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8일 ‘이자제한법’이 시행 된지 1백일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빚 내서 빚 갚기’ 사채시장의 ‘악순환’은 끝날 줄을 모른다. 10년 만에 힘들게 부활한 법이지만 정작 불법사채시장에는 미풍도 불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급한 대로 사채에 손을 댄 서민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에 고민하고, 매일같이 찾아와 난동을 부리는 사채업자들의 빚 독촉 때문에 몸살이다. 그들은 ‘살인’적인 이자와 불어나는 원금을 감당하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살자’는 마음으로 손을 댄 사채가 사람들을 ‘자살’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유명무실’한 ‘이자제한법’과 고금리 불법사채시장을 긴급진단 했다.
사채를 찾는 사람들은 제1, 2 금융권을 이용할 수 없는 7등급 이하의 낮은 신용자거나 신용불량자가 대부분이다. 이들 대부분은 등록 대부업체를 이용할 경우 조회기록이 남아 나중에 은행권 이용 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사채를 이용한다.

사채의 늪에 빠진 사람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들의 대부분은 투기목적이 아닌 사업자금이나 생계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사채시장에 뛰어 든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국 ‘경제적 파탄’으로 이어지고 최악의 상황까지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학습지 교사 A(25·여)씨는 지난해 초, 학습지 미납대금을 갚기 위해 사채업자로부터 1백20만원을 빌렸다. 김씨가 사채업자로부터 받은 돈은 선이자 50만원을 뗀 70만원이었다. 이자는 일주일에 30만원으로 월 100%라는 살인적인 조건이었지만 급한 마음에 거래는 시작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자를 갚는 것조차 힘에 부쳤고 1년이 지난 지금 불어난 새채빚은 1억5천여 만원에 이르렀다. 집안은 풍비박산 났고 날마다 13명의 사채업자들로부터 협박을 받고 있다.
B(35)씨의 경우는 더욱 암울하다. 전북 익산 대학가에서 소주방을 운영하던 B씨 부부는 경영이 악화되자 한 사채업자로부터 1백만원을 빌렸다. 한달에 30만원씩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다른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 돌려 막았고 이 과정에서 이자와 원금까지 크게 불어나 당초 1백만원에서 시작된 빚은 2천5백만원까지 불어났다.
결국 불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한 B씨 부부는 지난 3월 13개월 된 딸과 함께 목숨을 끊기로 하고 수면제를 먹은 뒤 방안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을 기도했다.
대전 유흥주점에서 일하던 C(31·여)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C씨는 사채를 끌어 쓰다가 사채업자의 협박이 계속되자 대전 모 여관에서 선풍기 줄로 목을 매 자살했으며 충남 논산의 D(32?여)씨 역시 돈 문제가 악화되자 만취 상태로 논산 탑정저수지에 투신했다.
“이자제한법이 뭡니까?”
지난 6월 미등록 대부업체를 대상으로 이자율을 40%로 제한하는 법률이 시행됐다. 일부에서는 이를 이자제한법의 부활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이자제한법의 부활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등록 대부업체는 대상에서 제외되고, 미등록 대부업체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의문시 된다는 지적이다. 즉 금융기관 및 등록 대부업체는 적용이 배제되기 때문에 시장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이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는 예측이다.
법무부는 ‘이자제한법’ 시행과 함께 “고리사채를 이용한 저소득층 국민이 법률구조공단을 활용해 이자제한법 관련 법적 분쟁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홍보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자제한법상 연 40% 이상 지급한 이자는 소송을 통해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저소득층인 사금융 피해자들이 사체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하기란 제도적 지원 없이는 어려운 실정이다.
또 불법 사체업체 단속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등록?무등록 대부업체들의 불법 영업에 대한 처벌인 이자제한법이 아닌 대부업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에 이자제한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대부업법의 철저한 시행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등록 대부업체에 대한 관리?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관련 기관에서는 관리·감독의 책임은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는 상황에서 음지에 숨어 영업하는 고리사채업자들에 대한 단속이 주요 골자인 이자제한법의 시행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이자제한법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불법사채업자들에 대한 철저한 단속과 피해자들에 대한 법률구조, 저소득층에 대한 금융상담, 대안금융 활성화 등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우선 일반 국민들이 ‘40% 이상의 이자는 불법’이라는 인식을 정확히 가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또 초과이자 반환 소송도 활성화 되어야 한다. 현재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월 소득 2백40만원 이하 저소득층에게 소송 대리 같은 법률지원을 하고 있지만, 이자제한법 정착을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인 지원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불법사채업체의 영업을 철저하게 적발해 처벌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의 전담 인력 증원은 이자제한법의 정착에 기본적인 조건이다. 금융감독원도 더욱 적극적으로 대부업체 단속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금융감독원 추천, 사금융 피해 예방 10계명
1.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업체와는 거래하지 말 것.
2. 허위·과장·부실광고에 현혹되지 말 것.
3. 은행·저축은행 등 제도금융기관의 대출가능 여부를 먼저 확인할 것.
4. 본인의 신용도에 비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업체를 조심할 것.
5. 은행 등의 대출을 알선한다고 하면서 작업비·수수료 등을 요구할 때는 절대 응하지 말 것.
6. 예금통장·신용카드·인터넷금융거래 등의 비밀번호를 절대 타인에게 노출시키지 말 것.
7. 신용카드 송부를 요구하는 경우 절대 응하지 말 것.
8. 위임장·인감증명서 등 명의가 도용될 수 있는 서류를 상대방에게 보낼 때는 신중을 기할 것.
9. 신용카드대금 및 상품구입대금 연체문제 등 어려움은 가족과 함께 극복할 것.
10. 금융사기 피해를 당했을 때는 즉시 수사기관(검찰·경찰)에 신고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