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의 전횡인가. (주)신일 채권단의 억지 주장인가. 동양그룹 동양메이저(주)의 신일 인수 파기 건과 관련해 양측의 공방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신일 인수를 공식화했다가 파기한 동양메이저 측은 계약해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반면 신일 채권단은 동양메이저의 부도덕한 행태를 꼬집고 있다. 과연 양측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동양메이저와 신일 채권단 간의 불꽃 튀는 공방전을 집중취재 했다.
동양… 실사 통해 실망 “조건부 가계약으로 해지 가능”
일단 이번 동양메이저의 신일 인수 전말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신일이 최종 부도를 맞은 것은 지난 6월13일, 어음 37억원을 막지 못하면서다. 신일 부도는 업계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시공능력이 지난해 57위에 이르고 부채 비율도 건설업계 평균보다 낮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결국 부도를 맞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지방의 경기 위축에 따른 미분양 사태를 원인으로 꼽았다.
이후 M&A(인수합병) 시장에 매물로 나온 신일에 동양메이저가 손길을 내밀었다. 8월초부터 시작된 동양메이저의 신일 인수 시도는 마침내 ‘신일 주식 양·수도 계약’으로 이어졌다. 지난 8월21일 동양메이저가 신일을 인수한 것이다.
당시 동양메이저는 신일을 포함한 관계사 6개 모두의 지분 100%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알려진 인수가격은 5백50억원. 여기에 1조원에 육박하는 신일의 보증채무까지 떠안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러나 동양메이저는 인수계약 보름만인 지난 9월5일 신일 인수 계약을 전격 파기했다. 신일 인수가 기정사실로 받아 들여졌던 만큼 신일 채권단의 분노가 표출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인수 계약 파기로 후폭풍 심각
그렇다면 동양메이저가 신일 인수를 파기한 까닭은 무엇일까. 동양메이저가 내세운 인수 포기 이유는 ‘공개목록 미제출’이다. 공시에 따르면 “지난 8월21일 신일을 인수하기 위한 계약을 맺었으나 계약의 전제로 명시돼 있던 공개목록이 제공되지 않는 등 ‘주요 계약 조건’이 이행되지 않아 해지 한다”고 되어 있다.
이에 대해 동양메이저 측의 주장을 들어 보자면, 신일이 불가피하게 공개목록에 대한 기한 연장을 요구해와 시일을 더 줬음에도 불구하고 공개목록을 확인해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신일과 맺었던 계약은 완전한 본 계약이 아닌 조건부 가계약으로서 당시 계약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 계약서 안에 적혀 있었다는 게 핵심이다. 때문에 실사 당시 신일 측의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계약해지가 정당하다고 동양메이저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동양메이저의 인수 계약 파기에 대해 신일 채권단의 분노가 폭발했다. 동양메이저 측의 공시가 나온 직후 신일 채권단은 성명서를 통해 “동양그룹의 일방적인 부도덕한 계약파기”라며 공개 주장을 내놨다. 또한 신일 채권단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지난 9월13일 동양종합금융 건물 앞에서 항의집회를 가지는 단체행동의 표출로 이어졌다.
신일 채권단 주장을 구체적으로 보자면, 신일과 관계사 6개사 모두 주식양수도 계약과 관련해 동양 측의 회계법인과 법무법인에게 공개목록 자료를 모두 제공했다는 것이다. 즉, 동양메이저 측이 인수 계약을 위해 요구한 자료 일체를 보냈다는 얘기다.
특히 동양메이저 측이 문제를 삼은 공개목록 부분은 보다 완벽한 자료제공을 위해 8월29일까지 동양그룹과의 협의에 따라 날짜를 연기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일 측은 9월5일 동양메이저 측에 연기한 자료를 우송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양메이저에서 인수 철회 이유로 내세운 공개목록 미제출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신일 한 관계자는 “이미 실사를 다 마치고 기한 내에 자료제출도 끝난 상태였으며 보완 요청 시에 미비한 사항들에 대해서는 하루 이틀 가량 보완할 수 있는 기한을 주는 것으로 구두 협의했는데 이를 빌미 삼아 인수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며 “계약 해제를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동양메이저의 인수 계약 파기로 인한 신일 측의 타격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신일 채권단 관계자는 “기업회생 개시 결정 전 동양그룹이 인수의사를 밝혀와 이를 취하했는데 갑작스런 인수 철회에 회생의 기회를 놓쳤다”며 “협력업체 및 관계직원과 가족 5만6천여명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어려움에 놓였다”고 말했다.
예컨대, 인수 과정 중에 계약이 파기돼 기업 이미지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고, 이에 따라 다른 회사에서도 인수할 수 있는 기회마저 놓쳤다는 것. 또한 지난 6월 신일의 부도로 연쇄 부도 위기에 몰렸던 하도급 업체들이 동양그룹이 인수한다는 소식에 힘을 얻어 사채시장에서 돈을 끌어다 쓰는 등 회사를 정상적으로 운영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지만, 결과적으로 처음보다 더욱 막대한 손해비용만 가중됐다는 주장이다.
동양메이저는 신일 채권단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일방적 계약 파기는 말도 안된다”고 재반박하고 있다. 신일이 제출하기로 한 공개목록을 비롯해 실사에 있어 제대로 협조가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 혼란 비난 피해갈 수 없을 것”
결국 동양메이저와 신일의 공방전은 법정싸움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신일은 언론과 대외공문을 통해 기업 인수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면서 사회적 약속을 하고서도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것에 대해 대기업의 “사회적 폭력”이라고 주장하며 동양 측에 대한 손해보상청구소송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양측 공방의 핵심 중 하나인 공개목록이 무엇인지 업계의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동양메이저 측은 이 부분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는 상황이다.
동양메이저 한 관계자는 “신일 측과 공개하지 않기로 내부적인 합의가 있었던 사항이라 이를 공개할 수 없다”며 “발설 할 경우 신일에게 소송의 빌미를 안겨주는 것과 다름없으며 신일과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흑자부도로 알려진 회사라 알짜배기 회사인줄 알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경영시스템이나 감당하기 힘든 재무구조였다”며 “실사하면서 실망스러운 부분이 보이자 무리해서 인수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속내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