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선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 부족이 이인제 후보에게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 준 것.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며 조직기반 확충에 나선 이 후보의 역량이 100% 이상 발휘되기 시작했다. 이미 두 번의 대선을 거치며 쌓은 대선경험도 이 후보의 역전에 한몫했다.
이 후보가 앞서 나가자 조순형 후보는 김민석, 신국환, 장 상 후보와 연대전선을 펴며 이 후보를 압박했다. ‘조직선거’ 의혹에 이어 급기야 조 후보는 ‘선거운동 중단’이라는 강수를 두기까지 했다.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민주당 경선,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조순형 ‘대세론’ 경선 시작되자 휘청거리기 시작
이인제, 대선경험과 조직력으로 민주당 경선 장악
조순형 동원경선 의혹제기 및 선거운동 중단 선언
조순형 빠지고 김민석, 신국환, 장 상 ‘反이인제 연대’?
민주당 경선 출발선에서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이는 조순형 후보였다. 조 후보는 대선출마선언 이후 범여권 지지도 3위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당 내·외에서 ‘대세론’의 주인이 됐으며 대통합민주신당과의 합당 문제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입담을 자랑하기도 했다.
대세론, 조순형서 이인제로
당 경선은 조 후보를 중심으로 하는 1강체제로 흘러갔다. 일부 후보들은 “당 지도부가 조 후보를 위한 경선준비를 하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선이 시작되자 상황은 변했다. 경선에서 조 후보와 차이를 두고 있던 이인제 후보가 역전승을 거둔 것이다.
이인제 후보는 민주당의 첫 경선인 인천 지역에서 총 유효투표 1천9백83표 중 7백35표(37%)를 얻어 역전의 주인공이 됐다. 조 후보는 5백8표를 얻어 2위, 김민석 후보(4백22표), 신국환 후보(2백51표), 장상 후보(67표)가 뒤를 이었다.
이때만 해도 분위기는 ‘설마’였다. 경선이 10%에도 못 미치는 매우 저조한 투표율을 보였기 때문이다. 조 후보의 여론지지율이 여전히 높은 상태임에도 이 후보의 조직력에 부딪치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것이다. 두 번의 대선을 거치는 동안 쌓은 경험과 조직력의 차이가 이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조순형 후보측도 “결국 민주당의 중심은 호남”이라며 “전북 표심은 ‘민주당을 살릴 후보는 조순형’이라는 전략적 판단을 하게 될 것”이라며 인천 경선의 결과를 받아들였다. 전체 경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한 인천 경선 결과는 무시할 수 있다는 분위기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어진 전북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는 과반수가 넘는 표를 얻어 압승을 거뒀다. 이 후보는 총 유효투표 9천1백46표의 과반수인 5천2백36표(57.2%)를 얻었다. 조 후보는 2천23표(22.1%)를 얻는데 그쳤다. 파장은 커져갔다. 전북은 민주당 전체 선거인단(58만6천2백84명)중 20.1%(11만8천1백5명)가 몰려있는 곳으로 민주당 경선의 분수령으로 여겨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북 경선을 위해 추석을 반납하고 표밭갈이에 나섰던 후보들은 이 후보의 연이은 승리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특히 조 후보측은 조직동원 선거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조 후보의 장전형 대변인은 “조직적으로 동원된 정체불명의 선거인단에 의해 민심과 당심이 왜곡되고 있다”며 “조만간 지금까지 진행된 불법선거에 대한 증거를 밝히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反이인제 연합전선 구축

조 후보측은 이 같은 선거결과에 대해 ▲이 후보의 동원·금권선거 ▲자신을 지지하는 후원당원들의 선거인단 명부 누락 ▲낮은 투표율로 대표성이 결여된 경선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며 ‘선거운동 중단선언’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조 후보는 강원·대구·경북 경선 합동연설회 및 개표결과 발표식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TV토론회 및 합동연설회, 지역순회 경선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조 후보측 장전형 대변인은 “초등학교 반장선거도 이런 3류 코미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이런 일은 외부 정치세력의 개입 없이는 발생할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 동교동계의 경선개입 의혹도 제기됐다.
논란은 조 후보측의 부정선거 의혹 제기에 이 후보가 반박하며 격화됐다. 이 후보측 이기훈 대변인은 “동원선거 논란은 일고의 가치도 없으며, 외부 정치세력 개입설은 지도부와 당원들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에 즉각 철회를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후보와 이 후보의 설전에 다른 후보들도 가세했다. 신국환, 장 상 후보는 조 후보의 문제제기에 적극 동조하고 나섰다. 이들은 조 후보와 함께 공동성명을 내고 제주 경선까지 당 지도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경선 보이콧’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민석 후보는 “이 후보의 금권동원선거 의혹과 관련, 만일 구체적인 증거가 드러날 경우 이 후보는 즉각 후보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이 후보 사퇴론을 전면에서 제기했다.
이인제 후보측은 “이 후보 사퇴론은 수준 이하의 정치공세”라 일축했지만 이 후보를 제외한 후보들은 ‘反이인제 연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조순형 추락엔 날개 없다?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치러진 제주 경선에서는 김민석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인제 후보는 2위를 차지, 누적득표수에서는 여전히 선두를 차지했다. ‘경선 활동 중단’을 선언한 조순형·장상 후보는 불참했다.
제주 경선까지 전체 누적 득표수에서는 이 후보는 7천8백44표(45.7%)로 1위를 달렸다. 조 후보의 3천1백75표(18.5%)와는 큰 격차를 두며 선두를 유지한 것이다. 신 후보는 3천10표(17.5%)로 조 후보의 뒤를 바짝 쫓고 있으며 그 뒤를 김민석(2천2백65표, 13.2%), 장상(8백72표, 5.1%) 후보가 따르고 있다.
조 후보는 “이인제 후보 측이 동원 경선과 금품선거를 치르고 있는데, 계속 당이 미온적으로 대처할 경우 경선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전북 경선에서 조직적인 버스 동원을 실시했다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키로 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경선의 승부는 유권자의 40% 가량이 몰려있는 광주·전남에서 결판 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이 후보의 압승이 당연시되는 상황이라 조 후보측이 연이은 강수를 두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한 당직자는 “조 후보가 선거활동 중단과 검찰 수사 의뢰라는 강수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 후보가 선택할 길에 대해서는 선거활동 중단과 검찰 수사 의뢰보다 더 큰 강수인 후보사퇴론이 점점 더 몸집을 키워갔다. 그리고 결국 조 후보가 선택한 길은 후보 사퇴였다. 조 후보는 “불공정한 경선이 진행되고 있지만 지도부가 이에 대해 책임있게 대처하지 않았다”며 “이런 경선으로 후보가 뽑히면 당도 위기에 처하고 후보의 정통성도 훼손될 것”이라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反이인제 연대’만이 살길?
조 후보측 장전형 대변인도 “이런 식의 경선에서 이겨본들 조 후보의 평소 소신과 원칙에 어긋난다”며 “조 후보는 진흙탕 싸움에는 발을 담그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해 결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조 후보가 후보 사퇴의사를 밝히고 민주당 경선에서 빠짐에 따라 경선은 이인제, 신국환, 김민석, 장 상 후보의 4파전으로 치러지게 됐다.
정치권은 조 후보의 사퇴로 이 후보의 대세론이 굳어짐에 따라 다른 후보들의 연대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조 후보의 사퇴 이유였던 동원경선 논란은 남은 후보들 사이에 더욱 가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후보의 대세론을 막기 위해서는 나머지 후보들이 연대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하지만 여론 지지율에서도 이 후보의 독주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 역전은 힘들 것 같다”며 당심과 민심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이 후보의 질주를 예상했다.
‘대세론’을 굳히려는 이 후보와 조직동원 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이를 막으려는 후보들. 민주당 경선의 막판 접전이 불꽃을 튀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