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가 끝난 늦가을, 이맘 때가 되면 시골 들녘은 그 한산함으로 마음까지 쓸쓸함을 안겨 준다. 곧 있을 김장을 위해 속을 알차게 채우고 있을 배추와 무들만이 덩그런 밭 한 모퉁이에 줄을 서 있을 뿐이다.
노는 날에 한 번 들리라는 친정 어머니의 말씀을 그냥 묻어버릴 수 없어 이번 휴일에 친정에 갔다. 어릴 적 넓고 커다랗게만 보이던 집이 너무 초라하고 작아 보였다.
녹색 대문을 박차고 큰 소리로 어머니를 부른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이다.
"너거 중에 누구라도 오믄 엄마~ 하고 부르며 들어 오는기 참 좋더라. 근데 너거 큰오빤 엄마~라는 소리가 싫은지 뭐라카는지 아나?"
"뭐라 카더노?"
"거기 어~ 하고 들어온다 아이가. 나는 첨에 무신 소린지 몰라 가만 있은 께 너거 오빠 아이가. 참으로 얄궂제. 나는 딱 기가 차더라."
그 뒤로부터 항상 대문 안으로 들어설 땐 딸 아이를 내세워 할머니라고 크게 부르게 하든지 아니면 내가 앞서서 힘차게 부른다.
엄마라고 부르기 전에 방문을 열고 나오셨던 어머니는 아무런 인기척을 보이지 않았다. 중간 대문을 열면서 다시 부르니 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누꼬?"하며 방문을 열어 보인다.
반가움에 표현은 하지 못하고 멋쩍어 하면서 어머니는 우리 가족을 반겨 주셨다. 다른 계절 같으면 한창 일하고 있을 때지만 추수를 마지막으로 늦가을 들녘에도 그다지 일거리가 없다.
들에 가도 일이 없어 가만히 있는데 심심하기도 하고, 안 그래도 온다고 하긴 했는데 왜 안 오는지 전화를 넣으려다 말았단다. 방안엔 사탕봉지와 연필로 끄적거리다가만 공책이 한 권 펼쳐져 있었다.
그다지 어색하지도 않은 일이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늘 보던 일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결혼을 하기 전부터 추수가 끝난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글자 공부를 하셨다.
내가 결혼을 하기 전엔 단어들을 적어 주면 그것을 따라 하거나 유치원생이 하던 받아쓰기 책을 따로 사서 공부를 하시곤 했다. 그런 어머니가 내가 결혼을 하고 딸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는 지금까지도 글자 공부를 하고 계시니 그 정성이 너무 갸륵하다고 말을 한다면 건방진 것일까.
예전엔 내가 충고도 하고 지적도 했지만 지금은 딸 아이가 그 일을 맡았다. 딸 아이가 글자를 막 익힐 무렵의 어느 날, 온다는 말 없이 어머니를 찾았던 일이 있었다. 안방 문을 여는 순간, 황급히 무언가를 서랍 속에 감추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난 당황했다. 무엇 때문일까 궁금한 마음을 뒤로 하고 며칠이 지난 뒤 다시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때서야 어머니는 장롱 속에 숨겨둔 공책 한 권을 꺼내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하도 심심하고 해서 해인이가 낙서하던 공책에다 글자 공부 한번 해봤다. 고거 참 재미나더라. 겨울 동안 이거나 해야겠다. 장에 갈 때, 버스 탈 때 간단한 글자도 몰라 기사 아저씨한테 묻는 것도 미안터라. 니 가기 전에 공책에다 우리집 주소하고 언니, 오빠 야들 이름하고 아~들 이름 적어 주고 가래이."
갑자기 어머니께 너무 미안해졌다.
"너거 딸래미도 이제 글자 안다 카든데 할매가 이름도 못 쓴다믄 말이 되나. 그래서 시작해 볼라꼬 하는데 어렵네. 최 서방한테는 말하지마래. 흉 본다 아이가, 알았제?"
처음에는 딸 아이에게 보여 주길 꺼려했던 어머니. 지금은 아예 딸 아이가 오기만을 기다리신다. 갈 때마다 딸 아이가 공책의 맨 앞줄에 또박또박 낱말을 적어주면 어머니가 한바닥을 채워 가는 공부 방식에 어머니도 나름대로 재미를 붙였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 때, 그러니까 그때도 딸 아이가 어머니 공책에다 숙제라고 글자를 써놓고 돌아온 얼마 뒤였다. 전화를 걸어온 어머니는 다짜고짜 딸 아이를 찾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난 무슨 얘기를 주고받나 싶어 귀 기울여 보았다.
"할머니, 숙제 다 했어요?"
"아니, 아적 못했다. 니가 하도 숙제를 많이 내서 팔이 쪼깨 아프다 아이가. 우짜던동 다 해놓을기다."
"할머니, 다음에 가서 다 검사할 거예요."
"알았심더, 선상님요."
딸 아이의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밝고 기운이 넘쳤다. 쓰다만 공책에는 삐뚤삐뚤 쓴 우리집 주소, 다섯 명의 아들과 딸 이름, 며느리와 사위들 그리고 손주, 손녀들의 이름까지 빼곡이 쓰였다. 비록 맞춤법은 약간 틀려 있긴 했지만….
처음부터 차근히 하나하나 써내려 가다보니 눈이 침침하다며 돋보기 안경을 끼고 계시던 어머니. 이후에는 제대로 돌봐 드리지 못했던 글자 공부를 어머니는 아직도 꺼내 보고 있었다.
일년에 딱 한 번, 생각날 때마다 한다고 하니 어찌 그 글자 공부가 하루 아침에 익혀질까. 하지만 익힌 글자를 써 보이며 자랑스러워하시던 어머니는 올해도 작년에 못다한 글자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계셨다.
공책이 필요하시면 말씀하시라고 하니 작년에 둘째 손녀가 생일 선물로 사다 준 받아쓰기 공책이 열 권이나 된다며, 괜찮다고 하신다. 친정집 전화기 옆에는 내가 컴퓨터로 입력해 드린 언니, 오빠들의 전화번호와 핸드폰 번호가 적힌 메모지, 농협에서 불러준 사료 타는 곳의 전화 번호가 맞춤법이 틀린 채 삐뚤하게 적혀 있다.
잘 쓰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쓰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빈 메모지나 전화번호부에 한 줄 두 줄 남겨져 있다. 언제나 큼직하게 잘 보이는 글씨체로 써 놓고 잘 썼다면 만족해 하셨던 어머니. 글 모르는 것에 대한 평생의 한을 가지고 살아오신 어머니가 방 안에서 엎드려 연필에 침을 묻혀 가며 익히며 연습하고 있을 글자 공부. 그 글자 공부 연습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울주군 OO면 OO리 OO번지 김OO, 전화 번호 262-OOOO, 큰아들…' 다시 쓰고 지우고 또 다시 써 보는 이 이름들이 아마도 지금 이 순간에도 어머니의 공책에는 기록되고 있을 것이다.
'엄마, 글자 공부 열심히 해서 저에게 편지 한 장 써 주세요. 그것이 제 소원이예요. 엄마와 속마음 털어놓으며 편지 한 장 주고받고 싶어요. 그 때 제가 그랬죠. 친구 같은 엄마와 딸이 되고 싶다고요. 엄마, 딸 아이가 써 준 글자 다 익혀서 저랑 꼭 편지 쓰고 해요. 엄마의 그 편지 받는 날을 기다리며 옆에서 후원할게요. 엄마,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