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통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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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지향 시의 새 지평.3



우리의 통일시가 이렇다면 북한은 어떨까?

림진강 칠백리 푸른 물결은 / 굽이쳐 흘러가네 바다로 가네 / 바위를 부시며 기슭을 치며 / 낮에도 한밤에도 달려만 가네 / 아, 림진강 림진강 / 너의 흐름 막을 자 세상에 없네 //천 갈래 만 갈래 흘러온 물이 / 모이고 합쳐서 바다로 가네 / 한 강토 한 겨레의 마음을 싣고 / 조국의 큰 바다로 달려만 가네-박팔양 <림진강> 전문(김철학 엮음 <<북한의 대표적 서정시>> 한빛,에서 재인용)

분단의 상징인 임진강을 통일 의지의 상징으로 바꿔 노래한 이 시는 북한 시문학이 지닌 주제의 선명성과 단일 구조에 단일 소재라는 특성이 드러나 있는 북한식 통일시의 한 전범을 느끼게 한다.

아래 시는 더욱 선명한 한 폭의 그림으로 부각된다.

가슴 아프구나 / 이대로 달리면 서울 길은 한 나절인데 / 내 어찌 동창 마을에 발동을 멈추고 / 벅찬 숨결 억눌러야 하느냐 //저 삼각산 밑에 내 집이 있다. / 내 손으로 지붕을 얹은 단간 초막 / 아침 저녁 여닫던 싸리문 활짝 열고 / 성큼 들어서야 할 집이 저기에 있다. //

저 삼각산 밑엔 내 어머니가 있다 / 총을 메고 집을 떠날 때 / 막바지 길을 따라 나오며 / 이기고 어서 돌아 오라 바래 주던 어머니 / 백발이 얹혀도 살아서 기어이 / 이 아들을 만나려고 저기에 산다 //차체에 새겨진 붉은 별 하나로도 / 몇 백 몇 천 번을 오갔으련만 / 작별의 그 날, 그 말이 가슴에 옹이로 박힌 / 십여 년이 지나도록 풀지를 못했다. //

달리자, 나의 자동차야 / 승승장구 달려 온 사랑하는 통일호야 / 차체에 빛나는 이 별들이 아직 모자란다면 / 내 어머니 바라 보실 / 북녘 하늘의 별들을 따다 / 빈 틈 없이 차체에 새겨 넣으리라 //

꿈결에도 핸들을 남으로 돌려 / 눈에 더욱 훤히 익혀진 서울 길로 / 내 선참으로 질풍처럼 달려 갈 / 그 날을 위해 / 달리고 또 달리자-김재화 <달리면 서울 길은 한나절인데> 전문.(위와 같은 책 인용)

냉전적 가치관에 젖은 남한의 독자라면 2련 까지는 공감하다가 3련 2행부터 북한식 전투성이 드러난다는 비판을 할 수도 있지만 그 뒷부분은 다시 부드럽게 넘어간다. 물론 이 시에 등장하는 ‘별’은 연에 다라 그 상징 의미가 조금씩 다른 이념성을 담고 있는 것이지만 독법에 따라서는 이 정도는 넘겨버릴 수도 있다. 이 정도의 통일 지향시라면 이제 남북은 얼마든지 서로 시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손꼽아 이제는 마흔다섯해....”로 시작하는 장혜명의 시 <장벽은 무너져야 한다>는 “걸어서도 사흘길에 가닿을 / 나의 아버지 고향땅에 / 아직도 보내지 못하고 있는 편지”를 노래한다. “세상을 하직하는 침상에서 / 고향 하늘 쪽으로 머리 돌려 달라시며 / 어린애마냥 목놓아 할머니를 부르다가 / 부르다가 부르다가 눈도 감지 못한 채 / 이 아들에게 맡기고 한 아버지의 편지”를 두고, 시인은 이렇게 절규한다.

세계의 선량한 사람들이여
동정의 눈물 지으며
나 하나만을 위안하려 하지 마시라
조선사람 그 누구의 가슴에나
이런 상처가 새겨져 있다
북남3천리 흩어져 사는 가족 그 어느 집에나
이런 기막힌 사연의
보내지 못하고 있는 편지가 있다

-장혜명 <장벽은 무너져야 한다>(위와 같은 책 인용)

다른 한 편의 이산가족 시를 보자.

참으로 / 그날이 와서 통일이 와서 / 문득 /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면 //아아, 너무도억이 막혀 / 수수십 년 새겨온 그 말들을 다 잊고 / 가슴 터지고 심장 터지는 소리 /다만 엄마 --- 하고 울릴게다 //

장에 갔던 어머니 늦어만 와도 / 엎어질 듯 달려가 안기던 목소리 / 하루만 떨어졌다 만나도 / 마냥 응석을 부리던 목소리 //세밤 자고 오마고 / 외가에 간 어머니건만 / 까맣게 기다리던 그 세밤이 / 천번 만번 지나도록 못 오신 어머니 //

칠순도 더 넘은 백발이련만 / 상기도 내 머리 속엔 / 아주까리 기름이 반드럽던 / 가리마 반듯한 그 까만 머리뿐 //어머니 어머니 / 어머니를 만나기 전엔 더 먹을 수 없는 이 나이옵고 / 이 아들을 보기 전엔 / 차마 눈을 감을 수 없는 어머니려니 //

사랑은 쇠를 녹인다 하였거늘 / 이 아들과 어머니 사랑만이 아닌 / 온 겨레의 사랑이 합치면 / 분렬의 콘크리트 장벽을 어찌 못 허물랴 //

또 한층 높이 오르는 / 통일거리 건설장에서 / 새날을 맞으며 / 뜨겁게 새겨보는 마음 //어머니와 이제 만난다면 / 나이도 세월도 다 잊고 / 헤어질 때의 그 나이로 되돌아가 / 어머니 치마폭에 안기리다 //

참으로 통일의 그날이 오면 / 막혔던 물목이 터지듯 / 내 겨레 내 민족이 하나로 합쳐지는 소리 / 삼천리를 그대로 흔들어 놓을게다 //오오, 지열보다 뜨거운 통일의 환호성 / 땅도 하늘도 아닌 바로 내 가슴 속에서 / 엄마 -- 하고 터져 / 지구를 통채로 흔들어 놓을게다! -리종덕 <참으로 어머니를 문득 만난다면> 전문 (위와 같은 책)

별 거부감 없이 읽힐 수 있는 이런 시들의 비결은 이산가족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말하자면 인간 존재의 원초적인 본능에 기초한 이런 정서적인 접근은 이미 일제 식민통치 아래서 목청이 찢어지게 외쳤던 바로 그 발상법의 되풀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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