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발칵 뒤집혔다. 전직 그룹 수뇌부 일원이었던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의 ‘양심고백’ 탓이다. 특히 김 변호사의 고백은 삼성 창사 이래 내부자의 첫 비리 폭로여서 삼성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닌 분위기다.
김 변호사는 지난 10월29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성당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이 차명계좌를 이용해 수조원대 비자금을 조성 관리했다고 폭로했다. 정치, 사법, 행정부는 물론 언론과 시민사회단체 등 사회지도층을 대상으로 불법 로비 행각을 지속했다는 게 김 변호사의 주장이다.
반면 삼성측은 “그룹과 상관없는 돈”이라며 확산 분위기를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김 변호사가 2차 양심선언을 예고한 만큼 파장은 일파만파 확산될 전망이다.
김용철…“계좌 거래 내역 검찰 수사 통해 밝혀질 일”
삼성…“‘~카더라’와 ‘~들었다’는 추정일 뿐 사실 아냐”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이번 삼성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구조본부 법무팀장 출신이란 이유에서다. 그는 지난 1997년 8월부터 2004년 9월까지 삼성그룹의 핵심인 구조조정본부에서 일했다. 철저한 인사관리로 유명한 삼성그룹에서 내부자의 폭로가 나온 만큼 김 변호사의 주장이 ‘사실’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게 세간의 해석이다.
쟁점1. 삼성비자금을 관리했다?
삼성비자금을 폭로한 김 변호사는 이에 대한 물증으로 총 4개의 차명계좌를 공개했다. 그중 첫 번째는 지난 2004년 10월에 굿모닝신한증권 도곡지점에서 보낸 ‘주식잔고확인요청서’다. 이 잔고확인요청서에는 주식 26억6천8백20만4천5백원어치가 남아있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해당 주식은 삼성전자 6천71주로 밝혀졌다.
김 변호사는 “나도 모르는 삼성전자 주식이 보관돼 있다가 인출됐으며 내 명의인데도 계좌의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자신의 명의로 개설된 우리은행 삼성센터지점 계좌에도 삼성비자금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이것은 김 변호사의 2006년도 금융소득 종합과세 납부 실적에서 드러났는데, 무려 1억8천1백85만4천3백26원의 이자소득이 발생한 것으로 돼 있었고 이에 따른 소득세는 2천5백45만9천5백60원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해당 계좌를 당시 이자율인 4.7%를 적용하면 예금액은 50여억원이 된다.
김 변호사는 이 역시도 “소득세를 납부한 사실이 없다”며 “해당 계좌를 알게 된 뒤 계좌 조회를 시도했지만 보안계좌여서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우리은행 삼성센터지점에 개설된 또 다른 통장 ‘1002-301-722xxx’ 계좌와 ‘1002-635-117xxx’ 계좌도 삼성비자금의 통로로 주장했다. 특히 한 계좌는 지난 8월27일 17억원이 입금돼 다음날 ‘삼성국공채 신매수’ 자금으로 곧바로 인출되는 등 돈세탁에 이용된 흔적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은 이 같은 김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김 변호사는 삼성에 재직할 당시 동료에게 차명계좌를 빌려줬고, 그 동료는 김 변호사의 차명계좌로 한 재력가의 돈을 위탁 관리해왔다”며 “그룹과 상관없는 돈”이라고 해명했다.
쟁점2. 삼성이 김 변호사 회유 시도?
삼성이 김 변호사의 차명계좌 실질 소유자를 제3자로 밝히며 삼성비자금이란 사실을 부정하자 김 변호사는 “삼성의 해명처럼 단순히 개인간 돈거래라면 그룹 수뇌부가 나를 만나려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지난 10월29일에 있었던 기자회견 사실을 감지한 직후부터 그룹 인맥을 총동원해 접촉을 시도했다. 이학수 부회장(전략기획실장)과 김인주 사장(전략지원팀장)이 직접 김 변호사의 집을 찾기도 했다. 결국 삼성그룹이 회유나 협조를 부탁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삼성그룹은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이 김 변호사와 접촉을 시도했다는 김 변호사의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쟁점3. 돈 목적으로 한 양심선언?
삼성그룹의 감시와 협박에 견디기 힘들었다고 고백한 김 변호사는 “나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며 삼성그룹에게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삼성그룹은 김 변호사의 요구에 강경한 입장이다. 김 변호사에게 사과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삼성그룹 한 관계자는 “오히려 협박은 우리가 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김 변호사는 지난 2004년 퇴임 전까지 7년 동안 삼성으로부터 1백2억 가량의 급여를 받았으며 퇴임 후에도 예우차원에서 지난 3년간 매달 2천만원씩 받았다. 그러나 김 변호사가 가산을 탕진하고 로펌마저 운영이 안 되는 상황에서 지난 9월, 3년간 지급됐던 2천만원이 끊기게 되자 돈을 노리고 삼성그룹을 모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에 대해 “계좌의 거래 내역이 있기 때문에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일”이라며 “삼성그룹의 문제를 바로 잡는 것이 내가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삼성그룹 관계자 미니 인터뷰
“이건희 회장 세 차례 협박 편지 받았다”
-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삼성그룹이 비자금 조성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김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해명한다면.
▲ 이번 사건은 김대업 사건과 비교할 만하다. 지나고 보면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이회창은 대선에 떨어졌지 않나. 김 변호사는 “~카더라”, “~들었다”는 주장일 뿐 사실로 드러난 일은 아무것도 없다. 김 변호사의 말대로 삼성그룹이 분식회계 등을 자행했다면 몇 조씩 삼성그룹을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겠나. 우리 재무팀에서도 열심히 일 잘하고 있다.
- 김 변호사는 지금까지 자신을 협박하며 괴롭혀 온 것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자를 문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삼성그룹의 생각은 어떤가.
▲ 누가 누굴 협박하나. 회사 나가서 벌은 돈은 모두 탕진하고, 로펌도 잘 안 되지 3년간 삼성에서 주던 돈도 끊겼으니 생활이 힘들어 졌겠지. 게다가 차용계좌로 있던 돈도 혹시나 했는데 다 빠져나가고 나니 오죽했겠나. 상황을 생각해봐라. 김 변호사는 영화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일을 알고 있다’처럼 삼성에 편지까지 보냈다. 삼성이 잘못했다면 사회에 사죄를 하는 게 옳지 김 변호사에게 사과를 할 이유는 없다.
- 김 변호사가 보냈다는 편지의 내용은 무엇인가.
▲ 지난달 3통 삼성 앞으로 편지가 왔다. 한마디로 협박성이었다. 응하지 않았다. 편지를 누가 어떻게 보관하고 있는지는 모르고, 얘기만 전해 들었다.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편지가 있는 것으로 확신한다. 편지 공개는 힘들다. 하지만 추후 공개할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다.
- 추후 삼성그룹의 계획은 어떤가.
▲ 그래도 한때 같이 일했던 사람인데 그 사람이 우리를 모함한다고 해서 우리까지 비방할 수는 없지 않는가. 법적 대응은 고려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