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바다이야기’ 〈르포〉
끝나지 않은 ‘바다이야기’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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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 표시가 암호, “문 열어주세요.”

“고래 잡으러 가자” 최근 사라진 줄만 알았던 ‘바다이야기’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오고 있다. 지난해 전국을 강타했던 바다이야기 파문으로 인해 전국의 많은 사행성 게임장은 결국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 후 1년, 제2의 바다이야기가 서서히 부활하고 있다. 심해 저층부에서 암암리에 영업을 하던 업주들이 잇따라 적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업소들이 날로 늘어나 성업 중이다. 짤짤이 수준의 코인 분출형 게임이었던 ‘체리마스터’는 판돈을 올리는 새로운 방법으로 당구장이나 유흥업소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사행성 게임의 대표주자 ‘바다이야기’는 어두운 건물 안에서 이름값(?)을 하고 나섰다.

최근 ‘바다이야기’ 게임장 ‘독버섯’처럼 번져
걸리면 실형, 업주들 ‘벌벌’ 조폭 개입하기도

‘바다이야기’ 단속 등으로 자취를 감췄던 당구장 내 불법 사행성 게임 영업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길을 나섰다.

‘체리마스터’는 애들 장난

도착한 곳은 성남 분당구의 A당구장. 당구를 치고 있는 손님들 뒤로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남성들이 보였다. 이들이 몰두하고 있는 것은 코인 분출형 게임기인 ‘체리마스터’. 게임기 지폐투입구에 5천원, 1만원 등을 집어넣고 반복적으로 버튼을 눌러 그림이 일치하도록 맞추는 게임이다.

과거 동네 오락실이나 당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임기임에는 틀림없지만 게임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과거에는 동전을 넣어 그림이 일치하면 분출구로 동전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1만원을 넣으면 5백점이 충전되고 설정된 배당에 따라 그림이 일치하면 점수가 올라가고 그렇지 않으면 삭감된다. 게임을 끝낸 손님이 주인을 불러 화면을 확인시키면 주인은 점수를 확인하고 획득한 점수에 따라 현금을 내준다.

게임시작 10여 분 만에 5만원을 잃었다는 조모(27)씨는 “당구장 10곳 중 7곳에는 이런 기계가 설치돼 있다. 워낙 오래전부터 있었던 거라서 불법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바다이야기’도 다시 나오고 있는 판국에 이건 어른 장난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조씨에 따르면 최근 경기도 시흥이 ‘바다이야기’ 영업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으며 성남, 수원 등 경기도 일대의 도시에도 암암리에 영업장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또 조씨를 통해 성남시 중원구 ‘J시장’ 근처에도 ‘바다이야기’ 영업장이 있다는 제보를 입수, ‘J시장’으로 향했다.

‘J시장’에 도착한 후, 평소 알고 지내던 성남 지역 마당발 오모(37)씨에게 동행을 요청했다. 오씨에 따르면 ‘바다이야기’ 영업장은 아무나 출입이 불가능하다. 작년 바다이야기가 성행했을 당시, 수표에 이서한 연락처를 토대로 영업장을 옮길 때마다 손님들에게 직접 연락해 위치를 알려주고 서로의 소개로 영업장을 찾기 때문에 사전에 연락이 되어 있지 않으면 출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건물 ‘임대’ 표시가 암호

▲ 검게 칠한 창문에 아무표시 없이
이런 번거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 등장한 방법이 바로 ‘임대’ 암호다. 바다이야기 게임이 합법적이었던 작년에는 번듯하게 영업장을 차려놓고 손님을 맞았지만 불법이 되버린 현재, 내놓고 장사를 했다가는 바로 철창신세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상가의 한 층을 임대해 영업을 하고 자주 장소를 옮기는 것. 건물 내의 모든 창문은 속이 보이지 않도록 검게 칠하고 간판을 내걸 필요도 없다. 이중으로 된 방화문과 계단이나 출입문 앞에는 간판 대신 CCTV 한 대를 설치하고 건물 외벽이나 창문에 ‘임대’라는 큼지막한 글씨와 전화번호 하나만 적어놓으면 된다.

어차피 소문으로 하는 장사이기 때문에 알만한 사람들은 어디어디에 영업장이 있는 줄은 꿰고 있고 ‘임대’ 표시를 보고 전화를 걸어 “문 열어 달라”고 말하고 신원을 밝히면 입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았다. ‘임대’ 표시된 곳에 전화를 걸어 “문 열어 달라”고 요청하자 얼굴이 낯설었는지 “누가 소개했느냐?”고 반문했고 오씨의 대답이 시원치 않자 “자리가 없으니 다음에 다시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오씨는 “지인의 소개로 가끔 이곳을 찾는다. 오늘은 모르는 사람(기자)과 동행해 자리가 없다고 둘러댄 것 같다”고 말했다.

사행성 게임이 불법으로 지정된 이후 단속이 심해졌고 과거에 비해 구속된 업자들에 대한 형량이 무거워져서 게임장을 운영업자들이 예민해졌다는 설명이다.

그때 부부로 보이는 커플 한 쌍이 게임장에서 빠져나와 시무룩한 표정으로 오씨와 인사 했다. 오씨에 따르면 게임기마다 정해진 승률이 있기 때문에 게임을 좀 해본 사람들은 게임기 한대를 지키는 편이다. 배팅 금액은 보통 50만원에서 3백만원 정도로 다른 물고기는 다 필요 없고 ‘고래’를 잡아야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난다. 고래가 한번 나온 기계는 그 만큼 기계를 다시 돌려줘야 고래가 나오기 때문에 기계를 놀릴수록 확률도 줄어든다는 논리다.

“저 부부도 게임장에서 알게 된 부부인데 가끔 저렇게 동행해 날밤을 새면서 게임을 한다.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교대로 자리를 지키기 쉽기 때문이다”라며 “3시간 만에 1백만원을 날리고 집에 가는 중이라 저렇게 시무룩하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오씨는 “‘바다이야기’로 유명한 곳은 사실 시흥시 시화근처”라며 “거기는 여기보다 규모도 크고 손님도 훨씬 많다. 기계도 50대에서 1백대에 이르고 규모가 커서 경비도 삼엄하지만 그쪽에는 아는 사람이 있으니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동행하자”고 말했다.

오씨와 함께 게임장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그 순간에도 ‘한 방의 꿈’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은 그곳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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