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따사로운 가을 휴일 날 아침, 며칠 전부터 계획을 세워오던 이웃과 가을나들이 준비를 했습니다.
지난 여름, 휴가를 함께 보낸 우리 이웃들과 또다시 가는 가을나들이 준비에 피곤한 줄 모르고 아침부터 바빴습니다.
남편은 전날부터 도시락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고, 전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했습니다. 쌀이 떨어져 없다하니 이웃은 쌀 한 되를 보내왔고, 그 쌀로 맛있는 밥을 했습니다.
남편이 아이들이 좋아할 반찬 몇 가지를 더 준비하는 동안 전, 예쁘게 단장을 하고 딸아이를 챙기고 아무튼 단풍놀이에 필요할 것 같은 것들을 차근차근 챙겨 넣었습니다.
휴일이라 차가 밀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좀 일찍 출발을 했습니다. 지난 여름에 불필요한 것들을 너무 많이 준비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최대한 필요한 것들만 골라 챙겼지요. 그래도 세 가족이 함께 떠나는 거라 짐은 없앨 수가 없었습니다.
차 한 대에 자리를 쪼개어 다들 탔습니다. 조금은 불편하고 힘들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모처럼의 휴일 나들이라, 그것도 가을 단풍을 보러 가는 길이라 일념 하나로 힘들어도 참을 수가 있었습니다.
사는 곳 가까이에 좋은 볼거리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마음 편히 둘러볼 겨를이 없던 것을 탓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신나게 경주로 향했습니다. 울긋불긋한 산과 가로수 나무의 단풍들이 즐거운 눈요기를 더해주었습니다.
비좁은 차안에서 얼굴만 쳐다보며 웃고 떠들고, 창 밖에서 벌어지는 단풍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해가며 그렇게 한 시간 가량 달려 도착한 곳은 경주에서도 유명한 남산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등산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짐을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달리고 뛰고 뒹굴며 놀기 시작했습니다. 이웃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간단한 먹을거리를 꺼내 먹었습니다.
그저 그렇게 앉아 있기만 해도 좋았습니다. 집이 아닌 곳에서 정다운 이웃과 함께 마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은 좋았지요. 그런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은 달리기를 했습니다. 웃다 울고, 울다 웃고 그렇게 말입니다.
보다 못한 이웃은 아이들에게 닭싸움 놀이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가족끼리 게임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수건돌리기놀이도 하며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남편이 정성스럽게 싸온 도시락을 꺼내자 모두 놀라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말입니다.
제가 봐도 참 정성을 들인 도시락이었습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웃들 덕분에 저까지 기분이 좋아졌고, 점심을 먹고 난 후, 한 가족과 남편 그리고 저, 이렇게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날씨는 더할나위 없이 따사로웠습니다.
경주 남산, 참으로 오랜만에 찾은 곳이었습니다. 곳곳에 불상이 많았습니다. 신선암 마애보살유희좌상과 삼릉계 석조여래좌성, 삼릉계곡 마애관음입상, 선각육존불 등 의미 있는 불상들을 보았습니다.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산을 오르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았고, 나이 드신 분들이 힘들어하면서도 산행을 멈추지 않는 것도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몇 십 분을 더가니 신선암이란 암자가 나왔습니다. 발 디딜 틈 없는 사람들의 행렬에 물 한 모금으로 가볍게 목을 축인 뒤 다시 산을 내려왔습니다.
너무 상쾌하고 기분이 새로웠습니다. 늘 일상의 변화 없는 틀에서 벗어나 산과 어우러져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이웃과 단풍나무 아래서 사진도 찍고, 그동안 못했던 얘기도 나누며 내려왔습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나니 정말 피곤했던 몸이 개운해지는 듯했습니다. 아이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함께 오르지 못한 이웃에게 산행중 재미있던 일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잊고 있는 동안, 해는 벌써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차가 밀리기 전에 얼른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출출해진 허기를 잠깐 달래고 짐을 꾸렸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음을 약속하며 앉았던 자리를 정리하고, 또다시 비좁은 차를 탔습니다. 이젠 그런 불편함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함께 있어 즐겁고, 같이 어울릴 수 있어 그것 하나만으로 만족스러우니 그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돌아오는 마음은 이미 하늘만큼 땅만큼 행복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저의 마음에도 이웃의 마음에도 말입니다. 그저 이런 시간들이, 추억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행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