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뭐니뭐니 해도 읍내 간이정류장에서 좀처럼 오지 않는 시골버스를 기다리는 그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간이정류장에서 아무 곳에나 퍼질고 앉아 올 농사가 어땠느니, 누구네 딸이 시집을 간다느니 하는 시골사람들의 구수한 이야기를 귀동냥하는 즐거움, 금방 거둬들인 듯한 무ㆍ배추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그 즐거움을 어디에 비유하랴.
"옥천매표소까지 가요?"
"그기가 종점 아인교."
"몇 시간마다 다니나요?"
"두 시간마다예."
까치가 뜨락에 매달린 빨간 감을 쪼고 있는 시월의 셋째 주 토요일(16일) 아침, 창녕시외버스터미널 맞은 편 읍내 간이정류장에서 오래 기다린 끝에 옥천리행 시골버스를 타고 관룡사로 향한다. 털털거리는 시골버스는 정류장이 아니어도 손만 들면 세워주고, 내려달라면 아무 곳에서나 내려준다.
시골버스 유리창에 비치는 들판에서는 금빛 나락을 거둬들이는 농민들의 손놀림이 바쁘기만 하다. 저만치 몇 무더기 짚단만 남아 있는 텅 빈 논에는 왜가리 한 마리가 철 지난 허새비처럼 외롭게 서 있다. 옥천마을 들머리에는 발갛게 익은 감을 몇 무더기 쌓아놓고 손님을 부르는 시골 아낙네들의 주름진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옥천마을을 젖먹이처럼 품에 안고 있는 야트막한 산들은 아직까지도 진초록빛을 놓지 않고 있다. 이대로 흘러가는 여름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털털거리는 시골버스는 이내 옥천매표소에 사람들을 부려놓는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표를 끊으려 옥천매표소로 갔다. 하지만 매표소 안에는 아무도 없다.
"아재! 그기서 얼쩡거리지 말고 여기 와서 썬한(시원한) 막걸리에 국시(국수) 한 사발하고 가이소."
"표를 안 끊나요?"
"아, 사람도 없는데 말라꼬(뭐 할려고) 애써 표를 끊을라 하능교."
관룡사로 올라가는 길목 주변에는 포장마차를 비롯한 음식점들이 줄을 서 있다. 계곡물이 맑기로 소문 난 옥천계곡 곳곳에는 반듯한 돌계단이 놓여져 있다. 계곡물이 그 돌계단 사이로 힘겹게 흘러내린다. 누가 그랬을까. 누가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였던 옥천계곡을 저리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단 말인가.
옥천계곡을 바라보며 서 있는 나뭇가지에 붙어 나부끼는 '자연보호 나라사랑'이란 글씨가 정말 우스꽝스럽다. 하여튼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문제다. 그래. 저런 게 자연보호 나라사랑이란 말인가.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정말 아름다운 대자연을 망가뜨려 사람의 편리대로 대충 짜 맞추는 저런 게 자연보호 나라사랑이란 말인가.
관룡사로 올라가는 길 또한 잘 다져진 황톳길이 아니라 시멘트로 범벅을 해 놓았다. 이 모두 사람들이 차를 타고 오르기 편하게 하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만든 길이다. 그래서 그런지 500m 정도 걸어오는데도 이내 숨이 턱턱 막힌다. 주차장 갈림길 오른쪽 길가에는 제법 높다란 돌더미가 성곽처럼 쌓여 있다.
이 곳이 바로 고려 말 승려 신돈이 태어나고 출가한 옥천사 터다. 신돈은 공민왕 때 진평 후(眞平侯)라는 벼슬까지 하며 정치개혁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부호들이 권세로 빼앗은 토지를 돌려주고 노비를 해방시켰으나 결국 역모죄로 처형당하고 말았다. 신돈의 어머니가 종으로 있었던 옥천사 또한 신돈이 죽자 그대로 폐쇄되었다.
신돈의 한을 되새김질하고 있는 옥천사 터를 지나면 관룡사 아래 키가 훤칠하고 몸매도 듬직한 한 쌍의 돌장승(경상남도 민속자료 제6호)이 길을 가로 막는다. 툭 불거진 왕방울눈, 뭉텅한 주먹코가 첫눈에 보기에도 정말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그 소박하고도 꾸밈없는 표정에서 피붙이 같은 정이 새록새록 배어나오는 것은 웬일일까.
'벅수'라고도 불리는 이 한 쌍의 돌장승은 이곳부터 관룡사의 경내라는 것을 알려주는 일종의 석표이다. 동쪽에 서 있는 것이 남장승이며, 서쪽에 서 있는 것이 여장승이다. 돌장승의 재료는 모두 화강석이며 남장승은 높이 224m, 너비 64cm이며 여장승은 높이 235m, 너비 52cm이다.
상투 같은 둥근 머리를 튼 채 관모를 쓰고 있는 남장승은 툭 튀어나온 왕방울눈과 주먹만한 코, 그 아래 뚫린 콧구멍과 네모지게 살찐 턱이 특징이다. 그리고 콧잔등에 굵은 주름이 두 개 새겨져 있으며, 몸통에는 일반 장승처럼 '천하대장군'이라는 그런 글씨가 새겨져 있지 않다.
상투 같은 머리에 관모를 쓰지 않은 여장승은 사다리꼴의 기둥돌 위에 구멍을 파서 세운 돌장승으로 몸통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굵어져 안정감을 준다. 이 장승 또한 특 불거진 왕방울눈에 주먹코를 하고 있으며 주먹코 아래에는 콧구멍 두 개가 땅을 향해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하지만 이 돌장승도 2003년 여름 태풍 '매미' 때 쓰러져 약 15 m 정도 산 아래로 떠내려가는 수난을 겪었다고 한다. 부부 돌장승 아래 계곡에는 큰 바위 옆에 세워진 두 개의 석종형 부도가 보인다. 높이 1.15m, 몸통둘레 1.9m인 이 부도는 관룡사에 있는 7개의 부도 중 제작연대가 가장 뒤떨어지는 부도라고 전해진다.
근데 왜 이 부부 돌장승의 얼굴을 왕방울눈과 주먹코로 표현했을까. 부부 돌장승의 겁에 질린 왕방울눈과 주먹에 맞아 코뼈가 으스러진 것처럼 보이는 주먹코에 담긴 진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래. 어쩌면 이 돌장승은 개혁을 부르짖다 역모죄로 몰린 신돈의 마지막 모습을 나타낸 것은 아니었을까.
남장승은 절대권력에 의한 신분차별을 몰아내고 누구나 잘 살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는 꿈이 꺾인 신돈의 모습을, 여장승은 그 신돈을 바라보는 어미, 옥천사의 종으로 살다가 아들 때문에 종의 신분에서 벗어난 신돈의 어머니, 아들의 금의환향을 기다리는 신돈의 어머니의 모습을 새긴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 그래서 여장승을 남장승보다 키가 더 크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가는 길/서울-경부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창녕 IC-좌회전-국도 24호선-창녕여중-계성-옥천마을-옥천매표소-관룡사 입구-돌장승ㆍ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