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는 석유 파동으로 인해 전 국민에게 절전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대구의 한 화물 영업소에서는 절전 시비로 시작된 싸움으로 쌍방이 입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군입대를 며칠 앞두고 화물 영업소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우춘규(가명)씨. 야간 근무를 하고 있는데 화물차 운전사 어거지(가명)씨가 술에 취한 채 찾아와 사무실 불을 끄면서 시비를 걸어온 것. 멱살이 잡힌 채 궁지에 몰린 우씨는 순간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의 손가락을 물어버린다. 다음날 우씨에게 먼저 진단서가 첨부된 고소장이 날아온다. 과연 이 싸움은 어떻게 끝이 난 것일까? 사건을 재구성했다.
“난 강철손가락 무엇이든 부술 수 있지.”, “난 무쇠이 무엇이든 갈 수 있지.” 벽을 뚫는 강철 손가락의 초강력 파워와 삽시간에 무를 통째로 갈아버리는 이의 괴력, 강철손가락과 무쇠이의 못 말리는 결투가 시작됐다.
결투의 원인은 석유파동?
1977년 합동 단속반이 뜨는 날이면 모두 초비상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바로 절전 단속. 전자대리점의 전시용 TV는 단 한대만 켜놓을 수 있었고, 유일하게 네온사인을 사용할 수 있었던 병원도 제한이 있었다.
“아무리 병원이라도 2개는 안돼지… 하나만 O.K”
이를 어길 시에는 법적 응징이 따르는 것도 당연지사였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니었다. 전 세계를 경제혼란에 빠뜨린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인해 나라를 불문하고 대대적이고 강력한 절전 운동에 돌입한 것이다.
이 때문에 후유증도 많았다. 전력공급 단축령을 내린 이탈리아의 경우, 절전을 위해 일찌감치 잠을 청하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두 눈은 말똥말똥 잠이 오지 않는 부부가 여럿이었다.
“여보~ 잠이 안온다”
기나긴 밤 잠 못 이루는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던 모양, 출산율이 급증하는 당연한 사태를 불러오고 말았던 것이다.
절전운동의 여파는 우리나라 대구의 한 화물영업소까지 미쳤다.
“뭐꼬? 뉴스보는데…”
“기름 한방울 안나는 나라에서 TV는 뭔놈의 TV고?”
화물차 운전기사인 어거지(가명)는 대낮부터 곤드레 만드레 취해서 시비걸 사람을 찾고 있었다.
“됐다마, 우리 라면이나 끓여먹자.”
동료들은 어거지를 피해 라면을 끓여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시비 거리를 찾던 어거지는 어느새 밖으로 동료들을 따라와 맛있게 끓고 있는 라면 냄비의 불을 꺼버린다.
“뭐꼬? 반도 안익었는데~”
“배속에서 익히라 카이, 아껴야 잘 살거 아이가”
“와~ 진짜 화나게 하네.”
어거지의 동료 김버럭(가명)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화물차를 부르는 호출로 인해 일단 자리를 뜬다. 김버럭의 출장으로 어거지의 시비 작전은 거기서 일단락 됐다.
한편, 화물영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우춘규(가명)는 그 날도 일이 밀려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남아 일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그 시간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술에 취한 채 시비 거리를 찾아 헤매던 어거지는 불켜진 사무실을 보고는 그대로 돌진한다. 적당한 먹잇감을 발견한 것이다.
“뭐꼬? 이 놈의 자식이 지금 몇 신데 대낮까지 불을 켜놓고 있노?”
“아직 일이 안 끝났는대요.”
“퍼뜩 불 안 끄나?”
“술 많이 드신 것 같은데 조심해서 들어가이소.”
손가락과 이 ‘박빙의 대결’

“절전, 모르나?” 불을 끈 범인은 바로 어거지였던 것이다.
“아저시 정말 왜 이카는 대요?”
“좋을 말 할 때 꺼라 잉?”
무조건 절전을 해야 한다며 불을 끄는 어거지와 할 일이 남았으니 다 할 때까지는 불을 켜야 한다는 우춘규의 옥신각신 실랑이는 계속됐다. 급기야 어거지를 상대하는 것에 화가 치민 우춘규는 어거지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취했으면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이소”
어린 우춘규가 대들자 더욱 흥분한 어거지는 우춘규를 주차장으로 데리고 나오고 2차전에 돌입한다.
“이 손이 어떤 손진지 아나?” 강철손의 위력을 한번 보여준 어거지는 방어할 틈도 주지 않고 다짜고짜 우춘규의 면상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대책없이 맞고만 있던 우춘규도 화가 치미는 모양, 벌떡 일어나 어거지에게 소리친다.
“내 이가 어떤 이 인줄 압니까? 무도 가는 이라예.”
그렇다 우춘규는 실로 대단한 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받은 대로 돌려주겠다는 우춘규. 자신을 때린 어거지의 손을 향해 돌진, 날카로운 이로 손가락을 있는 힘껏 물어버린다. 완벽한 보복이었다.
“놔라~ 놔!”
손가락의 항복천하, 무쇠이의 완벽한 K.O승 이었다.
“더 이상 건들지 마이소잉”
사무실로 돌아온 우춘규는 세면실에서 피로 가득한 입안을 헹구고 거울을 보며 승리를 자축한다.
“좀 아플낀데, 역시 내 이가 세긴 세구만.”
그런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뭔가 이상했다.
“뭐꼬? 내 이가 어디 갔노?” 도대체 이는 어디로 간 것일까. 사연은 이랬다.
손가락에 이가 박힐 정도로 어거지의 손가락을 세게 물어버린 우춘규. 어거지가 온 힘을 동원해 손가락을 뺀 그 순간, 손가락에 이가 박힌 채 같이 빠져버린 것이다.
어거지는 다음날 진단서를 끊어 우춘규를 경찰에 고발하고 나섰다. 각각 전치 1주와 4주 진단서를 내세우며 시비를 가리려고 했지만 사연을 들은 경찰의 한 마디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같이 싸운 거고만… 그러면 벌도 같이 받아.”
절전 때문에 벌어진 싸움은 쌍방폭력행위로 입건되면서 일단락 됐다. 결국 이와 손가락의 대결은 처절한 상처만을 남긴 채 무승부로 끝이 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