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수산 작가는 1946년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하남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가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이사를 다녀 어린 시절 한곳에 오래 머물러 살지 못했다. 춘천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6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4월의 끝’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1973년에는 한국일보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해빙기의 아침’이 가작으로 입선됐다.
이후 한 작가는 ‘부초(浮草)’ 등을 발표하면서 짙은 감성과 화려한 문체로 1970년대 베스트셀러 작가로 주목받았다. 1977년 제1회 오늘의 작가상, 1984년 녹원문화상, 1991년 제36회 현대문학상 등이 그의 화려한 이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1981년 중앙일보에 장편소설 ‘욕망의 거리’를 연재하던 중 소설 내용 가운데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야유했다는 이유로 ‘한수산 필화사건’에 휘말렸다.
과거사 진상위가 찾은 사건의 발단은 중앙일보 1981년 5월14일자와 5월22일자 소설이었다. 5월14일자 소설 내용 중 ‘어쩌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만나게 되는 얼굴, 정부의 고위 관리가 이상스레 촌스런 모자를 쓰고 탄광촌 같은 델 찾아가서 그 지방의 아낙네들과 악수를 하는 경우, 그 관리는 돌아가는 차 속에서 다 잊을 게 뻔한데도 자기네들의 이런저런 사정을 보고 들어 주는 게 황공스럽기만 해서 그 관리가 내미는 손을 잡고 수줍게 웃는 얼굴…’이라는 대목은 전두환 대통령의 탄광촌 순방을 비유했다는 지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5월22일자 소설에서는 “그 꼴 같지 않게 교통순경의 제복을 닮은 수위 제복을 여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하여튼 세상에 남자 놈치고 시원치 않은 게 몇 종류 있지. 그 첫째가 제복을 좋아하는 자들이라니까, 그런 자들 중에서 군대 갔다 온 얘기 빼놓으면 할 얘기가 없는 자들이 또 있게 마련이지”라며 회사 수위를 묘사하는 부분은 군(경)·민간을 은연중 이간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죄목이었다.
이 사건으로 한수산 작가와 권영빈 당시 중앙일보 출판부장, 정규웅 편집위원, 이근성 기자, 박정만 시인 등 신문사 관계자들은 보안사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해야 했다. 이 때 엄청난 충격을 받은 한 작가는 1988년 일본으로 떠나 오랜 기간 일본에서 생활했다.
1997년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세종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작품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한수산의 작품세계는 이전의 글들이 산문시와 같은 부드러운 문체를 구사,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바탕으로 한 생명의 가치를 탐구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면 근래에는 역사소설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