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와 화장품업계가 한판 ‘다단계 전쟁’에 불을 지폈다. ‘다단계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화장품업계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조치에 업계 수성인 아모레퍼시픽이 정면대응 의지를 나타낸 까닭이다. 공정위는 지난 8월 화장품업계 ‘빅2’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에 ‘다단계 영업 시정명령’을 내렸다. 또한 중견업체들을 상대로 잇따라 제재조치에 나섰다. 화장품업계 전체가 공정위의 조치에 전전긍긍하는 사이 업계 1위인 아모레퍼시픽이 최근 “다단계 회사가 아니다”며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화장품업계가 법원의 판단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아모레퍼시픽은 왜 정면대응 카드를 꺼내 들어야 했을까. 업계를 통해 내막을 들여다봤다.
공정위, 화장품업계 주요 기업 방판행위 ‘다단계 영업’ 규정
제재조치 잇따라 ‘업계 전전긍긍’, 아모레퍼시픽은 ‘정면대응’

다단계 전환 고민하는 이유는?
그러나 공정위는 아모레퍼시픽이 최소 4~7단계의 판매원 조직을 운영하는 등 다단계 판매 영업을 해왔다고 못 박은 상태다. 판매원이 2단계를 초과한 경우와 함께 판매원을 단계적으로 가입시키는데 있어서 판매 및 가입 유치 활동에 대한 ‘경제적 이익의 부여’를 조건으로 활용할 경우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다단계 판매로 규정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으로서는 공정위의 시정명령을 받아들일 경우 영업형태의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기존 영업조직 자체를 전면 수정하던지, 아니면 아예 다단계 판매 전환을 등록해야하기 때문이다. 특히 매출의 핵심인 판매원 모집에서 상당한 역할을 해왔던 ‘추천인 3% 육성장려금 지급’ 등과 같은 지원제도도 이젠 할 수 없게 된다. 아모레퍼시픽이 법의 판단을 최후수단으로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셈이다.
물론 아모레퍼시픽만이 문제는 아니다. 업계의 길라잡이 역할을 했던 아모레퍼시픽을 벤치마킹 했던 후발주자들 역시 똑같은 고민을 안고 가야 한다. 뒤늦게 방문판매에 뛰어든 LG생활건강이 대표적이다. 다만 LG생활건강은 공정위의 조사가 시작된 이후 일단 다단계공제조합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견업체들도 마찬가지다. 공정위의 결론은 대부분이 비슷한 영업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화장품업계 전체에 심각한 고민일 수밖에 없다. 다단계에 대한 시민사회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영업전선에 얼마만큼의 타격을 입힐지 예측이 어려운 상태다. 특히 지난 9월 공정위로부터 고발조치를 당한 코리아나화장품, 한국화장품, 소망화장품, 화진화장품 등 중견업체들은 ‘다단계 판매사’로 전환 문제에 사활을 걸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사실 정면대응 의지의 가장 큰 속내는 방판이 주는 메리트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화장품업계의 매출 대부분이 방판에 의해 형성되고 있는 이유에서다. 다단계 판매의 전환은 아무래도 판매원 감소로 이어질 공산이 크고, 방판보다 다단계 판매의 갖가지 규제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매출 감소가 불가피한 대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따라서 의결서를 받은 이후 한 달 내에 조직을 2단계 내로 변경하던지, 아니면 다단계 업종으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저가 브랜드의 시장 확대가 두드러진 상황에서 기존 업체들이 현재의 방판 제재조치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작은 업체의 경우 도산의 우려도 있다”고 푸념했다.
방판 막히면 회사 존폐 걱정?
상황은 업계 전반에 메머드급 태풍을 몰고 오지만 이번 아모레퍼시픽의 정면대응 카드에 선뜻 지원군을 자처할 업체는 나오기 힘들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행정소송에서 내심 법원이 아모레퍼시픽의 손을 들어주길 바라고는 있지만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를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다가 혹여 나중에라도 ‘괘씸죄’의 부메랑을 맞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이른바 화장품 전문점으로 대변되는 ‘시판’시장이 저가 브랜드에게 완전히 자리를 내준 상황이고, 여기에 방판까지 막혀버리면 외환위기 이후 최대 위기국면에 놓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다. 이래저래 고민만 깊어지고 있는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문점이나 백화점 등은 일부 입점업체 매출에는 영향이 있을지 몰라도 방판에 주력하던 대부분 업체들은 설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면서 “회사의 존폐를 걱정하며 주력했던 것이 방판인데, 유통채널 자체를 뿌리째 바꾸라면 문을 닫으라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공정위는 화장품업계의 우려에 대해 단호한 입장이다. 오히려 현재의 방판을 그대로 두면 법을 교묘하게 악용하고, 건전한 유통채널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불법적인 영업행위는 결국 소비자들의 피해로 돌아가게 된다”면서 “다단계 영업행위에 해당하는 기존 방판 제품들은 일례로 소비자들이 판매수당만큼 과도한 제품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등 문제가 분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