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진실이 인정되기를 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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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증폭 중앙대 성폭행 사건 당사자 A 대학원생 전격 인터뷰

지난 7월 18일 중앙대학교 안성 캠퍼스의 교수 숙소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하는 예술대학원생의 탄원서가 학교당국에 공식적으로 전달되었다. 그후 학교당국은 ‘반성범죄 내규’에도 없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자체 조사를 벌였다. 그런데 사건이 이미 경찰 당국에 고발 접수된 뒤에도 중앙대 학부생들을 포함한 예술/일반 대학원생들과 전/현직 강사들은 한 목소리로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 그리고 그 뒤의 <성윤리위원회>의 조사 자체가 성범죄 은폐를 기도한 것이라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다음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A와 인터뷰한 내용과 <진상조사위원회>에 참석하여 겪었던 고충을 기록한 A의 자료를 입수하여 공개한다.

▲ 중앙대 대운동장 입구에서 서명에 참여하는 학부생들



사건이 석달 째로 접어든 10월 중앙인의 한마당 축제 마지막 날이던 지난 주 5일(금), 일반대학원 건물 1층 강의실에서 A를 만났다. 이미 중앙대의 명소 ‘할머니 동산’에서 오전부터 세 시간 동안 ‘sbs 뉴스추적’ 팀과 가진 인터뷰(10월 24일 방영 예정) 때문에 약속한 시간보다는 조금 늦게 취재에 들어갔다. 사건 당사자인 A의 입을 통하여 사건 당일 A가 안성까지 내려가게 된 속사정, 교문 앞에서 B교수를 만나 함께 식사한 H 식당에서 오고간 대화, 그후 숙소로 이동할 때까지의 정황을 따라간 본다.


: 지난 번 고광식 위원장님과의 인터뷰는 너무 딱딱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가장 궁금한 점은 사건이 있던 지난 7월 12일 교수 숙소로 가기까지의 행적입니다. 출발은 서울 어디에서 하셨습니까?
A : 12시에 양재동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서 1시 10분 뒤에 안성 캠퍼스 정문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H 식당으로 갔습니다.

: 굳이 안성까지 내려오시게 된 까닭이 있었습니까?
A : 신입생 면접 당일 잠시 교수님을 뵈었습니다. 그때 교수님께서 두 권의 시집을 선정해주셨고 그 시집을 다 읽고 나면 안성에 내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아울러 공교롭게도 제가 신인공모한 시작품을 낸 한 계간지의 심사위원이셨다니 공모결과도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B 교수님에게 점심 한 끼 대접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 B 교수에게 점심 한 끼를 대접해 드려야 할 만한 일이 있었나요?
A : 종강 총회 자리에서 신입생 면접이 있으니 와서 일 좀 도와달라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전 사실 무척 기뻤습니다. 교수님이 저를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 그 H 식당에서 그 계간지에 작품을 낸 결과는 물어보셨습니까?
A : 네, 물어보았습니다. 등단은 아니고 최종심에 올랐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 B 교수는 그 계간지의 심사위원입니까?
A : 네 그렇습니다.

: 그럼 그 결과를 물어보려고 서울에서 1시간 넘게 걸리는 제2캠퍼스까지 내려오신 거군요?
A : 입학해서 그 때까지 개인적으로 교수님께 전화를 걸어 본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 다. 그만큼 교수님이 어려웠기 때문에 단순히 신인공모 결과가 궁금해서 전화를 드린다는 일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선정해주신 시집 중 한 권은 구하지 못해 한 권만 열심히 읽고 안성에 내려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내내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제가 읽고 간 시집의 시인이 교수님이 과거 가르쳤던 제자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집에 대해서 하실 이야기가 많다고 하셨습니다.

: 안성에 내려오라고 한 말에 대해서 이상한 느낌 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A : 사실 2캠퍼스까지 내려가는 동안 문득 문득 이상한 예감 같은 것이 들긴 했습니다만, 곧 저를 믿어주고 있는 교수님을 의심한 데 대해 학생으로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그런 의심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해서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 그날 H 식당에서 특이한 일은 없었습니까?
A : 열심히 읽은 시집을 꺼내 교수님께 보이면서 시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아무런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담배를 피우시면서 ‘외롭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때 우리가 먹는 자리 뒤쪽에는 ***웨이 아줌마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며 떠들썩한 분위기였습니다. B 교수님께서 대뜸 그쪽을 보시더니 저한테 물으시더군요. “왜 저 여자들이 이런 시간에 밖으로 나와 수다를 떨면서 밥을 먹는 줄 아느냐?‘고. 저는 느닷없는 질문에 대답하기 난감해서 가만 있었습니다. 그러자 “저 사람들, 외로워서 그런 거지.” “저 아줌마들처럼 저 나이가 되면 외로워서 이런 벌건 대낮에 몰려다니면서 밥을 먹는 사람들 많아.” 이런 식의 말을 듣고는 좀 의아했습니다. 아줌마들은 모두 정복을 입고 있었고 근무 중에 점심식사를 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교수님의 생각이 저는 지나친 주관적 해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왠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교수님의 의도가 무엇일까 속으로 짐작하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교수님은 외롭다는 말씀을 다시 하셨고 저는 교수님과 겸상을 하고 있던 상황이라 그 말을 못 들은 척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수님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로 보아 얼마든지 교수님 주위에는 말벗이 있을 것 같다는 말로 대답을 했습니다. 교수님은 “사람이야 많지 하지만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 교수님의 가깝다는 표현은 말벗이 아니라 다른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만약 A가 내 애인이 되어주면 좋은데…”라고 하시면서 “너는 외롭지 않냐?”고 하시더군요.

: 그날 사건 보도를 보면 술을 강요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실례의 질문일지 모르지만, 주량은 얼마나 되십니까?
A : 그날그날 마시는 기분에 따라 다릅니다.

: 그날 산사춘으로 넉 잔씩이나 혼자 드셨다고 하는데 그 상황을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A : 술잔에 한 잔 가득 술을 따라 주셨지만 한꺼번에 마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꺼번에 마셔 쉽게 취해버리면 혹시라도 교수님 앞에서 실수하게 될까봐 걱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조금씩 마시고 술잔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입에 대는 척하고 조금 마시다가 내려놓으면 “뭐해, 쭉쭉 마시라고…” 하시면서 저의 술잔에서 눈을 떼지 않으셨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표정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왜 저 혼자 술을 마셔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교수님의 대답은 “나는 운전을 해야 하고 몸이 안 좋아서 약을 먹고 있기 때문에 술을 먹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줄곧 야채만 드셨습니다. 그때 시킨 음식이 불고기정식이었습니다.

: 그럼 그 술 한 병을 혼자 다 마시고는 바로 일어나 숙소로 가게 되었습니까?
A : 숙소라는 말에 대해서는 그 날 들었던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H 식당에서 나와 ‘내리 시내’ 어느 슈퍼에서 500ml의 생수 두 병을 샀고, 안성캠퍼스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교수님은 이렇게 안성까지 왔는데 캠퍼스를 안 보고 갈 수는 없다고 하시면서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습니다. 학교 안에는 방학중이라 학생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정문에서 들어설 때부터 교수님은 연구실에 에어컨이 없어 많이 덥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며칠 전에 연구실 에어컨을 떼어다 다른 곳에 갖다놓았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저는 왜 그 말씀을 강조하시는지 그 때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에어컨이 있다는 곳을 알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곳이 숙소인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숙소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곳에 저는 들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 그럼 교수 숙소로 간다는 것을 정말 몰랐단 말입니까?
A : 정말 몰랐습니다. 다만 에어콘 옮긴 얘기를 반복하시길래 연구소 아닌 곳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이 연구소인가요?” 라고 묻자, 안성에 있으면 그곳에서 시를 쓴다고 하셨습니다.

: 차 어디에 앉으셨나요? 차 안에서는 또 다른 별 얘기가 없었습니까?
A : 저는 보조석에 앉았습니다. 뒷 좌석에 앉으려고 했는데 교수님께서 자꾸 옆 좌석에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많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차 밖 풍경만 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무슨 연구를 하시고 있느냐”고 여쭙자, “연구는 무슨? 조용하고 외진 곳이라서 시를 쓰고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내린 다음에는 바로 숙소로 올라가셨나요? 그때의 분위기는 어떠했습니까?
A : 내린 곳은 한갓진 곳이라 정말 주변에 사람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시 쓰기에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에서 내려보니 차의 창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창문이 열려있다”고 말을 하자, 교수님 말씀이 “저 차는 똥차다. 창문을 열어 놓아도 가지고 가는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무런 의심없이 교수님을 뒤따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연구실 비슷한 곳으로 책과 사무용 책상 정도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씽크대가 바로 보여 좀 의아해 했습니다. 책장과 책상은 안 쪽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내부는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2~3인용 소파에 앉아있어도 왼쪽에 침대가 있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왼쪽 구석진 곳에 가리개가 쳐져 있었고, 잠시 있다가 밖으로 나갈 거라고 생각해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 공동비상대책위원회는 학부와 각 학생 단체 및 NGO와 연대하여 대대적인 여론화를 계획하고 있어 앞으로 파란이 예고된다


: 사건 합의까지 해놓은 상황에서 <진상조사위원회>에 참석한 이유를 설명해 주시죠?
A : 그날 ㅁ 교수로부터 ‘학교측의 공식 사과’가 있을 거라는 연락을 받고 참석하였습니다.

: 위원들은 어떤 질문들을 하였습니까?
A (이마에 손을 갖다대며) : 미안합니다 … 그때 일을 생각하니 또 두통이 도지는 것 같습니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참석하고 나서 기록해 둔 글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터뷰를 대체하면 안 될까요?

: 좋습니다. 그래도 혹시 지금 더 하시고 싶은 말은 있으신가요?
A : 한마디로 <진상조사위원회>는 정신적인 성폭행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으로부터. 그곳에 참석한 분들은 모두 남자들로 사건이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자들을 보는 일은 차마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상대 교수님과 비슷한 연배의 사람만 보아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식은땀이 납니다. 결국 그날 학교측의 ‘공식사과’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공식사과가 있을 거라는 것을 듣고 나왔다. 그래서 학교측 대표 한 분이 계실 거라고 생각되었는데 왜 이렇게 많은 다섯 분이 계시며 대답하기 고통스러운 질문들을 집요하게 물으시니 여성이라는 약자에게는 얼마나 잔인한 자리인 줄 아시느냐?”고 말했습니다. “여기 계신 교수님들의 딸이나 아내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고 질의 자체가 잔인하다고 항의하자 교수님들 모두가 아무 말도 못하셨고, 모 법대 ㄹ 교수는 사뭇 당황하는 듯 앞에 놓인 찻잔을 쓰러뜨렸고 그 옆에 앉아있던 ㅂ 행정 위원이 일어나서 테이블위에 엎지러진 차를 닦았던 기억이 납니다.

: 몇 시간 정도 진행되었습니까?
A : 10시에 도착해서 다른 방에서 30분 정도 대기해 있었고, 10시 35분쯤 시작해서 12시 가까이 끝났으니, 1시간 반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 <진상조사위원회> 활동은 그것 하나로 끝났습니까?
A : 네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 <조사분과위원회>에도 참석하신 적이 있지요? 분위기가 어떠했습니까?
A : 8월 22일, 오전 11시 학생생활상담센터에서 있었는데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받았던 인상은 방 분위기가 무척 산만하고 어수선하고 위원장님과 나머지 참석 위원들이 우왕좌왕하게 움직였습니다. 이 사건의 내용을 잘 모르고 위원회 자체가 급조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기피 신청을 받아주셔야 할 위원장님께서 “내가 하는 거야?” 라고 오히려 위원들에게 물어보고 위원들이 그렇다고 말을 하자 부 총장님한테 물어보고 결정하겠다고 급히 부총장님께 전화를 걸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황당한 분위기가 연출되어 저로서는 어떤 식의 조사가 이루어질지 불안하고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기피신청을 설득해야 하는 과정에서 위원장은 팽 팽하게 학교측 입장만 내세웠습니다. 그리고는 <진상조사위원회>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제2캠퍼스 측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저는 또 한 번의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몇 차례 울기도 했습니다. 결국 1시간 30분 만에 기피신청을 받아들여졌고 위원회는 끝났습니다.

: 사건이 있고 나서 B 교수와 연락한 적이 있습니까?
A : 사건 발생 그 다음날 (7월 13일) 오전 일곱 시에 제가 B 교수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 뭐라고 하셨습니까?
A : “죽고 싶고 교수님이 무서워요” 라고 썼습니다. 너무 떨려서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 그랬더니…?
A : 오전 9 ~ 10시 사이에 B 교수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뭐! 어제 일(하루 지난일) 갖고 그러느냐고. 앞으로 내가 잘해주면 되지 않느냐, 그 일은 덮어두지” 라고 하시는데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시 써서 가져오고, 우리 갈 길이 너무 멀쟎아, 내가 또 전화 자주 할게.” “네 피부 참 연하더라고 …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데…내가 논문도 잘 봐주고, 등단도 도와줄 게”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다시, “교수님, 학생들한테 이런 식으로 유인하셨어요? 등단해준다, 장학금이나 박사 운운하며 왜, 학생들 사이에서 이런 말을 퍼트리고 계시냐고.” 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너, 무슨 이상한 말을 하느냐고? 도대체 왜 그래??” 라고 언성을 높이셨습니다. 저는 다시 “지금까지 사시면서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신 적이 있으시냐고?” 물었습니다. “교수님께서 등단이다 장학금이다 박사다 교수시켜 준다는 말로 학생들을 유인하시면 학생들도 교수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것이 아닐 겁니다” 라고 말을 하자 “네가 나한테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고작 어제 일 가지고 지금 그러느냐고?”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에 더 큰 충격을 받고 “앞으로 교수님을 만나거나 통화할 일이 없을 뿐더러, 저는 등단도, 박사도, 논문도 이런 식으로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으려 했습니다. 그때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올라 손이 마구 떨리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교수님의 목소리가 한 풀 꺽인 듯 “그래, 네가 그걸 원한다면 연락도 안 하겠다. 그렇지만 내가 장학금도 받게 해주고 내게 논문지도 받은 사람은 모두 다 교수가 되었는데 그래도 그 마음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만 화가 나서 “논문도 필요 없고 등단도 필요 없고 장학금도 필요 없습니다. 더 이상 그 말은 다시 듣고 싶지 않습니다” 고 하며 전화를 단호하게 끊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은 없으세요?
A : 상대 교수님께 할 말은 그날 다 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할 말은 없습니다. 다만, 상대가 저를 한 때 가르쳤던 스승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제자가 스승을 경찰에 고소할 때의 심정이 어떠한 건지 이해되십니까? 정말 말로 표현하기가 힘듭니다. 이미 경찰에 고발한 상태라서 결과가 나오면 한쪽은 다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진실이 인정받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제 2의 여성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육체적 피해보다 피해를 받았다는 이 정신적 피해를 극복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


다음은 인터뷰가 끝난 뒤에 A에게 요청한 자료이다. 이 문건은 A가 공식사과를 받는 자리인 줄 알고 참석했던 <진상조사위원회> 활동의 정황을 기록해 두었던 것으로, 독자의 알권리를 위하여 게재한다.

1. 날 짜 : 7월 30일 10시
2. 장 소 : 중앙대 아트센터 예술대학원장실
3. 참석명단 : (총 6명 : 5명의 교수와 행정위원)
ㄱ 교수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ㄴ 교수
ㄷ 교수
ㄹ 교수
ㅁ 교수
ㅂ 행정 위원 (발언권 없음)

4. 진행 내용
- 거의 정각 10시쯤 피해자 A 도착.
- ㅂ 행정위원 A를 오전 10시 10분쯤에 옆방으로 안내.
- 그 사이 속속들이 참석위원들 입장.
- ㅂ 행정위원이 옆방에서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 대기하라고 하여 A와 남편은 옆방에서 30분 가량 기다렸음.
- 그 사이 원장실 문은 꽉 닫혀 있었음.
- 대기하는 동안 A는 불안과 공포감과 심리적인 위축이 일어났음. 몇 번이나 물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가 물을 찾았음.
- 위원들이 들어가 있는 원장실 문은 30분 동안 문은 완전히 잠겨 있었고, 긴장과 불안 속에서 30분 정도가 흐르자 ㅂ 행정위원이 나와 A에게 원장실로 들어가도록 제의했고, 그 사이 남편은 그 방에 혼자 있으라고 했음. 그러므로 남편은 전혀 진상조사위원회 내용을 들을 수 없었음.

5. 좌석 배치
테이블 한가운데 위원장이 앉아 있었고, 그 옆으로 ㄷ 교수, 그 맞은편에 ㄴ 교수가 앉아 있었고, ㄴ 교수 옆으로 ㅁ 교수가 앉아 있었고, 그 옆에 A가 앉음. 법대 ㄹ 교수는 진정인과 45도 방향으로 비켜 앉아 있었음. ㅂ 행정위원은 문 쪽에 앉아 있었음.

6. 본격적인 진행

위원장의 위원들 소개가 있었음. 그리고 녹취를 해도 되느냐? 바로 A에게 물었음. 이에 대해 A는 많이 당황하여 놀랐음(그 이유는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에 대한 학교측의 사전 설명은 전무했고, 학교측의 공식사과가 있을 거라는 ㅁ 교수의 전화를 받은 것 외에는 사전에 아무것도 전해들은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

더욱이 A 외에는 참석자 전원이 남자인데다가 특히 위원장이라는 분은 B 교수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기에 많이 불안했음. 그런데다 왜 녹취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음.

위원들의 자세는 시종일관 고압적이었기 때문에 A는 심하게 위축되었음. 순간 공포를 느끼고 녹취를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음. 그리고 난 뒤 정신을 차리고 학교측의 공식사과가 있다고 들어서 나왔는데 공식사과는 왜 하지 않으시는지? 또 공식사과를 하기 위해 왜 이렇게 많은 분의 남자교수가 배석해 있어야 하는지 위원장에게 A가 물었음. 여기에 대해 위원장은 아무 대답이 없었음.

잠시후 이 일 때문에 방학중에 교수들이 출두하게 되어 심히 불편하다는 듯한 대화를 참석위원들끼리 주고받았음.

A는 그 말들이 오고가는 사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어야 하는지 난감해 있었음. 그래서 녹취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ㄷ 교수가 이 질의응답서를 작성할 거라는 위원장의 말이 있었음.

7. 위원회에서 나온 질문들

1) 시간대 순서대로 사건을 이야기해보라.

2) 탄원서에 B 교수가 샤워를 했다고 했는데, 그 사이에 왜 A는 도망가지 않았는지 이야기해보라.

3) A는 40대의 유부녀로 알고 있는데, B 교수가 성행위를 시도하려고 할 때, 왜 저항을 안 했는지 설명해 달라. 우리 위원들이 생각하기로는 그 정도의 나이와 유부녀라면 거리로 나가 소리를 질러 외부에 알리거나 B 교수를 물어뜯거나 할퀼 수도 있는데 왜 그런 저항을 하지 않았는지 납득이 안 되니 설명을 해 달라.

4) A가 버스를 탄 시각이 3시라고 주장하는 B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A에게 물 한잔 준 것밖에 없고 성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1시에 안성캠퍼스에 도착해서 H 식당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나와 읍내 슈퍼에서 생수까지 산 다음에 다시 캠퍼스 안의 교수 숙소에 들어왔다면 이 짧은 시간에 과연 성행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는지…이해가 안 되니 성행위는 없었던 것은 아닌지 A에게 묻는다.

5) 탄원서 내용대로 정말 성행위가 있었느냐? 진짜 성기삽입이 되었느냐?
(1 ~ 5번까지의 질의는 ㄱ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의 질문임)

6) 증거는 가지고 있느냐? (ㄷ 교수의 질문)

A의 대답: 성폭행을 당할 때 저항하다가 생긴 통증과 후유증으로 많이 아파서 집에서 걸어나가지도 못했기 때문에 병원에도 못 갔다. 그냥 누워만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B 교수가 또 전화를 할 거라고 해서 불안하고 공포와 위협을 느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ㅁ 교수님께 메일을 쓰게 되었다. (논문지도 교수를 바꾸면 B 교수의 접근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리고나서 사건당일로부터 4일째 되던 7월 16일에 산부인과와 신경정신과를 방문했다. 그때의 의무기록은 확보해 놓았다. 그렇지만 대개가 사건 터지고 바로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바로 병원으로 와야 정액을 채취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나는 4일이 지나서 병원을 갔으니 정액 체취는 어려울 거라는 말을 의사로부터 들었다.

6-1) 그렇다면 직접적인 증거는 없는 거 아니냐? (ㄱ 위원장의 질문임)

7) 그러면 그 당시에 입었던 옷은 보관되어 있는지?

A의 대답 : 있다. 흰옷과 검정색 하의.(그 이후로 전혀 만지지 않고 있다.)

8) 그러면 그것을 나중에 지문 채취할 수 있도록 비닐봉지에 담아 잘 보관해두면 된다.
(7~8번 질문은 법대 ㄹ 교수의 질문임)

9) 탄원서 외에 할 말이 더 있는가? (ㄱ 위원장의 질문)

10) 조사가 필요할 때 또 부를 수도 있으니 그때 나와 달라! (ㄷ 교수의 말)

A의 대답 : 이런 자리라면 나올 수 없다. 많이 힘들다.

11) B 교수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가?

A의 대답 : 받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형사고소를 하고 싶지만 그래도 한때 나를 가르치던 교수이니 법적인 절차를 밟기 이전에 탄원서 내용대로 학교에서 잘 해결해주길 바란다.


* * *


이 오전의 심의가 12시 쯤 끝나고 다시 오후부터는 B 교수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 후에 ㄹ 법대 교수가 B 교수의 증언은 신빙성이 있으나 A의 발언은 허위일 확률이 높다고 하자 위원들은 그 주장에 아무런 이의도 달지 않아 사실상 <진상조사위원회> 활동은 그것으로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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