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선 타고 사바의 바다 출렁~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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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295호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



이 세상 맨 꼭대기에 가부좌 틀고 앉아
삼라만상 짓누르며 우쭐대는 사람들에게
날 선 절벽으로 성큼성큼 다가서다가
아찔한 낭떠러지 보여주시는 그분

이 세상 맨 아랫바닥에 두손 모두고 서서
땅을 파며 개똥이나 치우는 사람들에게
마음 틈새 흐르는 썬*한 구슬물로 다가서다가
사바의 바다 건너는 용선 태워주시는 그분

하늘과 땅 가운데 홀로 앉아
뜬구름 마구 회초리 치는 부처님

벼 밑둥만 남은 논바닥에 엎드려
마른 물꼬 뒤적이며 논고동 잡는 부처님

*'시원한'의 경상도 말
-이소리 '용선대를 오르며' 모두

관룡사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를 뒤로 하고 용선대로 오른다. 용선대로 오르는 길은 관룡사 명부전과 새롭게 지은 요사채 사이에 용비늘처럼 꾸불거리고 있다. 비좁은 오솔길 옆 우뚝 선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바알간 감이 너무도 정겹다. 가지 끝에 매달린 잘 익은 감홍시 몇 개 금세 떨어질 것만 같다.

한동안 목을 쭈욱 빼고 감홍시가 저절로 툭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금세 떨어질 듯 떨어질 듯하는 그 감홍시는 아무리 기다려도 떨어지지 않는다. 작곡가 고승하의 동요에 나오는 그 감홍시처럼 내게도 돌 하나 "던져 보시롱~ 던져 보시롱~" 하면서 빨간 혓바닥을 쏘옥 내미는 것만 같다.

"처사님! 그 감 하나 따 드릴까예?"
"아…아닙니다. 오랜만에 이쁜 감을 바라보니까 갑자기 고향생각이 나서 그냥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은 '이쁘다'고 느끼는 그 순간부터 일어나기 시작하는 거지예. 마음에 들면 가지고 싶고, 가지고 나면 묵고 싶고, 묵고 나모(나면) 금방 싫증나는 기 사람 맴(마음) 아입니꺼."

요사채 뒷마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칠십 대 남짓한 보살님 한 분이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 감나무 아래 놓인 긴 대나무를 스스럼 없이 집어든다. 그리고 그 긴 대나무를 치켜들고 내가 바라보고 있는 그 감홍시가 매달린 감나무 가지를 아래로 살짝 비튼다. 이내 잘 익은 감홍시 하나가 대나무 꼭대기에 매달린다.

내게 감홍시를 건네며 미소를 짓는 보살님의 눈빛이 몹시 따뜻하다. 마치 어머니의 품속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 감홍시 하나로 이어지는 인연의 끈. 내게 감홍시 하나를 따주고 이내 종종걸음으로 요사채로 사라지는 저 보살님은 전생에 나와 무슨 인연이 있었을까. 혹, 용선을 타고 다시 사바의 세계로 나온 나의 어머니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용선(龍船). 용이 이끈다는 이 '용선'이라는 말은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반야용선이란 반야의 지혜로 사바와 극락 사이에 있는 고통의 바다를 건넌다는 뜻으로, 부처님이 선장이며 용이 이끄는 배를 말한다. 즉, 번뇌의 세상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생을 구해 열반의 세계로 이끈다는 그 말이다.

그래서일까. 용선대로 오르는 산길은 제법 가파르다. 뾰족뾰족 튀어나온 돌덩이들이 마치 이 세상의 번뇌덩어리처럼 흩어져 있다. 번뇌덩어리를 안고 있는 황톳길도 미끄럽다. 하긴, 열반의 세상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올라가는 길이 그리 쉽겠는가. 몸 곳곳에 켜켜이 쌓인 사바의 번뇌를 비지땀으로 몽땅 쏟아내야만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108번뇌를 씻어내며 20여 분쯤 가파른 솔숲길을 올라가면 눈 앞에 갑자기 집채 만한 바위가 떡 막아선다. 저 바위가 바로 용선대다. 짙푸른 하늘이 닻을 내린 위태로운 용선대 위에는 돌로 만든 석가여래좌상이 결가부좌를 한 채 말없이 앉아 있다. 마치 하늘과 땅의 가운데 앉아 이 세상의 속내를 환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다.

용선대로 오르는 길은 온통 바위투성이다. 바위 틈새를 잡풀처럼 힘겹게 비집고 올라오면서 마지막 남은 사바의 번뇌를 모두 떨구라는 투다. 근데, 누가 이렇게 험하고 위태로운 바위 위에 저 웅장한 석가여래좌상을 올렸을까. 그리고 저 아름다운 석가여래좌상을 누가 어디서 새겼을까.

비좁은 바위 틈새를 비집고 용선대에 올라서면 발 아래 겹겹이 어깨를 끼고 있는 산등성이들이 사바와 열반의 세상을 가르는 파도처럼 넘실댄다. 그 산등성이 아래에는 논배미들이 실뱀처럼 꼼지락거리며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물고 있다. 어지럽다. 이러다가 사바의 바다를 건너는 용선에 올라타기도 전에 멀미를 하면 어쩌지.



하긴, 무슨 걱정이랴. 바로 내 등 뒤에 부처님께서 무한자비의 미소를 지으며 거친 사바의 파도를 잔잔하게 다독거리고 있는데. 근데, 삼도(三道)가 또렷히 새겨진 석가여래좌상의 목에 또 하나 새겨진 저 흉터는 무엇일까. 시멘트 자국으로 새겨진 저 이상한 흉터는 언제 어디서 입었던 상처였을까.

안내자료에 따르면 저 시멘트 흉터는 지금으로부터 4~50년 앞 관룡사에 있던 어느 스님이 이 석가여래좌상이 관룡사를 바라보도록 동쪽으로 돌려 앉히려다가 그만 목을 부러뜨리고 말았단다. 천 년의 비바람에도 끄떡 없이 사바세계를 묵묵히 지켜온 석가여래좌상이 한순간에 망가뜨려지는 순간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저 목에 새겨진 시멘트 흉터만 없었더라면 이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95호)을 보물이 아니라 국보로 지정해도 아무런 손색이 없었을 것을. 아니, 어쩌면 이 돌부처가 그때 그 스님의 지나친 욕심을 다스리기 위해 스스로 목을 꺾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용선대 석가여래좌상(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9번지)은 통일신라 후기 9세기쯤에 만든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용선대 위에 앉아 동남향을 바라보고 있는 이 돌부처는 햇살 좋은 날 저쪽 산등성이에서 바라보면 온몸이 황금빛으로 빛이 나면서 금세 용선을 끌고 열반의 바다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 어쩌면 이 돌부처 뒤에 광배(光背)를 따로 세우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긴, 스스로 사바의 세상에 떠오르는 햇살를 물고 온몸에서 찬란한 금빛을 뿜어 중생들을 열반의 세상으로 이끌고 가는 이 석가여래좌상에 아무런 빛도 나지 않는 투박한 돌 광배가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높이 181cm, 대좌 높이 117cm.

곳곳에 하얀 돌꽃이 마치 우담바라꽃처럼 피어난 이 돌부처의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나 있다. 촘촘하게 붙은 달팽이 모양의 머리카락, 살이 통통하게 오른 사각형의 얼굴, 아래로 길쭉하게 처진 눈, 우뚝 솟은 큰 코, 또렷한 입술에 담긴 잔잔한 미소… 언뜻 석굴암의 본존불을 떠올리게 한다.

용선대 석가여래좌상이 입은 법의는 양 어깨를 물결처럼 매끄럽게 흘러내렸으며, 옷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선이다. 돌부처의 무릎에 놓인 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두툼하면서도 섬세하게 조각되었으며, 길게 늘어진 귀는 어깨까지 닿고 있다. 하지만 결가부좌를 튼 돌부처의 자세가 약간 둔하게 느껴진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상ㆍ중ㆍ하 세 단으로 나뉘어져 있다. 반달 모양의 상대석에는 하늘을 바라보는 연꽃 무늬가 겹꽃잎(꽃잎 안에 꽃무늬가 새겨져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중대석은 팔각으로 각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하대석에는 사각의 받침 위에 연꽃무늬가 겹겹이 새겨져 있다.



아름답다. 특히 늦가을 저녁놀이 발갛게 질 때 바라보는 용선대 석가여래좌상의 모습은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금빛이다. 오늘도 사바세계에서 떠오르는 햇빛과 달빛을 온몸으로 다스리며 가없는 고통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중생들에게 잔잔한 미소로 무한자비를 베풀고 있는 용선대 돌부처….

그래. 나는 지금까지 국보급에 해당하는 여러 불상들을 보아왔다. 하지만 용선대 돌부처처럼 거친 비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사바세상 모두를 자신의 법당으로 삼고 있는 부처님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그동안 우물 속처럼 비좁은 법당에 앉아 배부른 중생들로부터 수많은 공양을 받고 있는 그런 부처님은 숱하게 보아왔지만.

☞가는 길/서울-경부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창녕 IC-좌회전-국도 24호선-창녕여중-계성-옥천마을-옥천매표소-돌장승-관룡사-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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