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난 10월17일부터 오는 11월4일까지 진행되는 국정감사 때문에 재계는 우울한 가을을 보내고 있다. 총수들은 국감장 출두를 피하기 위해 해외출장 등의 일정을 잡기도 했지만 이 같은 노력은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대기업 CEO 상당수가 증인으로 국회 출석을 요구받은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노회찬 민노당 의원에 의해 3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신청됐고, 남용 LG전자 부회장, 석종훈 다음 사장, 박성수 이랜드 사장 등이 증인으로 채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2007년 국정감사의 이슈로 재계에선 단연 편법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금산법이 집중적으로 거론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재경위에선 정윤재 전 비서관이 연루된 ‘김상진 게이트’가, 금융권에선 BBK 주가조작 사건이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시사신문>은 2007년 국감장 이슈들을 들여다봤다.

삼성 “그룹에서 작성한 것 아냐, 은행업 진출 검토 없다”
이번 국정감사의 이슈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것은 바로 ‘삼성은행 로드맵’이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국감 첫날인 17일 ‘삼성금융계열사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로드맵’이란 삼성그룹 내부 문건 전문을 공개했다. 이 문건은 삼성전략기획실 직속의 삼성금융연구소가 작성하고 금융부문 최고의 기구인 금융사장단회의가 내부지침으로 채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의 각본대로 금산분리 완화”
삼성그룹은 이 문건에서 삼성은행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금융지주회사를 다각도로 검토한 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로드맵으로 금산분리정책에 대한 이론적·논리적 대응, 비은행 금융지주회사제도 도입, 은행·증권·보험업종의 특수성을 고려한 금융산업정책 수립 유도, 비은행금융기관의 은행업 진출방안 마련, 경제력 집중에 대한 올바른 인식 유도 등 5대 추진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2005~2007년 사이에 금산분리정책과 금융지주회사 제도 등에 대한 과제별 추진방안을 제시하고 2005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쳐 2007년 은행업 일부 확보와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을 이룬다는 추진계획표까지 제시하고 있다.
심 의원은 국감에서 “삼성의 각본대로 금산분리 완화 정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며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 등이 2005년부터 금산분리 완화와 재벌의 은행 소유 허용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시기와 논리가 이 문건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은 “시중은행 7개 중에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지 않는 곳은 우리은행 단 한 곳”이고 “국내 자본이 역차별을 받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면서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해왔다.
심 의원이 공개한 삼성 내부 문건에 따르면 “금산분리 과제를 2005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거론되도록 한다. 민감한 사안이므로 연구소가 직접 외부에 노출되기 보다는 외부 연구기관(서울대 기업경쟁력 연구센터)의 연구 과제로 다루도록”하되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가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중장기적 과제로 추진, 비은행 금융지주회사를 대안으로 제안하고 있다.
삼성생명이나 삼성증권 등 삼성그룹의 비은행 금융계열사를 동원, 측면에서 은행업 진출을 노리자는 전략이다. 비은행 금융기관의 은행업 진출을 위해 어슈어뱅킹이나 내로우뱅킹 등의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눈길을 끈다.
심 의원은 “재경부는 2005년 12월 민간과 정부 합동 태스크포스에서 문건이 제시한 ‘어슈어뱅킹’과 ‘내로우뱅킹’ 방안을 검토했고 국회는 자본시장통합법을 통과시키면서 삼성증권의 지급결제 기능을 보장해줬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경제 관료들은 삼성이 만든 시나리오에 따라 춤을 추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심 의원은 이 문건을 통해 “경제 관료들은 물론 대선 후보까지 삼성에 줄서서 삼성공화국을 만들고 있다”며 “금산분리를 무너뜨리고 재벌의 은행업 진출을 허용할 경우 최대 수혜자는 삼성재벌”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재벌이 은행을 사금고로 삼아 경제력을 집중시키고 위험을 은행에 떠넘겨 금융위기는 물론 나라경제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며 “은행을 소유한 재벌이 은행을 통해 다른 회사 정보를 수집, 활용함으로써 공정경쟁 원칙이 깨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부문화, 합법적 승계방편 악용
하지만 이 같은 삼성그룹의 반박에도 ‘삼성은행 로드맵’은 사회에 삼성그룹의 내부 문건으로 통하며 파장이 일고 있다. 이미 경제개혁연대는 문건에 대해 국회가 나서서 진상 조사를 실시하고, 금융감독당국을 비롯한 정부에 대한 삼성그룹 측의 로비 의혹을 철저히 밝힐 것을 촉구하고 나선 상태다. 이에 따라 ‘삼성은행 로드맵’을 둘러싼 의혹은 앞으로도 계속 제기될 전망이다.
한편, 심 의원은 재경부가 지난 10월2일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한 공익법인의 주식 등 출연·취득 제한을 현행 5%에서 20%로 완화하고, 계열기업 주식보유 한도를 공익법인 총재산가액의 30%에서 50%로 완화하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다.
계열사 주식의 공익법인 출연에 대한 세제혜택 지분율을 5%까지 제한하고 있는 현행 상증법은 재벌총수 일가가 공익법인 출연을 통해 상속증여세를 회피하면서 계열사 지배력을 유지하는 사례가 만연했던 것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부문화의 활성화보다는 재벌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권을 강화하고 합법적 승계방편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