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창 전 총재가 대권에 도전한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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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보수연합의 극적 재결합을 꾀한 별거?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측의 최재천 의원은 이회창 전 총재 출마설에 대해 “역사에 대한 반동이자 수구꼴통보수의 치욕스런 귀환”이란 원색적인 비난을 날렸다. “오늘로서 이명박 후보의 대세론은 끝났다. 더 이상 이 후보는 한나라당의 대표선수가 아니다.”고 희망사항을 말하기도 했다.

우파 세력의 분열을 염려한 한나라당 초/재선 의원들, 김동길 조갑제 등의 우파정객들도 이 전 총재의 대권삼수 출마에 대해 내놓고 ‘노망’, ‘철회 요구’ 등의 직격탄을 날렸다. 그런데 11월 17일 이 전 총재는 칩거 중 장고의 시간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전 총재는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글을 통해서 먼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데’ 대해 ‘사죄와 용서’를 구했다. 잇단 대선 패배로 인해 ‘당’이 입은 치욕스러운 오명’을 거론한 다음에 홀로 ‘고군분투’했던 박근혜 대표을 향해 ‘미안하고 참담’했던 마음도 언급했다.

이어 “이번 대선에서 반드시 좌파 정권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 뒤에 한나라당의 경선 과정과 그 후 당내 분열상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명박 후보의 리더쉽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직하고 법과 원칙을 존중하는 지도자만”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다고 말한 이 전 총재는 에둘러서 이 명박 후보 낙마에 대한 불안감을 언급한 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정직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정신과 용기가 있”는 지도자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좌파정권의 ‘햇볕정책’은 ‘북한의 핵실험’ 때문에 실패했다고 규정한 이 전 총재는 자신에게 기회가 온다면 ‘잃어버린 10년의 시대’를 끝낼 것임을 천명했다.

이날 전 총재의 대선출마 선언 전에 있었던 보도에서 박근혜 전 총재는 자신의 ‘정권교체의 염원’은 변함없음을 내비쳤다.

이른바 우파들이 애용하는 한나라당의 ‘잃어버린 10년'은 이 전 총재가 잃어버린 10년이기도 하다. 1997, 2002년 대선에서 이 후보는 초반의 높은 지지율을 믿고 있다가 막판에 김대업 사건과 노무현-정몽준의 극적 단일화란 카운터펀치를 맞았다.

이 전 총재의 좌파 정권에 대한 반목과 증오 근저에는 이념상의 차이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치유하기 힘든 상처가 남아 있다.

그동안 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설을 놓고 무수한 해석성 보도가 잇달았다. 김 전 대통령이 훈수 정치를 둔다는 빈축을 사는 동안에 이 전 총재는 복안을 다듬고 있었다. 그것은 막판 역전 꾀에 밝은 ‘좌파정권 수호자들’의 생리를 무력화하고 더 늦기 전에 정권교체를 이루자는 것이었다.

지난 1년 동안 이명박-이재오의 한나라당은 낙관 분위기였다. BBK 등 악재 속에서도 보수 언론들의 든든한 봐주기에 힘입기도 해서 지지율 낙차는 걱정할 만한 정도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역시 이 전 총재가 후보로 뛰던 시절에도 보수 언론들은 한나라당 후보의 막강한 지원 세력이었다. 그러나 이 전 총재는 큰싸움에 패하고 말았다.

최근 이재오 의원의 입을 통해서 ‘뉴라이트신당’ 얘기도 불거져 나왔다. 대권 접수 후 신당 창당은 이회창류의 우파 세력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깨끗하게 경선에 승복한 박근혜 전 총재의 입장에선 드러내놓고 탈당할 명분도 없고, 뚜렷한 실리도 안 보인다.

▲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회창 전 총재


나설 사람은 이 전 총재뿐이었다. 이런저런 앙금이 남아 있을 바에는 과감히 잠시 별거했다가 진짜 서로 만나지 않을 수 없을 때 다시 만나면 결속력은 곱절로 커진다. 이참에 경선 승리 후에 오만해진 이재오 의원 등 수권 세력들에게 일침을 가해 분파의 가장 큰 수장을 제거하는 것도 정치적 이득이다.

이 전 총재의 속내의 배경엔 여러 상황이 중첩되어 있으리라. 무소속으로 출마, ‘혈혈단신’ 후보로 나서 우파들의 가슴에 우국충정을 불러 일으켜 좌향좌한 국가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것이 최선책이다. 막판에 범보수세력이 밀린다 싶으면 살신성인의 자세로 후보를 사퇴하는 모양을 취하거나, 대권을 넘볼 만큼 지지율이 상승하게 되면 대권 삼수에 성공하게 된다. 이 전 총재로서는 손해 볼 게 전혀 없다. 이명박 후보의 낙마나 지지율 급락이 전혀 현실성이 없는 소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전 총재의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의 마지막 부분은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정권교체라는 온 국민의 간절한 소망을 제가 좌절시키는 일만은 결코 없을 것임을 굳게 약속합니다.

만약 제가 선택한 길이 올바르지 않다는 국민적 판단이 분명해지면 저는 언제라도 국민의 뜻을 받들어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결단을 내릴 것입니다.
저에게는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대한민국을 살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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