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오네 잠이오네 이내눈에 잠이오네
진보청송 긴삼가리 영해영덕 뻗혀놓고
오리오리 삼을적에 이내눈에 잠이오네
샛별같은 이내눈에 구름같은 잠이오네
이내눈에 오는잠은 가시성을 하고싶고
남의눈에 오는잠은 은다리를 놓고싶네
삼사월에 앞구뎅이 갯밭가에 삼씨뿌려
칠월중순 절기되면 무럭무럭 좋아올라
낫을들어 베어다가 삼굿에다 넣었다가
앞내물가 낙동강에 삼단을랑 담가놓고
동네사람 모여들어 삼껍질을 벗겨내네
겨릅은 겨릅대로 발을메어 널어놓고
가닥가닥 물에째서 삼톱으로 톱아내면
살결고운 개추리가 새하얗게 윤이나네
오리오리 길게이어 광주리에 담아내어
필필이 짜낸삼베 열한새라 열두새라.
이제는 기억도 희미한 이 민요는 내 고향 낙동강 강마을에서 우리 고향 아녀자들이 길쌈을 하고 베를 짜면서 부르던 노래였다.
6.25 전만 하더라도 이 땅에는 피륙이 귀했던 터라 목화를 심어 집에서 무명을 짜고 삼을 갈아 삼베를 짜서 옷감을 충당했다.
그중에서도 삼베는 안동에서 짜낸 안동포를 전국에서 으뜸으로 쳐주었고 그 안동포 중에서도 내 고향 대추월, 내앞, 신덕, 금소 등지에서 짠 안동포가 최상품으로 꼽혔다.
내가 어린 시절, 여름 저녁 멍석이나 들마루에서 잠이 들었다가 서늘한 밤기운에 잠을 깨 보면, 동네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이 지게뿔에 초롱불을 걸어놓고 밤 늦도록 삼을 삼고 계셨는데,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어머니들은 삼을 삼으시던 꺼끌꺼끌한 손으로 내 이마를 쓰다듬어 주셨고, 어느덧 시각은 삼경을 넘어 어머니들이 오는 잠을 쫓으려고 부르던 이 민요소리를 어슴프레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내 소견으로는 어머니들이 삼을 갈아 베를 짜는 일이 재미있고 즐거운 일로 여겨졌었다. 그것은 아마도 선잠을 깬 내 이마를 꺼끌꺼끌한 손으로 쓰다듬어 주시던 그 자애스런 손길과, 저녁 밤참으로 이웃 아낙들이 햇감자를 쪄와 나눠 먹던 인정과, 그리고 자욱한 강마을의 야기(夜氣)와 초롱초롱한 별자리와 함께 어머니들이 부르시던 노랫가락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디 그 길쌈과 베틀일이 손쉽고도 간단한 일이었으랴!
내가 자란 후 비로소 느낀 그 일은 참으로 어렵고도 힘든 노역이었다. 그런데 그토록 짜기가 어렵고 힘든 특산품 안동포가 어찌하여 우리 고향에서 생산되었는지.
아마도 우리 고향의 토질이 삼베의 원료가 되는 삼을 갈기에 적당한 토질이었던 탓이었을 것이다.
낙동강 상류가 되는 길안천(吉安川)과 반변천(半邊川)이 마주치는 합수목에 자리잡은 우리 고향은 오랜 세월 동안 물줄기가 날라준 물티가 앉아 토질이 비옥했고, 고향 어른들은 바로 그 낙동강 상류,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그 합수목 앞구덩이라는 벌에 삼씨를 뿌려 삼을 키웠던 것이다.
그 삼은 하지 무렵이 되면 굵기가 새끼손가락만큼 커지고 키는 어른들의 키보다 더 크게 자란다. 그렇게 되면 어른들은 강너덜에 삼굿을 마련하고 푸나무를 태워 돌자갈을 달군다. 그리고 다 자란 삼을 베어다 잎은 추리고 단으로 묶어 그 삼굿에 찌는 것이다.
이렇게 쪄진 삼은 낙동강 맑은 물에 푹 담궈 껍질을 벗겨낸다. 이때 껍질을 벗긴 삼의 속대궁은 하얀 겨릅이 되고 벗겨진 삼껍질은 가닥가닥 물에 적셔 삼톱으로 톱아진다. 이런 과정을 거쳐 톱아낸 삼껍질은 겉에 붙은 꺼먼 껍질을 벗어버리고 살결 고운, 새하얗게 윤이 나는 껍질로 변하게 되는데 이것을 고향에서는 개추리라고 불렀다.
이렇게 공이 든 개추리를 가지고 바로 삼베를 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려운 일은 바로 이때부터인데 고향마을 아낙네들은 이 개추리를 가지고 삼삼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삼삼기란 개추리를 더욱 가늘게 쪼개 가느다란 끈을 하나로 잇는 작업을 말한다.
이 일이야말로 삼을 심어 삼베를 짜는 일 가운데 가장 공이 많이 드는 일로서 이 일을 할 때면 온 동네 할매 아지매들이 한데 모여 두레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일이 너무나 힘이 들고 일손이 모자라기 때문에 이웃 마을로 시집간 딸도 모이고 고모들도 모여 밤을 새워 일을 돕게 되는 것이다. 아, 그때 그 정성이라니!
삼삼기는 가닥가닥 갈라진 가는 개추리를 무릎에다 손으로 비벼 삼끈으로 잇기 때문에 여인네들의 하얀 무릎에 피가 맺혀 발갛게 부풀어오른다.
이때 고향에서는 집집마다 남에게 질세라 삼삼기를 서두르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아마도 집에서 부리는 머슴들에게 여름을 날 시원한 중의 적삼을 어서 해 입히고, 또 집안 노인들께도 무더운 여름을 날 시원한 삼베옷을 지어 드리기 위해서 다툼을 하게 되는 것이었으리라.
아마 누구 집에서 가장 먼저 삼베를 짰다 하면, 그 집 며느리나 안주인들이 마을에서 가장 부지런하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일지 몰라도, 집집마다 삼베를 짜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렵고 지루한 삼삼기를 경쟁적으로 치러냈던 것이었다.
바로 이때 아낙네들은 밤을 새워 지게뿔에 초롱을 걸어놓고 일을 하게 되는 것이고 "이내 눈에 오는 잠은 가시성을 하고 싶고, 남의 눈에 오는 잠은 은다리를 놓고 싶네"라는 민요를 불렀던 것이다.
내 집에서 먼저 삼을 삼기 위해 내 눈에 잠이 오는 것을 가시로 성을 만들어 막고 싶고, 남의 눈에 오는 잠은 은(銀)으로 다리를 놓아서도 어서 잠이 오게 했으면 하는 노래는 오늘날 입에 올려보아도 흐뭇한 미소가 감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