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지난 여름 7월 18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의 한 대학원생이 자신의 지도교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탄원서 한 통이 대학 당국에 도착했다. 그 후 이 사건을 심의한 중대 교수로 구성된 <진상조상위원회>, <성윤리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끊임없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 안개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고광식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장)을 만났다.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김 : 지난 7월 12일, A 학생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피해자의 주장은 구체적으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이 중 어떤 것에 해당합니까.
고 : 성폭행입니다.
김 : 그때 상황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
고 : 피해자 A 학생은 7월 12일 오후 1시 안성 캠퍼스에서 자신의 논문지도교수인 B 교수를 만나 15분 정도 걸리는 H식당에 갔다고 합니다. B교수는 거기서 A에게 산사춘을 큰 잔으로 넉 잔, 거의 짬도 안 주고 거듭 마시라고 강요했다고 합니다. B 교수 자신은 운전을 해야 한다면서 안 마셨답니다. 그 다음 B는 A를 자신의 숙소로 데리고 갔답니다.
김 : 왜 B교수는 A를 연구실이 아닌 숙소로 데리고 갔다고 합니까.
고 : B교수는 연구실은 덥고 숙소에 에어콘이 있으니 바람 좀 쐬고 옮기자고 했답니다.
김 : A가 성폭행을 당한 12일부터 탄원서를 제출할 때까지 6일 동안 피해자 주변 상황에 대해 알고 계신 게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고 : A 학생은 수치스러워 사건 직후에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으려고 했답니다. 그러다 남편에게 숨길 수 없어 말을 꺼냈는데 분개한 남편이 바로 B 교수한테 법률적으로 맞대응을 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놀란 A가 남편의 즉각적인 행동을 막았다고 했습니다.
김 : 고광식 위원장님은 언제부터 이 사건 속에 개입하게 되었습니까.
고 : 7월 21일 B 교수로부터 한 여학생이 ‘소설’을 쓰고 있으니 피해보상을 해주는 선에서 중재를 부탁한다고 해서 A를 만나게 됐습니다. 일산에 있는 어느 레스토랑에서 오후 6시부터 12시까지 A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A의 진술은 구체적인데 비해 B 교수의 주장은 추상적이어서 B 교수에게 의혹이 갔습니다.
김 : A는 사건 뒤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하던데요.
고 : 그렇습니다. 충격을 받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답니다. 산부인과에 진료 신청한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 : 이 사건과 관련한 인터넷 블로그 등을 보면 피해자 A가 현재는 학교를 잘 다니면서 희희낙락하고 있다는 그런 글들이 올랐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 : 정신과 담당의가 A에게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학교를 다니는 게 좋다고 권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피해자라고 해서 항상 심각한 표정으로 있으란 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가 A를 지켜보니 기뻐하다가도 갑자기 시무룩해질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김 : 일종의 … 조울증세입니까.
고 : 조울증은 아닙니다. 급성스트레스반응이라 합니다. 감정의 기복이 있고, 불안한 증세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현재 치료를 위해 약을 복용하고 있답니다. 아까 같은 비방성 글은 인터넷 언어폭력입니다. 뿐만 아니라 A에 대한 2차적 폭력에도 해당합니다.
김 : B 교수는 7월 28일 소속학과 교수들에게 피해자 A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이겠다고 전화로 말했습니다. 그때 피해자측 요구 사항이 무엇이었습니까.
고 : 사직과 피해보상 그리고 사과문 발표입니다.
김 : 그렇게 스스로 합의까지 약속해놓고서 이틀 뒤 중앙대의 내규인 ‘성희롱 성폭력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에도 없는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합의 결정을 번복하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고 하던데.
고 : A가 피해사실을 입증하는 강력한 물증을 갖고 있는 줄 알고 사태를 뒤에서 조용히 해결하려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자 번복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김 : A와의 합의를 약속해 놓은 터에 지난 7월 30일 ‘규정’에도 없는 <진상조사위원회>가 열린 것은 제가 보기에 이 사건의 첫 번째 의혹입니다. 피해자-가해자 합의가 이루어진 뒤에 학교 당국에서 ‘진상조사위원회’가 열릴 필요가 있었을까요.
고 : 저도 그 점이 석연치 않습니다.
<진상조사위원회>의 진상이 궁금하다
김 : 피해자는 <진상조사위원회>에 어떻게 참석하게 됐나요.
고 : 자신은 공식적으로 ‘사과’ 받는 날인 줄 알고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불러 놓고 위원회 측은 30분 간 문을 걸어 잠그고 안에서 뭔가 토의하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김 : 여러 보도 자료를 보면 그때 피해자의 인권을 유린하는 질문들이 나왔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입니까.
고 : 왜 그 숙소에서 도망가지 않았느냐. 왜 물어뜯고 반항하지 않았느냐. 그날 입은 옷은 어떻게 처리했느냐. 이런 질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피해자는 <진상조사위원회>가 자기 편인 줄만 알고 모든 것을 사실대로 밝혔다고 했습니다.
김 : <진상조사위원회>가 열리고 있을 때 C 교수가 반강제로 쫓겨났다고 하는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고 : <진상조사위원회>에서 A의 편은 C 교수 한 분밖에 없었습니다. B교수 조사가 시작되기 전 B교수의 요청에 의해 C 교수가 쫓겨났습니다.
김 : 그렇다면 ‘규정’에도 없는 <진상조사위원회>가 1주일 동안 밝혀낸 진상은 대체 무엇입니까.
고 : <진상조사위원회>는 첫째, 피해자의 발언은 신빙성이 없다. 그 이유로서 학교 당국에 제출한 피해자 탄원서의 내용과 <위원회>에서의 피해자 발언 내용이 일관성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가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김 : <진상조사위원회>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지적하면서 일관성이 없다고 주장했습니까.
고 : A가 B 교수가 자신의 숙소에서 목욕을 한 시점이 정확히 성폭행한 이후인지 이전인지 불명확하게 진술한 대목을 고집스럽게 문제 삼았습니다.
김 : 어쨌든 그러다 사건이 발생하고 한 달을 넘긴 지난 8월 14일에서야 <성윤리위원회>가 조직됐습니다. 그런데 8월 16일 A는 이 사건을 경찰에 고소하게 됐습니다. 이미 <성윤리위원회>가 열린 마당에 A가 이 사건을 경찰에 고소하게 된 까닭은 무엇입니까.
고 :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성윤리위원회>의 ‘해당 사항 없음’은 천부당

고 : B 교수 주장에 따르면, 사건 발생일인 7월 12일 그 날 오후 1시에 고삼 저수지 근처 H식당에서 A와 음주를 곁들인 식사를 마치고 3시에 서울행 버스에 태워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교수 숙소의 CCTV를 검토한 결과, ‘3시 36분 숙소 들어감, 4시 49분 숙소 나감, 5시 8분 숙소 들어옴’으로 B의 차가 찍혀 있습니다. 이 시간 기록은 피해자 A의 진술과 일치합니다.
B교수는 3시 전후로 만난 사람들의 증언(그 중 스쿨버스의 운전사 증언도 포함돼 있습니다)을 확보, 알리바이를 입증했다고 ‘서면’으로 주장했으나 나중에 자신이 시각을 착각했다는 식으로 말을 뒤집어 버렸습니다. 이 불성실하기 짝이 없는 답변에 대해서 <성윤리위원회>는 ‘해당 사항 없음’이라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김 : 만일 B 교수의 주장이 ‘의도성 거짓말’임을 경찰이 입증한다면, 성범죄와 관련해 결정적인 위증과 증인 조작이란 형사상의 책임도 져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8월 21일 <성윤리위원회> 2차 회의에서 학생위원이 교체됐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고 : 학생 대표 선출 과정에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학생 대표는 규정상 대표의결기구를 통해서 선출되어야 함이 마땅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윗선 지시로 선출됐습니다.
김 : <성윤리위원회>의 조사 활동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A가 운 적이 있다고 하는데, 왜 울었습니까.
고 : <진상조사위원회> 활동에서 A의 인권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 모 법대 교수에 대하여 기피신청을 냈는데, 그 교수가 <성윤리위원회>에도 참석하게 되어 1시간 30분이 넘는 실랑이 끝에야 겨우 기피 신청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상황에 속이 상한 A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규정’에 보면 피해자로부터 특정 위원에 대한 기피신청이 있을 경우, 상당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그 위원을 교체(제2절, 10조)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김 : 8월 22일 A는 B 교수와 합의했으니 조사분과위원회 활동을 중지해도 좋다는 연락을 한 적이 있다고 학교 신문 보도에 나와 있습니다. 제가 조사한 바로는 B 교수는 전부 5번에 걸쳐서 합의안을 제시했다가 다시 번복했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고 : 사실 여섯 번입니다. 한 합의안에서 B 교수는 성폭행 사실은 인정하지 않고 “나로부터 골치 아픈 거에 대해서 사과한다”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형법 처리는 면해 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그러다가 그 다음날 또 B 교수는 사과문을 쓸 수 없다고 합의 번복했습니다.
김 : 여섯 번째 중재안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고 : 9월 2일 B 교수는 자신의 부인을 시켜 문단 원로 부부에게 중재를 부탁했습니다. 그 중재 내용은 A의 요구 조건을 모두 들어 줄 것이니 합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재안도 하룻밤 자고나서 B 교수는 번복했습니다. 합의를 번복하고 B 교수는 아침 일찍 자신의 담당 변호사를 찾아간다며 외출했다 합니다.
B교수 라인의 그림자들
김 : 대자보에 보면, B 교수의 제자들이 학생들을 상대로 협박과 회유를 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만일 이런 행위 사실이 경찰 조사에 의해 판명될 경우 큰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입니까.
고 : 협박과 회유를 받았다는 학생들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또한 이 사건을 교수들 권력 다툼으로 빚어지는 음해성 사건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협박과 회유를 한 제자들은 B교수에 의해 등단했거나 교수가 됐다고 합니다.
김 : B교수가 ‘연판장’을 돌린 적이 있었다면서요.
고 :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논문 준비 중인 제보자는 B 교수의 제자인 모 대학의 D 교수는 학과에 무슨 일이 있는데 동참해 달라는 평이한 내용의 연판장을 메일로 받아 무심코 이름과 연락처를 써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와 간단한 약력 등이 읽어본 바 없는 이면의 내용 끄트머리에 실려 있는 것을 A의 측근 학생을 통해 알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답니다. 그 내용은 학과의 여섯 교수님이 해과(害科) 행위를 하고 있다고 성토하는 내용이었답니다. 알아보니 제보자 주변의 거의 모든 대학원생들이 이 메일을 받았는데 작은 글씨로 씌어 있는 앞의 것만 읽고 그중 상당수가 이 연판장에 이름과 연락처 등을 써주었다고 합니다. 그게 성범죄 사건과 관련이 있을 줄은 몰랐다는 요지의 글을 문학예술학과 학회장에게 제보해왔습니다.
김 : 이 사건이 발생한 뒤에 얼마 안 있어서 추가 탄원서가 해당학과 게시판에 두 차례 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성범죄 의혹이 제기된 이상, <성윤리위원회> 조사는 추가로 요청할 예정입니까.
고 : 그렇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공동비대위, NGO와 연대 계획 중
김 : 이 사건의 여론화 계획은 없으십니까.
고 : 이미 관할 경찰서에는 수사 촉구를 바라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지금 모 방송국과 보도 여부를 협의중에 있습니다.
김 : 이런 일에 전문가랄 수 있는 여성 단체와의 연계 활동은.
고 :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이 일에 관한 공개질의서를 학교측으로 보낼 예정입니다. 가능하면 다른 NGO들과도 연계할 구상 중에 있습니다.(<한국성폭력상담소>는 9월 27일자 공문을 이미 중앙대학교에 발송한 사실 확인.)
김 : 다소 개인적인 질문입니다. 사실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비대위는 20여 만 원의 후원금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비대위장으로 활동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십니까.
고 : 다른 일은 거의 전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 : 두 시간 남짓,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은 없으세요.

학교 측은 제2, 제3의 성추행 탄원서가 접수되었는데도 조사에 착수하지 않은 점과 이런 B 교수에게 수업권을 주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교 당국은 B 교수를 논문지도 교수로 두고 있는 12명의 대학원생들이 논문을 쓰지 못해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을 방관했다는 점에서도 비판받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기득권층만 있지, 사회지도층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건들이 구조적인 모순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제가 처음부터 현재까지 사건에 개입하면서 느끼게 된 사실입니다. 저는 이 사건의 진실을 꼭 밝혀내고 싶습니다. 사회적 소수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현실적 의미의 유토피아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