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대구에서 귀하디 귀한 5대 독자가 유괴된 사건이 일어났다. 6대 독자인 남편 육독자(가명)씨와 결혼을 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습관성 유산으로 아기를 낳지 못한 나으리(가명 ). 가문의 며느리 노릇을 하려면 무엇보다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던 나씨는 네 차례나 유산을 하자 어느 날 남의 아기를 유괴하고 만다. 자신이 낳은 아기라고 거짓말을 했지만, 실제로 태어난 지 1백일이 넘은 아기를 갓난아기라고 믿기엔 아기가 커도 너무 컸다.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이 의심하기 시작하자 나시는 겁이 나기 시작했고 부산의 한 보육원에 몰래 아기를 버리고 오기에 이른다.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이 만들어낸 가슴 아픈 사건. 사건을 재구성했다.
습관성 유산으로 시어머니 구박 점점 늘어
아이 갖고 싶은 마음에 그만 ‘잘못된 선택’
1973년 대구 아이를 안고 빗속을 뛰어가는 한 여인이 있다. 빗속을 한참 달리던 여인은 한 보육원 앞에 멈춰선 채 조용히 아이를 내려놓는다.
“아가야, 이 엄마를 용서해다오.”
대체 무슨 사연 이길래 이 여인은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을까. 여인의 손으로 직접 버린 그 아이는 그 집안의 7대 독자였다.
습관성 유산은 사건의 서막
신혼의 단 꿈에 젖어있는 신혼 부부 한 쌍이 있다. 게다가 6대독자인 남편 육독자(가명)의 아이를 가진 부인 나으리(가명)씨. 아들만 낳으면 7대 독자를 낳는 셈이기 때문에 누가 뭐래도 나씨는 집안의 보물이었다.
“자기야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말만해 내가 다 구해다 줄께.”
“난 당신만 있으면 돼요.”
“어디 그럼 우리 아기 잘 있나 볼까?”
나씨의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태어날 아이 생각에 기분 좋게 웃음 짓는 육씨와 나씨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씨의 시어머니였다.
“그래, 7대 독자만 낳아라. 7대 독자!”
하지만 바로 그때, 방안에서 며느리 나씨의 비병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나씨를 황급히 병원으로 옮긴 육씨와 육씨의 어머니는 초조함 속에서 의사선생님을 기다렸다. 한 시간 여가 지났을까. 드디어 의사선생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생님, 어떻게 됐습니까? 괜찮은 거죠?”
“죄송합니다만 아이는 유산 됐습니다.”
청천병력 같은 소식이었다. 오매불망 7대 독자를 기다리던 시어머니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이고 귀한 7대 독자를 유산을 해, 유산을!”
하지만 가족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원인은 습관성 자연유산. 계속되는 유산으로 시어머니의 구박은 날로 심해져갔다.
“아니, 엉덩이는 저렇게 큰데 왜 애를 못 낳아 애를?”
“네가 애를 못 낳으면 나라도 딴 방법을 찾아야겠다.”궁지에 몰린 나씨는 씨받이라도 데려올 태세의 시어머니를 보니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나씨는 결심을 가다듬고 아들 잘 낳기로 용한 점집이나 병원은 다 찾아다니기에 이른다. 7대 독자를 낳을 수 있다는데 아까울 것이 없었던 나씨는 큰 돈을 들여서라도 아들을 낳을 수 있다면 거의 모든 것에 의지했다.
계속되는 노력에 하늘도 감동 했는지 드디어 임신을 하게 된 나씨.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임신 5개월 만에 또 유산을 하고 만다. 이제 와서 식구들에게 차마 유산소식을 알릴 수 없었던 나시는 남편에게 전화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친정에 있겠다”고 통보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유괴

길거리를 배회하던 중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애 엄마를 보자 나씨는 아이가 너무 예뻐보여 곁으로 다가갔다.
“아기가 참 예쁘네요.”
“고맙습니다.”
한참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애 엄마는 화장실이 급하다며 “아! 저 죄송한데 애기 좀 잠깐만 봐주시겠어요?”라고 말하고 황급히 화장실로 향한다.
애 엄마의 부탁으로 아기를 품에 안은 나씨는 감정이 복받쳐 오르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이란 말인가. 나씨는 순간 ‘이 아이는 하늘이 내린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씨는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고 만다. 그 길로 아이를 품에 안고 줄행랑을 친 것이다.
7대 독자 아들을 품에 안고 돌아온 육씨의 집안은 그야말로 잔치 분위기였다. 시어머니도 그 간의 구박모드(?)에서 벗어나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다.
“7대 독자라 그런지 애가 아주 장군감이네. 근데 애가 벌써 이가 났네?”
“그러게요 백일도 안 된 애가 꼭 두 돌은 된 거 같다니까요.”
그렇다. 나씨의 아이는 갓난아이가 하기엔 너무나 컸다. 가족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나씨는 자신의 아이가 아닌 것이 들통 날 까봐 노심초사였다.
한편 금쪽같은 아들을 잃어버린 진짜 부모는 아이 찾기에 나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잃어버린 아들은 그 집안의 5대 독자였다.
5대 독자가 유괴된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져갔다. 각종 언론에서 앞 다퉈 보도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5대 독자 유괴사건에 대한 관심은 나씨의 집안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씨의 시어머니가 급기야 잃어버린 5대 독자의 사진이 박혀있는 전단지를 집으로 가지고 들어온 것이다.
“얘야 이것 좀 봐라. 오죽 칠칠맞으면 5대 독자를 잃어 버리냐?”
“5대 독자요?”
자신이 훔쳐온 아이가 5대 독자라는 말을 들은 나씨는 점점 더 죄어오는 불안함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쯤 되면 들키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사진 속 아이는 나씨의 품에 안긴 아들과 너무 많이 닮은 것이었다.
“애가 너무 큰 거 아니야?”
“아이구 이도 났네?”
주변 사람들의 의심어린 목소리와 눈초리에 점점 초조해져만 가는 나씨,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나씨는 결국 부산의 한 보육원 앞에 아이를 버리고 경찰에 자수했다.
“도대체 왜 그러셨어요?”
“죄송합니다. 7대 독자가 필요했어요.”
1970년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독자유괴사건. 나씨는 이 사건 이후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이 낳은 희생자로 기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