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권은 이 후보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첫 불만표출과 이회창 전 총재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다. 일부는 “당내 조정으로 곧 해결될 문제”로 보기도 하지만 “이것이 시작”이라는 의견도 상당수다. 이전부터 정치권에 이 후보와 박 전 대표가 ‘함께 가지 못할 사람들’이라는 분석과 이회창 재등극 변수가 파다했던 만큼 박 전 대표의 이번 박·이 돌출에 따른 불만은 이 후보를 겨냥한 것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이들은 박 전 대표의 발언을 두고 총선을 준비 중인 친박 인사들을 돕기 위한 ‘지분요구 시위’라고 말하기도 한다. 끊이지 않는 ‘집안 문제’로 궁지에 몰린 이명박 후보와 그동안 탐탁지 않았던 이 후보와의 관계에서 한 수 물러주는 태도를 취하던 박 전 대표의 돌변의 이면에는 어떤 계산이 들어 있을까. 박 전 대표와 이회창 재등극, 그 안에 숨겨진 진의를 쫓는다.
박근혜 전 대표가 입을 열었다. 당 사무처 당직자 인선에 대해 “저를 도운 사람들이 죄인인가요” 반문하며 공개적 불만을 표한 것.
‘조용한’ 朴 칼 빼들었다
박 전 대표가 불만을 표한 것은 당의 충북, 충남, 울산, 경북, 전남 5개 시도당 사무처장 인사를 단행하면서부터다. 이번 인사에서 당은 친박 인사들을 대기발령하고 친이 인물들을 직무대행으로 임명, 상당수 교체했다.
박 전 대표는 이에 대해 “제가 요즘 많은 전화를 받는 게 일인데 전화 내용이 (친박 성향의 사무처 당직자들을 당이) 임기가 남았는데도 제거하고 한직으로 보내고 잘라내고 한다는 거다. 그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난감하다”며 “정치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 기득권도 포기해왔다. 그래야 나라가 발전한다고 말했는데…”라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박 전 대표측 유승민 의원은 “경선 이후 당직 인사, 선대위 인사, 시·도당 위원장 경선에서 이 후보 측이 승자로서의 배려나 아량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 아니냐”며 “박 전 대표는 이런 일련의 상황에 대해 쌓인 감정을 표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 중앙선대위에서 박 전 대표측 인사 중 최경환 의원만이 유일하게 실무 직책을 맡았다. 공석인 최고위원 중 한 자리만 박 전 대표 측에 할당해 김무성 의원과 김학원 의원이 경합을 벌이다 김무성 의원이 포기한 것도 박 전 대표측의 신경을 날카롭게 했다.
“안 그래도 힘든데 朴까지…”
박 전 대표의 발언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경선 이후 한발 물러났던 박 전 대표가 처음으로 표한 이 후보에 대한 불만이라는 점이 그 첫 번째 이유다.
박 전 대표는 경선 후 정치 활동을 자제하며 자신에게 시선이 모아지는 것을 피했다. 이 후보의 ‘화합’ 요구에 회동을 갖고 이 후보 선대위 고문직을 수락키도 했다. 최근에는 최고위원직 선출과 관련 ‘화합’을 강조하며 갈등의 불씨를 잠재우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의 조용한 행보가 경선 이후 당내 갈등의 불씨가 번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는 평을 내놓았다. 깊은 상처로 적극적 도움은 주지 못했지만 최소한의 도리는 다했다는 것.
경선 이후 최초로 터져 나온 박 전 대표의 직접적 불만에 정치권 관계자는 “친박 인사들이 선거 관련 핵심요직에서 밀려난 것은 ‘보복인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당내 화합을 강조하며 박 전 대표의 협조를 구하던 이들이 박 전 대표를 밀어내는 자충수를 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이 힘을 얻는 두 번째 이유는 이 후보의 상황이 좋지 않아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 무산, ‘차떼기당 복귀’ 등 집안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에 박 전 대표의 발언이 쐐기를 박았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대선 전까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 주변 4강을 방문해 유력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힌다는 전략을 세웠었다. 그러나 1차 방문지로 택했던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면담 불발에 이어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 불발로 차질이 생겼다.
특히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은 비공식 경로를 통해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이 성사됐다는 발표 후 미 정부의 공식 부인으로 ‘굴욕 외교’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 후보가 ‘4강 외교’에 강한 의지를 보였던 만큼 이것이 무산된 후 지지자들의 실망감은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차떼기’의 주역들의 등장도 자충수였다. 한나라당은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인 이른바 ‘차떼기’의 주역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최돈웅 전 의원을 당 상임고문에 임명했다 당 안팎의 비난에 직면했다. 당은 급히 자진사퇴 형식으로 임명안을 철회하며 사안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최 전 의원을 고문으로 임명한 날이 이 후보가 중앙선대위 첫 회의에서 “차떼기당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고 강조한 날이라는 점과 이 후보가 임명 전 보고를 받았음에도 논란을 예상치 못했다는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됐다. 정치권은 한나라당이 앞에서는 개혁을 부르짖으면서 뒤로는 ‘구태정치인’의 컴백을 추진하는 이중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후보에게도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따가운 시선이 쏠렸다.
한 정치 분석가는 “한나라당은 외부의 흔들기보다는 집안 문제로 손해를 보고 있다”며 “간간이 터지는 폭탄뿐 아니라 박 전 대표측 끌어안기에도 더 신경 써야 한다. 박 전 대표의 적극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지 못할 뿐 아니라 제대로 끌어안지도 못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인다면 포용력과 지도력에 의심을 받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박 전 대표의 불만을 다른 각도로 보는 이들도 있다. 단순히 당내 인선에서 배제되는 것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총선에서의 영향력 요구를 위한 일종의 ‘시위’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경선 이후 박 전 대표측의 가장 큰 관심사는 ‘총선’이다. 박 전 대표가 선거법상 이번 대선출마가 힘들어진 만큼 총선을 통해 조직과 힘을 그대로 유지해야 차기에 도전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박 전 대표를 도왔던 의원들도 정치 생명을 위해서는 총선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결국 공천권 행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시·도당위원장 선거 대거 출마, 당권-대권 분리 주장, 당직과 선대위 인선에 대한 반발 등은 ‘총선’을 겨냥한 움직임으로 풀이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이 ‘단지’ 당 사무처 인사로 인한 불만이 아닌 공천권을 요구하는 움직임의 시작이라는 견해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후보와 박 전 대표가 서로 다른 정치적 혈액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박 전 대표의 ‘백의종군’ 발언도 함께는 갈 수 없다는 표현의 일환”이라며 “박 전 대표가 이 후보와의 적극적인 연대에 거부감을 표하고 있는 만큼 ‘이명박 흔들기’를 통해 공천권을 확보할 것으로 본다”는 조심스런 관측을 내놓았다.
박 전 대표가 공개적인 불만을 표한 날 공교롭게도 박 전 대표측 유승민 의원이 “경부운하는 표결 처리해야 한다”고 밝혀 ‘대운하’와 관련한 일대 파란을 불러온 것이 이 같은 시각을 뒷받침한다.
유 의원은 이 후보의 대표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를 두고 5시간 가까이 계속된 의원총회에서 “너무나 중요한 만큼 이 공약을 당론으로 채택할지 무기명 투표해야 한다”고 제의했다. 그는 “다른 공약은 (무기명 표결을)할 필요가 없지만 이 프로젝트만은 삽질을 시작하면 되돌리기가 상당히 힘들다”고 강조했다.
김충환 의원은 “(대운하를) 대표정책으로 내세웠는데 국민 설득도 제대로 안 되면 표가 안 나올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이재창 의원도 “운하가 발달한 유럽의 지형과 달리 우리나라는 문경새재를 넘어야 하고 갑문도 설치해야 하는 등 운하 건설에 대해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가세했다.
‘제3후보’ 띄우기로 이어지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근혜·이회창 외부연대설, ‘제3후보’를 위한 이명박 흔들기 플랜 가동설 등도 제기되고 있다. 박 전 대표측의 흔들기는 국감으로 범여권의 공세를 한 몸에 받아야 하는 이 후보에게 위협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회창의 묵묵부답도 뇌관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박 전 대표와 이회창 전 총재가 이 후보의 낙마를 염두에 두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라면 결정적일 수 있다”며 “BBK 등 국감과 연계되면 내·외부서 이명박 숨통을 조일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