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열한 경선을 통해 정동영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경선에 분 ‘정풍’
1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신당 후보자 지명대회에서 정동영 후보는 투표소 투표, 휴대전화 투표, 여론조사 등 최종 집계 결과 누적 득표 21만6천9백84표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손학규 후보는 16만8천7백99표(34.0%), 이해찬 후보는 11만1백28표 (22.2%)를 얻어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정 후보는 지역 선거인단 투표에서 유효투표 수 27만2천1백69표 가운데 13만2천9백96표(49.5%)를 얻어 8만1천2백43표(30.2%)를 얻은 손 후보와 5만4천6백28표(20.3%)를 기록한 이 후보를 눌렀다. 여론조사 환산 득표수에서는 2만1천8백50표(44.1%)를 얻어 손 후보(1만7천5백25표, 35.4%)와 이 후보(1만2백16표, 20.6%)를 앞섰다.
그러나 휴대전화 투표에서는 유효투표 수 17만9천83표 가운데 6만2천1백38표(35.0%)를 확보, 7만31표(39.5%)를 기록한 손 후보에 뒤져 모두 3차례 실시된 모바일 투표에서는 한번도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이 전 총리는 4만5천2백84표(25.5%)를 얻는 데 그쳤다.
정 후보는 후보 수락연설에서 “창당 후 지난 두 달, 우리는 서로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 과정에서 상처도 생겼고 분열도 생겼다. 그러나 이제 치유와 통합으로 가야 한다. 하나가 될 때만 승리의 가능성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 온 몸을 던져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이어 새로운 ‘통합의 정부’를 만들어내자. 역사는 대한민국에 산업화 30년과 민주화 20년을 뛰어넘어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 답답함을 확 뚫어주는 큰 변화를, 국민 모두가 간절히 원하는 대변화를 만들어내겠다”고 강조했다.
이로써 정 후보는 선거 파행으로 치달았던 부정선거 의혹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얻으며 신당의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역전승은 어떻게?
정 후보가 만년 2위에서 역전을 하며 신당 대선후보로 거듭나기까지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신당 예비경선에 나섰던 9명의 후보들 중 5명의 후보들이 컷오프를 통과했으며 이들 중 친노후보들은 단일화를 통해 이해찬 후보로 힘을 모았다. 경선이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후보의 레이스로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범여권 대선 예비후보들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선전하던 손학규 후보와 친노단일화를 통해 힘을 모은 이해찬 후보 사이에서 정 후보는 만만치 않은 힘을 내보였다. 신당 경선의 낮은 투표율이 그에게 득으로 작용, 다른 후보들보다 탄탄한 조직을 가진 정 후보가 앞서나가기 시작한 것.
여기에 신당 경선과 시기를 같이해 개최된 ‘남북정상회담’도 정 후보에게 힘을 실었다. 정 후보는 통일부 장관 시절 수년째 설계도에만 머물던 개성공단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범여권 대통합을 이루는데 일조했다는 것도 그가 ‘통합’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도움을 줬다.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인단으로 올라가는 등 선거인단 대리접수 파문은 경선 파행으로 치달을 정도로 격렬해졌다. 정 후보 캠프측 인사가 배후로 지목되면서 손·이 후보측의 비난도 강해졌다.
휴대전화 선거에서 손 후보의 기세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도 정 후보를 압박했다. 손 후보는 직접 거리로 나와 휴대전화 선거를 부탁하며 그 기세를 역전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다.
정치권은 여러 악재 속에서 정 후보가 신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해 정 후보가 승기를 잡기 시작하면서 여론조사에서도 손 후보를 추월한 것이 결과에 주효했다고 말한다. 또한 여러 부정선거 의혹이 경선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 것도 정 후보에겐 호재였다고 설명한다.

정 후보는 대선후보 선출 직후 노무현 대통령에게 ‘당선 보고’ 전화를 걸었다. 그는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경선지킴이’역할로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이 힘을 얻을 수 있게 돕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며 노 대통령과 인연을 쌓았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탈당, 해체를 겪으며 소원해진 상태에서 가진 첫 접촉이었다.
정 후보의 전화에 노 대통령은 “당선을 축하한다”며 “앞으로 정 후보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잘 껴안고 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 후보는 면담을 요청하며 노 대통령의 도움을 청했다. 정 후보는 또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도 전화를 걸어 당선을 알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예방키로 했다.
정치권은 두 현·전임 대통령과의 거리 좁히기에 나선 정 후보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그가 노 대통령과 소원해진 관계를 추스르지 못한다면 경선 이후 ‘정동영 체제’가 친노파들의 움직임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각인한 행동이라는 것. 또 범여권 대통합을 막후 지휘해 온 김 전 대통령에게 입지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향후 범여권 후보단일화 논의와 ‘햇볕정책’으로까지 이어지는 길을 가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정 후보는 경선에서 2, 3위를 차지한 손·이 후보에게는 공동선대위원장 자리를 권했다. 경선에서의 갈등을 치유하고 ‘反이명박’ 체제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정동영號 앞 암초 가득
치열한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을 치러냈지만 정동영 후보가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다. 여전히 취약한 여론 지지도와 참여정부의 실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 경선과정의 조직선거 논란, 범여권 후보단일화와 5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이명박 후보와의 대결 등이 그것이다.
정 후보가 최연소 최고위원·당 의장·통일부 장관·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 등으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그를 따라다니는 단어는 ‘참여정부 황태자’. 창당에 참여했던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고 노 대통령과 거리를 벌림으로써 참여정부의 공과를 벗고자 했지만 ‘참여정부 황태자’란 단어는 그가 건너야할 가시밭길을 암시한다.
한나라당은 정 후보의 당선에 “한국 정치에서 대표적인 ‘배신의 정치인’”이라고 맹비난했다. 한나라당은 “자신을 정치적으로 끌어준 권노갑씨를 김대중 전 대통령 면전에서 비난하면서 정치적 도발을 시작했고, 노 대통령 당선 후 친정인 민주당을 버리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일등공신이 됐으며, 열린우리당 당의장 2차례와 통일부장관까지 지내 참여정부의 국정실패를 책임져야할 위치에 있었지만 맨 먼저 노 대통령을 비난하고 열린우리당을 탈당했었다”고 꼬집었다.
경선을 치르는 동안 불거진 조직동원 선거 의혹도 그의 발목을 잡는다. 한나라당은 “정 후보는 신당의 불법과 부정, 파행 경선의 주역이라는 점에서 ‘정통성 없는 후보’”라며 이를 지적했다.
민주당 이인제 대선후보와 문국현 대선 예비후보와의 범여권 후보단일화도 문제다. 현재 경선효과로 20%대의 지지율을 기록, 문국현(8.7%), 이인제(3.3%)후보를 여유있게 앞서가고 있지만 문 후보의 상승세에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가 50%대의 지지도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정 후보에게는 높은 산이다. 특히 리얼미터가 범여권 후보가 정동영 후보로 단일화 될 것으로 가정하고 여야 가상대결을 벌인 결과 이 후보가 52.6%로, 23.3%를 기록한 정 후보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정 후보의 기를 꺾는다.
정 후보는 이에 대항해 “20%만 잘살고 80%는 버려지는 2대8 사회, 돈 있고 땅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약육강식 경제가 이명박 식 경제”라며 “차별 없는 성장, 가족 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의 ‘경제대통령’ 이미지를 ‘서민대통령’ ‘평화대통령’ 이미지로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또한 남북경협시대를 강조하며 개성공단을 방문, 한반도 평화정책에 대한 비전을 전하는 등 ‘개성 동영’ vs ‘운하 명박’의 이미지를 대비시킨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