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감사는 10월17일 시작됐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감을 상대당 후보를 검증할 최적기로 보고 준비를 서둘렀다.
BBK 김경준, 검증 불씨 살려
범여권은 심심찮게 ‘이명박 국감’이라는 말을 꺼냈다. 그 시작을 알릴 신호탄으로 선택한 것이 BBK 주가조작 사건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당 경선에서 이미 BBK와 관련 의혹의 눈초리를 받았으나 BBK와의 관련성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범여권은 김경준 전 BBK 대표가 뇌관을 건드려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경준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후보가 대표로 있는) LKe뱅크 자본금 60억원과 e뱅크증권중개 자본금 1백억원, BBK 자본금 30억원 등 세 회사의 자본금 1백90억원이 모두 다스 투자자금에서 나왔다”며 “세 회사 모두 100% 엠비 리(이명박)의 회사이며 관련 이면계약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씨는 자신의 주장을 확인해 줄 수 있는 비밀계약서가 있다고 주장하며 영문으로 ‘Stock Purchase agreement’(주식거래계약)라고 쓰인 30여 장 분량의 계약서 가운데 극히 일부를 내보였다. 이 문서에는 이 후보가 LKe뱅크의 지분을 100% 갖고 있고, BBK와 eBK 등도 이 후보의 소유임을 밝히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인터뷰가 전해지자 정치권에는 “범여권 주요 인물들이 조심스레 미국으로 건너가 김씨와 접촉하고 있다”며 “김씨가 돌아오면 파장은 BBK 사건, 그 이상일 것”이라는 말들이 오가고 있다.
김씨의 미국 법원 인신보호 신청 사건 항소취하서 제출에 이명박 후보는 “김씨는 한국사람 돈을 탈취해서 미국으로 도망간 사람으로, 빨리 한국에 들어와 재판을 받아야 한다”며 BBK과 관련된 의혹에 떳떳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김씨가 들어와도 상관없다고 보는데 행여 김대업식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잘못된 생각”이라며 범여권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 후보의 소송을 대리하는 김백준씨의 변호사가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김경준씨의 본국 송환을 연기해 달라는 신청을 낸 것으로 알려지자 “이중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범여권은 이 후보가 김씨의 ‘귀국차단설’로 맞서고 있다.
이명박 저격수 공격 시작
국감 기간 내 김씨의 귀국은 불투명하지만 범여권은 느긋한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이 후보와 관련 이미 다른 의혹들을 전면에 등장시킬 토대가 마련됐다는 판단에서다.
국감이 시작되자 대통합미주신당 김현미·최규식 의원은 ‘서울 상암동 DMC 특혜의혹’으로 공격에 나섰다. 이 후보가 시장 재직시절 실무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및 외국기업 전용 용지를 무리하게 사업승인을 내줘 결국 특정 업체가 일반분양을 통해 6천억원대 특혜를 챙겼다는 것이다.
국감에 앞서 최규식·임종석 의원 등은 이명박 후보의 ‘상암동 DMC 건설 비리 의혹’과 관련해 “그동안 감사원 감사와 검경의 수사를 촉구했으나 실시되지 않아 국정조사를 요구하게 됐다”며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키도 했다.
이들은 “변변한 사무실 한 칸 없던 업체가 불과 3년 만에 6천억원을 벌어들인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서울시의 특혜와 편법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서울시가 각종 확약서와 계약서 등에 대한 확인 없이 이 건물에 대한 건축 허가와 분양허가를 내준 이유 등을 설명해야 한다”고 이 후보를 겨냥했다.
최 의원은 ‘상암동 DMC 특혜 의혹’과 관련, 직권남용에 의한 특혜 의혹과 불법적 사업승인을 꼬집는 1탄과 자금흐름에 초점을 맞춘 2탄으로 저격수임을 자임했다. 그는 “외국기업에만 공급하기로 한 용지를 파산 직전의 업체에 공급해 이 업체가 3년 만에 6천억 원의 분양수입을 올리도록 했다. 또 오피스텔 건설에 반대하는 서울시 실무진의 의견을 묵살했다”며 이 후보의 증인 채택을 요구했다.
최 의원은 자신의 주장과 관련해 상암동 부지 분양업체가 위장법인을 내세워 서로 돈 거래한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통장 사본을 비롯해 이 후보와의 연루사실을 입증할 특정인의 ‘실명’까지 거론할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은 이 후보 캠프 최측근인 C의원과 분양업체 대표 Y씨, Y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C의원의 친형, 이 후보간 모종의 연결고리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이미 방대한 자료 수집을 통해 상당수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강기정 의원은 이 후보의 ‘건보료 체납의혹’을, 최재성·김태년·신학용·문학진 의원 등은 건교·교육·정무 등 상임위별로 지원사격을 준비 중이다.

국감에서 BBK 사건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신당이 국회 파행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 후보의 친형 상은씨, 처남 김재정씨, 김백준 전 서울에크로 사장,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김경준 전 BBK 대표, 에리카 김 변호사 등 42명의 증인과 참고인을 신청한 것은 신당의 대대적 공세를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정치권은 특히 18일 미 연방법원이 김경준씨측이 제출한 인신보호 청원 항소 각하 요청과 관련한 재판을 열고 신청서를 받아들여 김씨의 한국행이 이뤄지도록 결정한 것이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 법무부의 범죄인 인도 요청에 따라 김씨를 체포, 구금했던 미 법무부 산하 연방 마셜(보안국)은 김씨의 재판과 관련한 기록들을 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하는 등 한국으로의 인도 절차를 밟게 되면 김씨의 한국행은 더욱 가시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씨가 국감 기간 내 한국으로 들어올 가능성은 미지수다. 하지만 대선 직전인 11월 말 귀국할 경우 ‘김경준 변수’가 국감에 이어 대선까지 이 후보에게 ‘태풍의 핵’이 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후보에 대한 의혹이 도곡동 땅 차명소유 의혹으로 번질 경우도 변수다. 도곡동 땅의 경우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발표만 있었을 뿐 정확한 실체규명이 되지 않고 있다. 한 정치분석가는 “신당의 ‘의혹 몰아치기’가 잠잠해졌던 도곡동 땅 차명소유 논란으로 이어진다면 이 후보가 호된 한방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를 전했다.
김효석 신당 원내대표는 국감에 대해 “이 후보의 BBK 주가조작 의혹을 은폐하기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이 몸을 던져 파행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이 후보 관련 의혹은 관련 증인들이 이를 확인하면 된다. 국감이 원만하게 진행되도록 한나라당이 협조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정동영 후보도 “어떤 검증에도 준비가 돼 있다. 이 후보도 검증에 당당히 임하기 바란다. 국정감사에도 함께 나가자”고 강조해 이 후보가 국감을 피하는 것을 견제했다.
한, 정동영 검증으로 반격
한나라당은 ‘검증’에 ‘검증’으로 맞선다는 전략이다. 심재철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번 국정감사는 권력형 비리를 추궁하고 배신당의 후보에 대해서 철저하게 검증을 하겠다”며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에 대한 검증을 예고했다.
한나라당은 ‘권력형 비리조사 특별위원회’에 ‘정동영 조사팀’을 꾸리고 정 후보 비리를 집중 조사했다. 이 조사팀에는 김정훈 원내부대표를 비롯해 차명진, 김기현, 박세환 의원과 박준선 변호사가 팀원으로 소속됐다.
국감이 시작되자 박세환·정두언 의원이 선두에 나서 정 후보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박 의원은 정 후보가 처남 등을 동원해 코스닥기업의 주가를 조작, 거액을 챙겼다는 의혹과 함께 금감원 압력설을 주장했다. 그는 “정 후보가 2001년 처남 등을 동원해 각종 비자금으로 코스닥 기업들의 주가를 조작해 거액을 챙긴 의혹이 있다”며 “판결문과 공소장에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공격했다.
정 의원은 정 후보 부친의 친일 의혹을 제기하고 국민적 검증을 요구했다. 그는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국정감사 질의서에서 “정 후보 부친(고 정진철씨)은 일제하에 5년간(1940∼1945년)이나 금융조합 서기로 근무했다. 당시 금융조합은 태평양전쟁 시기에 일제의 공출기관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패권주의에 협력하는 기관이었다”며 친일행각 가능성을 제기했다.
정 후보의 ‘전주월드컵파’ 정치자금 수수의혹도 제기됐다. 정 의원은 “2005년 벤처사업가 정모 씨가 국가청렴위에 (조직폭력배) ‘전주월드컵파’가 갖은 폭력과 불법을 행사하며 벤처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정치인들을 동원하고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고 한다”며 “(자금을 받은 의원)명단에는 정 후보 이름도 나온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한나라당은 정 후보와 관련, 정치자금 수수의혹은 물론, 통일부 장관 재직시 문제점, 정치적 변신과 관련된 도덕성 문제 등을 공격거리로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위 관계자는 “신당의 이명박 검증 시도에 말려 ‘수비’에만 급급하면 대선까지 두 달가량 남은 정국의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며 검증에는 검증으로 대항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