 신앙으로 새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조일환의 뜻에 따라 고희연은 예배로 시작됐다.
그런데 유독 눈길을 끄는 인사가 사회자로부터 소개됐다. 사회자의 소개를 받고 무대에 오른 50대 중년 여성이다. 그는 바로 범서방파 김태촌의 부인 이아무개다. 이아무개는 김태촌이 청송교도소 시절 직접 작사·작곡한 ‘정처 없이 살아온’이라는 제목의 복음송을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하객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하나같이 ‘가수 뺨친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땀으로 흠뻑 젖은 이아무개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듯 황급히 자리를 떴다.
예배를 마치고 이어진 순서는 조일환의 수여식. 그 동안 사회봉사와 일본에 대항한 민족운동을 인정받아 현 미국 조시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봉사상을 전달받았고, 각종 단체에서 공로상과 금상, 보건상이 차례로 수여됐다.
그리고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생존해 있는 주먹계 중 현재 73세로 최고령 웃어른인 신상사파의 신상현에게 조일환과 그의 아내 박경자가 큰절을 올렸다.
주먹계 실세들 90% 방문
“형님, 절 받으십시오.”
이날 자리에 참석한 아우들의 마음을 모두 담아 이들의 대표로 조일환 내외가 큰절을 올리자 신상현은 이에 고마움을 표하며 칠순을 맞은 조일환에게 “건강하고 행복하라”는 인사를 건넸다. ‘오따’ 정종원 역시 신상현과 함께 참석했으나 식이 시작하기 전에 황급히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신상현은 다른 일정으로 서둘러 고희연 자리를 마무리했다.
사회자는 막간을 이용해 이인재 국회의원과 최창식 대한씨름협회장의 축전을 소개하며 하객들을 일일이 소개하지 못하는 점에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김태촌 처 복음성가로 축하, 조양은 내외 노출 꺼려 불참석
아우들 “후배들의 귀감이 되셨으니 이제는 편안한 여생을”
조일환은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아우들에게 “어린 시절 주변 사람들로부터 내가 과연 70세까지 살 수 있겠느냐는 의심을 많이 받았는데 어느덧 고희가 됐다”며 “끈질긴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고 감회를 밝혔다.
이어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 곁에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며 “지금까지 보살펴준 분들께 은혜 갚을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삶을 살겠다”고 약속했다.
예정대로라면 이날 고희연은 오후 3시에 시작해서 7시에 마쳐야 했지만 7시가 훨씬 지난 시간에도 조일환의 가족들과 그의 측근들은 자리를 일어설 줄 몰랐다.

조일환과 쌍벽을 이뤘던 조창조와 김두한의 미망인도 자리에 참석했다가 서둘러 일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조일환의 친구인 조춘은 일찍부터 자리를 찾아 우정을 과시했고, 지각생으로 프로레슬러 이왕표가 뒤늦게 참석했다.
하지만 당연히 참석할 줄 알았던 양은이파 조양은의 부인은 참석하지 않았다.
조일환은 자신의 친구 딸과 조양은의 중매를 섰던 인연이 있다. 주먹계 한 인사는 조양은이 보석으로 나오긴 했지만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라 얼굴 노출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주먹세계 부끄럽지 않다”
이날 유독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한 사람이 눈길을 모은다. 그는 바로 고희연을 총괄 지휘했던 조일환의 직계후배 윤호현(44)이다. 그는 지역의 선후배들에게 고희연을 알리고 행사 당일 후배들을 동원시킨 장본인으로 조일환의 곁을 지킨 지 무려 20년이 된 최측근 인사다. 조일환과 함께 이른바 ‘단지사건’을 지휘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윤호현은 “건달들이 나라를 위해 뭔가 일을 해야 할 때가 왔다는 형님의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며 “(단지사건은) 칭찬 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지만 정부에서 세력다툼으로 오인했고, 여론 역시 나쁜 시각으로 보는 것 같아 억울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주먹세계를 단 한 번도 부끄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당당히 밝혔다.
한편 이날 조일환의 고희연 소식은 사법당국의 주목을 받기 충분했다. 전국 주먹계 거물급 원로들이 대거 참석하는 이유에서다. 고희연장 곳곳에서 사복경찰들이 목격됐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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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불곰 조일환 일문일답 - “진정한 주먹은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법”

- 아침부터 정신없이 준비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오늘 고희연을 축하하기 위해 주먹계 인사들 90%이상이 참석했다. 주먹계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인사를 나눌 수 있어 반갑고 기뻤다. 특히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범죄예방에 적극적으로 돕는 인사들이 자리를 빛내줘 고마웠다.
▲ 정말 많은 사람들이 축하하기 위해 왔는데 누가 참석했나.
- 주먹세계라는 것이 그렇다. 한번 전쟁이 일어나면 매스컴에 자주 거론된다.
보통 매스컴에서 자주 보였던 인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일일이 어느 지역의 누가 왔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주먹세계에 몸담고 있는 대부분의 후배들은 거의 찾아와서 인사를 나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진정한 주먹이란 명예를 소중히 지키되 사회에 봉사하며 밝고 명랑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주먹을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을 버리고 하나의 협객으로 인정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