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의 또다른 즐거움 고추 따기
시골살이의 또다른 즐거움 고추 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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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고추 수확 “고추는 서리를 맞으면 끝이거든요”



안개는 오늘도 쉬 걷히지 않는다. 창밖까지 밀려온 안개는 산촌의 풍경마저 가렸다. 서리가 내린 대지는 촉촉하게 젖어 있다. 경험상 이런 날은 맑게 갠 하늘을 볼 수 있다. 이른 아침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나그네가 늦게 일어난다는 걸 아는 이는 절대로 아침시간에 방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일어나셨어요?"

조심스럽게 묻는 음성의 주인은 아랫집 할머니다. 옷을 챙겨 입고 고개를 내미니 할머니께서 아침 식사를 하러 오란다. 잔치집이라도 있나 싶어 할머니의 복장을 살폈더니 일할 때 입는 차림이다.

"콩갱이 해왔으니 같이 들어요."

함께 살고 있는 노모는 콩갱이란 말에 할머니를 따라나선다. 이른 아침 그것도 고추밭에서 하는 아침식사에 초대받기는 처음이다. 고추밭가에는 이미 아침식사가 차려져 있다. 전국표씨 가족이 반갑게 맞이한다. 전국표씨 부인이 노모와 나그네의 식사를 챙겨준다. 음식은 콩으로 만든 콩갱이다. 반찬은 간장과 열무김치가 전부지만 진수성찬과 다름없다. 오랜 도시생활에 지쳐 있는 나그네에겐 더없는 보양식이다.

"올해 농사지은 걸로 했어요."

전국표씨의 말이다. 올해 콩 값이 바닥을 치고 있다는 얘길 들었는데 덥석 받아먹기 미안하다. 도시에서 살다 남편 따라 4년 전 시골로 온 전국표씨의 부인이 끓인 콩갱이 맛이 그만이다. 고소한 것이 담백하기까지 하다. 바쁜 도시인들의 아침식사로도 제격일 듯싶다. 나그네가 한마디 한다.

"콩갱이를 이렇게 맛있게 끓이는 거 보니 이젠 정선사람 다 됐네요."
"그런 말 들을 때 가장 기분 좋은 거 아시나보다."

전국표씨 부인이 살포시 웃으며 말한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 참으로 곱다. 콩갱이는 콩을 갈아 끓이는 음식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콩탕이나 콩죽으로 불리지만 강원도 정선 지역에서는 콩갱이라 부른다. 콩갱이를 끓일 때 메밀쌀을 넣는데 찹쌀을 넣거나 옥수수쌀을 넣어도 된다. 입맛에 따라 김치나 감자를 넣어도 좋다.



"시골생활 힘들지 않으세요?"
"처음엔 적응하는데 힘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정성들여 농사지은 걸로 먹고 산다고 생각하니 젤로 맘 편해요."

노모는 콩갱이가 맛있는지 두 그릇을 뚝딱 비운다. 나그네도 아침이지만 두 그릇을 해치운다. 전국표씨 부인이 많이 준비했으니 더 드시라고 한다. 마음 씀씀이 고맙다.

식사가 끝날 즈음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다. 산마루에 해가 걸리자 고추밭에도 햇살이 비춘다. 햇살을 받은 이슬이 영롱하게 반짝거린다. 아름다운 풍경이 도처에 널려있다. 시골살이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다시 고추 따기가 시작된다. 이슬이 있으니 복장을 단단히 갖춘다. 이번에 따는 게 끝물 고추란다. 작년만 해도 네 번 땄는데 올해는 다섯 번 따니 많이 따는 편이라고 한다. 가을더위가 지속된 덕분이란다.

이왕 마지막으로 따는 거 며칠 더 두면 고추가 더 많이 익지 않겠냐고 나그네가 묻는다.



"주말에 비가 오고나면 된서리가 내릴 것 같아서요. 고추는 서리를 맞으면 끝이거든요."

전국표씨의 말이다. 그는 지난 며칠 동안 콩을 타작했으며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 배추를 몇 트럭 팔았다. 올해 농사는 적자라는 푸념을 할만도 한데 표정은 밝다. 땅에 가족의 희망을 걸고 있다는 전국표씨 답다. 희망이라는 값을 스스로 만들어낼 줄 아는 전국표씨의 가족에게 콩갱이 맛있게 먹었다는 인사를 이 자리를 빌어 드린다.

"오늘 아침 식사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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