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하는 '집단주의'의 공포
매혹하는 '집단주의'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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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개인을 향한 집단의 침입

지구로 진입하던 우주왕복선의 폭파 잔해물과 접촉한 인간들의 감정이 변한다. 급작스런 변질은 무서운 속도로 나라 사이의 경계선을 넘어 사람 사람으로 이어져 당장이라도 지구 자체를 먹어치울 듯하다. 옛부터 지구를 하나의 의식이라고 말하는 신비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 영화 속의 외계 바이러스는 지구 차원의 의식의 변화인자라 볼 수 있다. 이 인자에 감염되어 자기 의지가 마비된 지구인들의 의식은 아직 변질되지 않은 의식의 한쪽 면을 끊임없이 공격한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자기화하려고 애쓴다. 여기서 자기화는 집단적 동일화다. 이런 사태에 맞서는 기존의 지구 의식도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변질을 거부하는 지구인들은 저항한다.



이미 감염된 사람들은 달라진 삶의 상태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서로 살인하거나 강도나 강간을 범하거나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변질을 합리화한 존재들은 동질 의식의 단단한 테두리 안에 갇힌다. 개인은 집단 속으로 들어가 감금되는 ‘해방'의 착란을 수용한다. 이들이 하나의 동질성 집단으로 화하는 순간부터 테두리 바깥 쪽의 사람들에게 현실은 공포가 된다. 자신의 존재 양식이 절대선임을 의심하지 않기에 자기이면서 집단인 동일성 의식 바깥의 관점으로부터는 자신들을 못 본다. 이들은 하나가 됨으로써 그 '하나' 바깥과의 의식과는 수직 낙차한다. 자신들의 의식 동질성에 매혹된 변질자들은 본래 외계 바이러스란 변질을 현실화한 존재를 망각하게 된다. 여기서의 망각 내지 몰비판성은 동화(同化)의 완료적 현상이다.



이질적인 것이 동질적인 집단의 적이 되는 상황은 필연이다. 이질성과 동질성의 융합의 가능성은 고려되지 않는다. 끝없이 집단의 동질성을 밀어붙일 뿐이다. 매혹적인 동질성의 세계 안에서 감정은 마비된다. 오로지 가능한 운동은 자기-동일성의 무한 확산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심오한 뜻도 없다. 확산하면서 이질적인 것들에게 ‘개체’의 죽음을 권유할 뿐이다. 타자를 견디지 못하는 면역 불능의 동일성의 강요, 그것은 모든 사이비 종교의 존재 기반이자 운동성 자체다.

메디칼 호러물 <엑스페리먼트 Der Experement>의 독일 감독 올리버 히르비겔이 만든 영화의 결말 부분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 워너브라더스사가 제임스 맥테이그 감독에게 상당 부분 재촬용을 허용한 끝에 개봉한 영화 <인베이젼 The Invasion(2007)>은 정신병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의식의 분열과 분열된 의식들의 상호 투쟁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는 동일한 시공간의 차원에서 싸우는 변화 인자와 현상 유지 인자와의 싸움이란 모티브를 미모의 여배우 니콜 키드먼의 빼어난 몸매를 따라가는 액션스타일로 풀어놓았다는 점에서는 아벨 페라라나 필립 코프먼 감독이 잭 피니의 소설 ‘신체강탈자의 침입(The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을 영화화한 전작에 비해 문제적 졸작이라는 욕을 먹었다. 간간이 지리한 설교조의 대사는 눈맛과 귀맛으로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을 힘겹고 짜증나게 한다. 영화는 아무리 잘 꿰어맞춰도 코드의 잡탕식 줄거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일관된 진지성도 재미도 없다. 단, 원작 소설의 문제의식만은 어쩌지 못하고 살아 있다. 그것은, '어떻게 하여 집단은 개인이 집단을 견디는 만큼도 개인을 견디지 못하는가?' 란 니체적 메아리다.


▲ 잠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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