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깨 농사는 참 잘 되었제?
올해 들깨 농사는 참 잘 되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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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다녀왔습니다



벌써 가을 들녘은 무르익어 갑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무르익은 벼들이 허전한 마음 한 구석을 채워주듯 풍성합니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지었다고 해도 고생한 만큼의 충분한 대가를 받을 수 없는 요즘 농촌현실이지만 그래도 어쨌든 잘 되었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이맘때면 가을걷이가 한창인데 올해는 가을이 더딘 것 같으면서도 금방 지나가버립니다. 이미 고향에선 벼농사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지요. 가끔씩 어머니의 전화 전파를 타고 흘러오는 가을 소식은 벼 추수가 끝이 나고 요즘은 콩 추수에 하루하루가 바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정말 올 가을은 바빠서도 그렇겠지만 혼자 추수하실 어머니를 도와 드리지 못한 죄송스러움이 마음을 더 무겁게 합니다. 아직 여물지 않은 배추와 무가 있어 그나마 그 일거리가 저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어머니는 이런 저런 이유에서라도 한번 들러 얼굴을 내밀기 원하셨습니다.

뭐 그리 예쁘다고 늘 막내딸을 걱정하고 보고 싶어 하는지 투덜거리면서도 내심 기분 좋아하는 제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월요일 아침이면 전화를 하십니다. 노는 날이라 집에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시면서 말입니다.

한창 추수하느라 고생하셨을 어머니를 위해 달리 그 미안함을 달랠 방법을 몰랐던 제게 어머니의 호출은 그다지 싫지 않았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혼자 고향 길에 나섰지요. 가로수에선 벌써 낙엽이 지고 있었고, 주위 산들은 울긋불긋 가을의 절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먼저 가지 않고 논으로 향했습니다. 오전시간엔 항상 들에서 일하고 계셨던 어머니, 그래서 당연한 발걸음을 옮겼지요. 어머니는 밭에서 무얼 하시는지 허리를 구부린 채로 열심히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 아래 어머니는 한번씩 허리를 펴셨는데 그때 마침 길 언덕을 쳐다보다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이제야 오냐는 표정으로 반갑게 맞아주셨고, 그런 어머니를 위해 사들고 간 빵과 우유를 건넸습니다. 깨밭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그간 안부를 묻고 물었습니다. 혼자서 추수하느라 힘들었지만 그 힘든 만큼 소득이 변변치 않아 더 속상한 마음만 생겼다며 어머니는 속내를 내비쳤습니다.

순수한 소득이 도시사람들의 한 달 수입보다 못하다는 걸 어머니는 갈수록 피부로 느끼고 있다면서 내년 농사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부터 하셨습니다.

따뜻한 햇살 아래 어머니와 둘이서 그렇게 앉아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이런 저런 바쁜 일상 속에서 자주 찾아뵙지 못한 미안함의 저와 모처럼 쉬는 날 막내딸과 나란히 얼굴을 마주하고 있지만 이래저래 걱정이 앞서 애가 타는 속마음을 감출 수 없는 어머니의 미안함이 섞여 가을 단풍만큼이나 물들어갔습니다.

어머니는 깨밭을 둘러보며 올해는 그래도 깨가 잘 돼서 들기름도 짜고 들깨가루도 많이 내서 자식들에게 나눠줄 수 있어 좋다고 하셨습니다. 겨울 동안 자식들 밥상 위에 따뜻한 국거리를 올려놓을 수 있어서 그것이 좋다는 것이지요.

깨를 털고 자루에 담아 어머니는 짊어지셨습니다. 제가 하겠다고 해도 굳이 못하게 하셨습니다. 실랑이를 하다 포기하고 어머니의 과수원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가져갈 단감이랑 사과, 배 등의 과일과 채소를 챙기기 위해 들른 과수원엔 못생겼다고 놀려댔던 감나무엔 단감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습니다.

감나무 가지를 붙들고 어머니와 얼굴을 맞대고 감을 땄습니다. 저는 대충 익은 것으로 고르고 있는데 어머니는 그래도 좀 반듯한 놈(?)으로 골라야 한다며 제일 좋은 것을 따다 바구니에 담아주셨습니다. 제법 무거운 깨 자루를 짊어진 어머니는 아직 저보다 더 힘이 세다며 웃으셨습니다.

올해 추수는 끝이 났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배추와 무를 거둬들이는 것인데 아직 배추는 영글지 못한 상태라 몇 주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몇 번을 쉬었다 가자며 말씀을 하셨고 올해도 리어카에 배추를 실어 날라줄 일을 제게 시켰습니다.



제가 쉬는 날이면 언제든지 와서 도와드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어머니 집으로 왔습니다. 구수한 시래기국에 밥 말아 맛있게 먹고 거실에 누워 못 다한 모녀간의 수다를 떨었습니다. 사는 얘기며 살아갈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모처럼 그런 시간을 가져본 어머니와 전 아쉬움을 달래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어스름 해가 서산으로 기울었을 때, 전 울산으로 내려왔습니다. 골목 어귀에서 못내 아쉬워 손짓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오늘, 노곤한 일상을 깨웁니다.

깨 농사가 풍년이라 그나마 다행이라며 마음 다독이던 어머니의 말씀처럼 수확을 맞은 모든 분들이 풍성하고 행복한 가을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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