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여명은 족히 넘어 보였습니다. 아마 일요일이라서 그랬던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가만히 있지를 않았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이건 나은 편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냉탕을 수영장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다이빙에 잠수는 기본이었습니다. 그 혼란스러움은 미루어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어렵게 물뿌리개(샤워기)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물뿌리개는 수동식이었습니다. 저는 물을 틀었습니다. 순간 물줄기가 힘차게 뿜어져 나왔습니다. 저는 머리부터 감았습니다. 몸도 가볍게 씻었습니다. 온탕에 들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치장이었던 셈이었지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진작부터 관심을 끄는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저는 그 사내를 훔쳐보는 위치에 있긴 했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얼굴이었습니다. 피부는 백납처럼 희었습니다. 그는 온탕 언저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턱을 괴고 다리만 꼬고 앉았다면 그는 분명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저는 계속해서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가끔씩 신체 건장한 사람들이 그의 앞을 휘젓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어떤 치들은 몸 전체에 문신을 새기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들과 그는 묘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고독한 존재였습니다. 문신의 사내들, 아니 뭇 사람들을 천박하게 보이도록 하는 그 무엇이 그에게는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에게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의 평범한 얼굴 때문이었습니다. 차라리 백기완 선생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겼으면 그를 알아보는 데 용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을 건넬 용기를 감히 낼 수 없었습니다. 그저 그를 훔쳐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누군가가 그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거무튀튀한 얼굴에 억센 피부를 가진 두툼한 입술의 사내였습니다.
그는 사내의 인사에 환하게 웃었습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꽤나 세련된 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하필이면 그때 그에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부자연스러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가 고개를 숙이면 숙일수록 그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 수그러드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꿈틀대는 것이었습니다.
두툼한 입술의 사내는 온탕에 몸을 담그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렵게 사내 옆에 끼어 들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저는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무슨 잡소리가 그리 많은지 목욕탕은 사람들의 목청으로 가득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아마 지극히 평범한 말들을 나눈 것 같았습니다. 아쉬움은 컸습니다. 어떤 단서도 확보하지 못한 그런 아쉬움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온탕을 나오기 위해 몸을 비틀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무언가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사내의 집게손가락이었습니다. 집게손가락의 끝마디가 까맣게 타버렸습니다. 손톱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뭉툭한 살덩이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어렴풋하나마 사내의 신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사내는 아마 노동자일 겁니다. 집게손가락의 상처가 이를 증명하고도 남겠기에 말입니다.
저는 냉탕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그를 주시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바로 그 문제의 장면을 보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얼굴이 붉게 닳아 오르는 그의 모습 말입니다. 그때는 꼭 그가 어린애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재빨리 몸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물뿌리개를 잠그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는 빠른 동작으로 물뿌리개를 잠궜습니다.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온탕 언저리에 태연히 걸터앉는 것이었습니다. 하필 그때 그와 눈이 마주친 것입니다. 그는 순간 무척이나 당황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내 나로부터 눈을 거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얼른 눈을 거두었긴 했습니다만.
엊그제의 일이었습니다. 목욕탕의 풍경은 그래서 제게는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타고난 수줍음 때문에 그에게 한마디의 말도 건네지 못했습니다. 목욕탕에는 백 여명도 넘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은 딱 한사람밖에 없었습니다. 두툼한 입술의 사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그런 존재였던가 봅니다. 그러나 저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얼마든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세상이지만 머지 않아 그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것이란 희망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저와 이웃해 살고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권영길이라고 부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민주노동당 대표 권영길 말입니다. 저도 어제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사는 곳이 어디냐고요. 여기는 창원이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