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담고 있는 저장고, '도서관'의 역사에 관하여
'책'을 담고 있는 저장고, '도서관'의 역사에 관하여
  • 이문원
  • 승인 2004.10.11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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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배틀스의
이곳 서고에서 도서관은 책이 죽으면 가는 장소처럼 보인다. 책들은 스스로를 신비화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시대를 거치면서 도서관은 성장과 변화, 번성과 쇠퇴를 거듭해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책이 쏟아놓는 지식과 완전성의 신화에 사로잡혀 알렉산드리아를 따라잡으려 애쓰기도 하고, 파르나소스에서의 휴식을 추구하기도 한다. 눈이 보이는 사서는 맹인 보르헤스가 서고를 더듬거리다 발견한 성스러운 역설, 즉 책은 우리에게서 벗어날수록 보존이 잘 된다는 역설 앞에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충격에 휩싸인다.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계속 책을 수집해들이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역설이다." 어느 문학 작품의 한 구절이냐고? 천만에, 이는 수세기에 걸친 세계 각국의 '도서관 역사'를 담아낸 매튜 배틀스의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 본문 290쪽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이 책은 얼핏 단순한 '사건 나열'로 이어질 법한 '도서관'이라는 '시스템'의 역사에 도서관 자체의 의미와 그에 따른 인류학적 보고까지도 겸하고 있는 서적이다. 여기서 잠시 <도서관, 그 소란스러운 역사>의 저자인 매튜 배틀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하버드 대학교의 희귀본 도서관인 휴턴 도서관 사서이자 <하버드 도서관 회보(Harvard Library Bulletin)>의 편집자로 알려져 있는 배틀스는, <보스턴 북 리뷰(The Boston Book Review)>, <런던 리뷰 오브 북스(The London Review of Books)> 등에 에세이와 비평을 기고해온 문필가이기도 하며, <하퍼스 매거진(Harper's Magazine)>의 객원 기고가로도 활동중인 정력적인 인물. 현재 와이드너 도서관의 역사와 글쓰기의 역사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인 그야말로, '도서관'과 '글쓰기'의 달인으로서, 어찌보면, 이 같은 책을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격'의 인물일 듯. 한편, 이만한 '경력'의 인물인만치 그가 그려낸 도서관의 역사 또한 알차고 흥미진진하다. 배틀스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을 그가 도서관 사서로 재임하고 있는 보스턴에서부터 바그다드, 고전기록실과 중세 수도원, 바티칸에서 영국의 국립 도서관 사회주의자 '전용' 독서실, 지역도서관에 이르기까지 '도서관'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또 '도서관의 역사'를 증명해 줄 만한 유적들을 모조리 찾아다니며 우리에게 이 지적보관소가 어떤 과정과 형태를 거쳐 변화해왔는가를 살펴준다. 이 '도서관의 역사'를 캐는 일은 그대로 인간행동의 역사를 캐는 것과 같아서, '도서관'을 좇다 보니 어느 덧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에서부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의 쇠락, 중국의 분서갱유 사태, 나치 청년들의 서적 약탈, 중세 바그다드 도서관과 보스니아 도서관 공격에 이르는, 참으로 말많고 탈많은 '역사 탐방'의 현장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인간 지적 행동의 원천이 그대로 인간 행동의 발아로 이어지는 광경은 사뭇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또한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도서관들을 읊어내어 '도서관'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일례로 윌리엄 셰익스피어, 움베르토 에코, 보르헤스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도서관의 특징은 물론, 신구 논쟁이 인 조너선 스위프트의 <책들의 전쟁>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기도 해, 배틀스가 지닌 '도서관'에 대한 풍부한 지식량과 방대한 시선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독일어 도서관을 장려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던 '전설적인 인물' 빌헬름 셰펜을 비롯해 역사에 남을만한 업적을 남긴 도서관 '사서'들의 이야기까지 총망라해, '사서'로서의 자기정체성에 대한 부분까지도 챙기고 있는 매튜 배틀스의 이 '작지만 큰 업적'은, 향후 우리가 '도서관'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서적으로 꼽히게 될 뿐 아니라, 도서관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인류의 지식과 문화 간에 끊임없이 순환하는 재생과 상호작용을 연구해낸 많지 않은 서적 중 하나 - 굳이 이야기하자면, '대표작'이라고까지 할 수 있겠다 - 로써 끊임없이 재언급될 만한 풍부한 텍스트를 지닌 서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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