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의 아픔
독일 통일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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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지향 시의 새 지평.1

늘상 분단 민족의 아픔이란 단어에 익숙해 있는 우리들에게 '통일의 아픔'이란 생소하거나 생트집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독일 통일의 환희는 곧바로 적잖은 아픔을 낳았는데, 특히 문학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래 시를 찬찬히 읽어보자.

로마 은행의 미끄러운 계단 위에 앉은 거지 / 브라더 회사 골판지 조각을 깔고 앉아, 한낮에 모자 눌러써 / 모습을 가린 거지. 무엇이 내가 그보다 나을까? 나를 먹이고 재워주는 건 오직 나의 시뿐. / 나의 문장, 문둥병, 더럽게 / 가린 것도 없이 종이에 놓여 있구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말들 / 거리에서 살고 있구나, 동정을 구걸하며. / 비쩍 마른 소년 하나, 손을 벌리고 /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비틀비틀 가고 있다 / 인간 하나를 찾아. 배기가스 속의 집시들. / 희망 하나조차 나는 너보다 나을 게 없구나.-폴커 브라운 <나의 형제> 전문(전영애 <<독일의 현대문학>>, 창작과 비평사,에서 재인용)

독일 통일 후 시인의 눈에 비친 건 영광이 아니라 참담함이었다. 거지보다 더 나을 게 없는 이 물질적. 정신적인 공백은 정치도, 철학도, 문학도 채워줄 수 없는 영혼의 절대빈곤, 곧 이상과 희망이 분해 되어버린 상태였다.

이게 통일의 이상이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도 한 때는 뜨겁게 민족 통일의 이상을 노래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 통일의 '현실'이 아니라 '이상'을 노래했을 때가 독일엔들 어찌 없었겠는가.



안 된다 천부당만부당 안된다!
동독도 서독도 아니다 --
쪼개짐은 내 가슴 한가운데 고통을 주는구나.
나의 조국? 안된다, 천부당만부당 안된다!
온전한 독일이어야만 한다
나이세르강에서 라인강에 이르기까지
플렌스부르크에서 보덴호(湖)까지.
나의 사랑하는 위대한 조국이여,
신이 그 손으로 너를 지켜주기를!

-바너트-잠발 <나의 조국> 전문(위와 같은 책, 재인용)

동독의 제1세대 시인이 이렇게 열망했던 통일은 서독 시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다분히 실험적인 기법으로 단절시대의 독일을 노래한 아래의 시는 분단국가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는 전위적인 시 형식이다.

이곳 그리고 저곳
1 이곳 자유
저곳 예속 2 이곳 평등
저곳 착취
이곳 복지 이곳 건설
저곳 가난 저곳 붕괴
이곳 평화완성 이곳 평화군사
저곳 전쟁광분 저곳 전쟁강도
이곳 사랑 이곳 삶
저곳 증오 저곳 죽음
저곳 사탄 저곳 악(惡)
이곳 신(神) 이곳 선(善)
3 이곳 저 너머에 그리고 저곳 멀리 떨어져
나는 찾는다
한 조각 넝마 땅
굳어져버린 개념들 없이
내가 정주할 곳

-귄터 발라프 <이곳 그리고 저곳>(위와 같은 책, 재인용)

동서독 시인들이 분단 조국을 열창하며 찾고자 했던 통일 독일은 어디로 갔는가? 관점에 따라서는 오늘의 도이치가 바로 그 해답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인류의 이상을 추구했던 관념론 철학이 변증법의 역사적인 시련을 겪은 뒤 이룩되어야 할 독일은 오늘의 이 독일이 아닐 수도 있다.

차라리 분단 속에서 이상을 꿈꿀 때가 시인에게는 오히려 달콤했었다면 너무 잔혹할까. 통일의 환희는 브란덴부르크 개선문 앞에 운집한 군중의 함성과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의 메아리가 사라지면서 함께 자지러지고 말았는가.

물론 통일독일이 가져다 준 영광과 번영과 행복도 엄청나며, 유럽의 역사와 세계사에서 독일 통일은 프랑스 혁명이래 어떤 의미에서건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분단시대에 그토록 열망했던 게르만 민족의 이상이 바로 오늘의 독일 그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좌절이 곧 통일 후 독일문학의 한 흐름을 형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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