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 성범죄 사건, 계속 불거지는 '의혹, 의혹 들'
학내 성범죄 사건, 계속 불거지는 '의혹, 의혹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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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신살 뻗친 사립대의 개교기념식장



지난 7월 12일 중앙대 예술대학원생이 자신의 논문을 지도하는 B교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탄원서 한 장이 급기야 89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 사립대의 개교기념식장까지 그 파장을 미쳤다. 지난 10월 11일 중대 아트센터 기념식장에서 대학총장의 기념사 시작과 동시에 발생한 기습시위... <시사포커스>는 그 현장을 중심으로 이번 성범죄 사건을 둘러싼 의혹을 낱낱히 파헤친다.

망신살 뻗친 개교기념일

지난 10월 11일, 2007년도 전국 최우수 학군단의 명예에 빛나는 중앙대 학군단의 호위를 받아 아트센터 기념식장에 입장한 김희수 재단이사장의 격려사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이날 행사는 여느 대학교와 다름없는 평범한 개교기념식이었다. 그런데 곧이어 등장한 박범훈 총장이 기념사를 낭독하는 순간, 객석 중앙 상단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성폭력 사건 은폐하는 박범훈 총장 사과하라!’, ‘K교수 파면하고 성윤리위원회 재개하라!’ 고 적힌 피켓을 든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선 것이다. 기념식장은 순간 묘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 박범훈 총장의 기념사가 시작되자마자 기습 피켓 시위를 벌이는 시위 학생들



총장 기념사가 끝나자마자 한 학생은 크고 떨리는 목소리로 “성폭력 사건 해결없이 거창한 개교기념식 기만“ 이라고 한두 번 외치고 이내 식장 밖으로 끌려나갔다. 그동안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던 학생들도 종용하러 온 행정직원들과 약간의 언쟁을 벌이다 별 마찰 없이 식장을 빠져나갔다.

박 총장은 피켓 침묵시위가 벌어지는 동안에도 기념사를 마치고 단상에서 물러났다. 이어 연단에 오른 한 교직원이 객석을 향해 “저희 중앙대 학생들만 이만 오천 명입니다, 학생들 중에는 자신들의 의견 표출을 이렇게 하는 학생들도 일부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 교직원은 ‘왕년에 자기도 학생운동을 해봤다. 그러나 이것은 아니다. 예의를 지켜가면서 해야 되지 않느냐'고 시위대를 향해 불만을 터뜨렸다.

딸 같은 제자에게 성폭행이 웬일이냐!

중앙대 성범죄 공동비상대책위원회에서 주도한 시위는 학교 밖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자리에서 고광식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시위대는 학생처장과의 즉석 면담에서 성범죄 진상규명에 적극적인 의지가 박약한 학교에게 기습적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즉석 인터뷰에 응한 한 시위 학생은 "지금까지 B교수가 일곱 번의 중재안을 제안했다가 번복한 것은 자신의 범죄를 인정한 것과 다름없는데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위원회)>와 <성윤리위원회>가 그 사실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것만 봐도 성범죄 은폐 배후에 대해 의혹이 이는 것은 당연한 논리"라고 주장했다.

그날 12시 36분께 행사를 마친 박 총장과 김 재단 이사장이 내외빈객과 함께 아트센터 입구에 모습을 나타내자 바깥에서 플랭카드와 마이크를 준비하고 있던 시위대의 구호는 원색적으로 변했다. “딸 같은 제자에게 성폭행이 웬일이냐!”

시위가 끝날 때쯤 한 학생은 "이런 시위를 하면 외부에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난하는데 수수방관하고 있는 학교가 더 부끄럽다"며 고개를 푹 수그렸다. 이날 시위 참가자들은 오후 1시께 총장측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석연찮고 불투명한 학교 당국의 대응

한 대학원생의 성범죄 진상을 규명해 달라는 요구가 <위원회>를 통해서 불발되면서 이 사건은 해결의 '정도'에서 빗나가기 시작했다.

<위원회>란 ‘반성범죄 내규’와 상관없이 지난 7월 18일 A 대학원생의 탄원서를 접수한 중앙대 당국에서 위촉한 다섯 교수와 행정위원으로 구성된 6인 위원회를 말한다. 그러나 지난 7월 30일 열렸던 <위원회> 활동의 문제점은 지금까지도 여러 의혹을 낳고 있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의혹은 <위원회>가 B교수의 명백한 알리바이 조작과 증인의 서면 조작에 대해 ‘해당사항 없음’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결정을 내린 데서 불거졌다. B교수가 내놓은 중요 목격자 증언또한 서면으로만 확인하고 넘어간 행위가 의혹으로 남아 있다.

교수 숙소의 CCTV로 확인된 B교수의 알리바이 위증을 추궁해 그 진상을 밝히지 않은 점도 문제다. 이 사건은 이미 형사 고발 결과에 상관없이 상아탑이란 특성상 지적 양심 차원에서 해명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9월 26일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중앙대에 보낸 공개질의서 내용 중, <위원회>가 피해자를 조사하던 중 2차적인 성폭행과 유사한 결과를 낳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대해 학교측은 문서상으로 그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음은 물론 추후 사건 해결의 그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았음이 취재 결과 확인됐다.

<시사포커스>가 전화 인터뷰를 한 <위원회> 관계자는 "결코 위압적인 분위기는 없었"음을 강조하면서 "그밖에 다른 사항은 말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위원회>는 자체 조사자료를 '피해자 보호 명목'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미 피해자가 '공개해도 좋다'고 동의, 위원회의 느긋한 대응은 의혹에 의혹을 불러올 소지가 많다.

갈수록 무성해지는 소문들

<위원회> 활동을 둘러싼 의혹도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첫째, 위원회를 주도한 아무개 교수가 'B교수의 제자인 문학평론가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진상조사 활동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아니냐' 는 영향력설, 둘째 <위원회>의 아무개 위원이 이미 다른 성범죄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연루설, 셋째 B교수는 학교측 비리 일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 파면될 수 없어 버틴다는 공존공멸설, 넷째 여기저기 얽힌 문단 비리설 등이다.

이밖에도 얼마 전 대자보에서 총장 선거에 B교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의혹 제기와 함께 이 사건은 1, 2 양대 캠퍼스 교수들 사이의 알력에서 발생했다는 음모 내지 음해설까지 이르면서 이 사건은 성범죄 자체의 한계를 넘어선 느낌마저 주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의혹들이 자꾸만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일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종합해보면, 지난 7월 이후 3개월이 넘는 동안 학교 당국의 안일한 대응이 '학내에서 사건을 처리하지 못했다'는 '무능력'을 들 수 있다. 여성 인권 관점에서 <위원회>가 ‘반성범죄 내규’ 자체에 대한 인식도가 낮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와 함께 <위원회>가 사건의 구체적인 정합성과 진실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개교기념식장 안에서 기습시위가 벌어지는 소동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이 학교는 대학교수들이 지성을 발휘하여 심의했어야 할 사건을 가해자 중심적으로 해석하여 형평성을 잃었다는 평가가 학교 내에 번지면서 갖은 의혹과 '썰'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이런 의혹 속에서 결국 유구한 전통의 사립대학교의 명예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으며 사건 당사자들끼리는 '하나는 반드시 다칠 수밖에 없는'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실을 은폐할 무슨 속사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배후 의혹이 힘을 얻을 경우 이번 성범죄 사건의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질 우려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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