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가 바뀌면 학생들은 서클 지도교수를 초빙하기 위하여 교수들의 연구실을 기웃거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교수들은 지도교수 요청을 쉽사리 수락하지 않으려 한다. 서클 지도는 교수들의 의무 사항이 아니다. 그래서 괜스레 지도교수 요청을 응낙했다가 서클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학내 문제에 말려들게 되면 귀찮은 일만 생기게 된다.
요사이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서클을 중심으로 모인다. 이상하게도 같은 전공을 가진 학과를 중심으로 모이기보다는 서로들 상이한 전공을 가진 학생들의 취미모임인 서클을 중심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부터인가 서클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전공의 테두리를 벗어나고자 했다. 같은 전공을 가진 학과 내에서는 그들은 다소 싫증을 느끼고 있었다.
2∼3년씩 같은 학과에서 공부하면서 같이 지냈으나 그들의 인간관계는 발전하지 못했다. 그것은 학과란 전공을 중심으로 모인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주임교수가 있고 여러 분의 교수들이 있으며 조교가 있고 학생들이 뽑은 학회장이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조직체 안에서의 공적인 활동이다. 여행을 가도 총·학장의 허락밑에서 인솔교수가 따른다. 젊은이다운 에너지를 발산시킬 계제가 전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전공학과에서의 학업의 성취도에 얽매일 필요 없이 캠퍼스의 학생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서클로 모여드는 것이다. 그래서 전공학과보다 취미서클이 훨씬 더 소속 학생들 간의 유대를 돈독하게 해주었다.
조직체의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는 긴장과 사고의 훈련은 있을지 몰라도, 젊은이다운 에너지의 끊임없는 폭발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학생들 사이에 서클모임이 대단한 인기를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과 내에서와는 달리 서클에서는 선후배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고, 이성과의 접촉도 자연스럽고 용이하다.
홍영희 교수는 궁금증이 일었다. 교수와 학생의 만남이란 본질적으로 가르치고 배운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수가 학생을 아무리 독립된 인격체로 대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어떤 일방적인 흐름이 있으며, 그 흐름은 자칫 훈육적인 성격을 띨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서클 지도교수는 조금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어차피 동호인들의 모임이다. 지식의 전수가 아닌 것이다. 대학 선생 노릇을 하는 중에 자기 취미와 동일한 서클의 지도교수가 된다는 것은 조금은 유쾌한 일이다.
홍 교수는 사진에 남다른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슨 뛰어난 감각이나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그녀는 자신의 핸드백 속에 소형의 사진기를 언제나 가지고 다녔다. 감동적인 광경이나 아름다운 표정을 보면 그것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그녀가 소형의 카메라로 만족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역시 아마추어임에 틀림없다. 소형 카메라로는 피사체의 모습을 정밀하게 담아내는 데에는 역시 부족하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강의를 한 시간 더 했다. 개학 첫날이라 학생들의 출석률이 저조했다. 겨우내 겹겹이 쌓였던 정적이 완전히 깨어지지 않은 채 교정의 구석구석을 메우고 있었다. 학생들이 다들 등교해서 북적거려야만 정적은 깨끗이 물러가는 것이다.
두 번째 강의를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온 그녀는 다시금 창문 너머로 시선을 주었다. 강의 대안에는 녹음 짙은 산성이 그림 같은 그늘을 수면 위에 드리우고 있었다. 강의 남쪽과 북쪽을 이어주는 긴 다리 위에는 교각이 구름다리처럼 올려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강의 수면에서 올라온 안개가 서려 있었다.
겨울방학 동안의 지나간 3개월이 아쉽다면 아쉽고, 후련하다면 후련하다고 생각되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결코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과 분리된 자신의 삶을 생각 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과 언제나 함께 하는 자신을 생각한 적도 없었다. 너무나 소중한 그들이지만, 그러기에 절대적으로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그들이지만, 이상하게도 이렇게 오랜만에 그들과 헤어진 지금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홍 교수는 연구실의 창문 밖을 내다보고 안개가 올라 오는 강의 수면에 시선을 보낼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여유를 음미하고 있었다.
하류에서 안개가 올라오고 있는 푸른 강줄기는 지난 3개월 동안 잊고 지냈던 사색의 여유를 그녀에게 불러다 주었다. 사색한다는 것, 그것만큼 즐겁고 아늑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