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자금 의혹’ 사태의 연장선에 또다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매각 사건’이 부상했다.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그룹 법무팀장)가 ‘불법과 탈법 행위가 있었다’고 폭로한 이유에서다. 특히 김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 장남인 재용씨(삼성전자 전무)의 불법 재산형성 과정에 대한 삼성 내부 문건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터무니없다’고 반박하고 나선 상태다. 이 문제는 사실 삼성그룹에겐 카운터펀치와 다름없다. 현재도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인데다, 검찰 수사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던 이 회장과 이 전무의 직접 소환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동안 삼성그룹이 여론의 뭇매를 맞아가면서까지 몰두했던 후계승계 문제도 ‘빨간 불’이 켜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용철 변호사 폭로로 이건희 회장 직접 소환?
이재용 전무 ‘불법 재산형성’ 내부 문건 등 변수
의혹 사실로 드러나면 후계승계 문제 원점으로?

이런 김 변호사의 주장이 만약 사실일 경우 파장은 예측이 어려울 만큼 크게 확산될 수밖에 없다. 사건의 전면 재수사가 진행될 수도 있고, 법정에 나간 허태학 박노빈 전현직 사장 등 삼성측 11명의 관련자들을 포함해 삼성 최고위층의 '위증 처벌'도 불가피한 이유에서다. 삼성의 중심이 한방에 흔들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에버랜드 사건의 이면은…
삼성그룹도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김 변호사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조작이 절대 불가하다는 모순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미 1,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됐고, 삼성 측 피고인들이 검찰의 증거 제시에 거의 동의한 상태이며, 빼돌렸다는 대부분의 임원들이 모두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수사기록이 명백히 남아있다는 점 등이다.
현재 참여연대와 민변이 나서 삼성 비자금 의혹과 함께 에버랜드 사건 의혹까지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한 상태다. 검찰이 '물증'을 거론하며 수사 착수 여부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지만 여론을 감안해서라도 수사 자체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게 검찰 안팎의 중론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이미 3년 넘게 법정공방이 이어진 사안의 연장선인 까닭에 주장과 반박의 날선 공방정도에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도 있는 문제다. 사실 에버랜드 사건이 진행되면서 검찰은 이 회장의 개입 의혹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 등이 계열사별로 조성할 비자금 규모를 할당했다거나 이 회장 장남인 이 전무의 불법 재산형성 과정에 대한 삼성 내부 문건이 있다거나 하는 등의 폭로는 지금까지 에버랜드 사건에서 이 회장의 직접소환을 고민하고 있는 검찰에게 '만약 팩트만 맞다면' 이 회장 일가와 삼성 핵심 임원들의 직접적인 줄소환을 가능케 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삼성그룹이 전전긍긍하는 사안 중에는 이런 일련의 의혹들이 혹여 삼성 후계승계 문제를 원점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한 몫 한다는 분석이다. 에버랜드 사건만 보더라도 전환사채 발행의 핵심이 이 부분과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의 핵심은 삼성이 지난 1996년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이 전무에게 자금이 긴급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장외가격 8만5천원을 넘나드는 주당가격을 불과 7천7백원이라는 헐값에 넘겼다는 것에 있다.
당시 이 전무는 이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60억원에서 16억원은 증여세를 물고, 나머지 돈으로 삼성계열사에 투자한 다음에 자금을 더 불러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인수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이 전무는 단번에 에버랜드 1대 주주에 올랐다.
이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 등으로 이어지는 계열사 순환출자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이 전무의 후계승계를 위한 포석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무리 없는 후계승계 가능할까?
이런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김 변호사가 주장하는 의혹이 하나 둘 사실로 드러날 경우 삼성그룹 후계승계 문제는 그동안의 금산법 완화 등의 노력이 공염불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가능해진다. 악화된 여론이 금산법이나 공정거래법 완화로 삼성그룹이 이 전무의 후계승계를 마무리 짓는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지, 변수가 바탕에 깔려있다는 의미에서다. 가뜩이나 삼성전자의 실적하락으로 그룹 전반에 위기의식이 팽배한 탓에 후계승계의 '마침표 찍기'가 늦어지고 있으니 이런 분석이 나올 만 한 상황이다.
하지만 삼성그룹 안팎에 따르면 아직까지는 후계승계 문제가 김 변호사의 폭로와 관계없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다양한 관점에서 후계승계를 진행해 온 만큼 이번 시련이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란 해석인 것이다.
아무튼 이번 김 변호사의 폭로에 따라 부풀어 오른 의혹들의 사실 규명이 우선이다. 김 변호사의 주장에 대한 삼성그룹의 말끔한 의혹 해소만이 후계문제를 무리 없이 마무리 짓는 정도인 셈이다. 어느 때보다 검찰의 엄정한 수사가 요구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