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배우들이 사라지고 있다.
중견배우들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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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열정 불태우다 소리없이 꽃잎 떨궜다.

한국 연예계 또 한 명의 큰 별이 사라졌다. 특유의 꼬장꼬장한 목소리와 독특한 대사투로 사극에서 현대물까지 다양한 작품을 소화했던 중견 탤런트 홍성민(67)씨가 지난 3일 별세한 것이다. 당뇨합병증으로 지난 2004년 8월 양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재활치료를 통해 새로운 연기 인생을 시작한 그의 죽음 앞에 많은 팬들은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한국 연예계에 없어서는 안 될 연기자였던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는 연기혼을 불살랐던 그의 인생에 비해 한없이 쓸쓸했던 빈소 풍경이다.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산다는 연예인. 잊혀져가는 팬들의 기억 속에 쓸쓸히 세상을 떠나야했던 연기자들을 <시사신문>이 짚어봤다.

▲ 왼쪽부터 홍성민, 최길호, 이도련, 김주승.

중견 탤런트 홍성민씨가 지병으로 지난 11월3일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67세. 고인은 30여 년간 앓아온 당뇨 합병증으로 양쪽 눈의 시력을 잃고 투병해오다 숨져 많은 이들이 가슴 아파 했다.

고 홍성민 ‘감초연기 작렬’

고 홍성민씨는 1976년 MBC 특채 탤런트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화려한 주연은 아니었지만 감초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조연으로 ‘조선왕조 500년’, ‘왜 그러지’, ‘사미인곡’, ‘사랑과 진실’ 등 굵직한 작품을 소화해냈다.

특히 30대 이상의 시청자들은 1980년대 인기 사극 시리즈였던 MBC ‘조선왕조 500년’에서 보여준 고인의 연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감정을 필요 이상으로 높이지 않으면서도 카리스마가 담긴 묵직한 연기는 조선 왕조의 여러 권신들을 연기하는 데 적격이었다는 평가다.

안정된 대사와 긴 호흡의 연기가 필수적인 사극에서 고인은 ‘물 만난 고기’처럼 빛을 발했다. ‘조선왕조 500년’ 이후에도 여러 시대극에서 조정 중신이나 세도가의 역할을 그의 단골 배역이었다.
사극 외에 현대극에서도 소탈한 서민적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한 순간 반짝하는 연기자가 아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지켜온 그는 최근까지 연극과 영화를 통해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다.
그의 연기가 더욱 인상적인 이유는 오랫동안 앓아온 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시력을 잃은 후에도 연기활동이 계속됐다는 데 있다.

고인은 30여 년 동안 당뇨와 당뇨합병증에 시달리며 4번의 수술을 했고 수차례의 입원 치료를 받아야했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럽게 연예계와 멀어졌고 2004년 양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기에 이른다.
자살까지 생각하며 절망에 빠졌던 그는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해 서울 노원구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점자수업, 보행훈련 등을 받고 지하철 타는 법을 익혔다.
특히 지난 2005년 KBS2TV ‘인간극장’을 통해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연기자로 재기하는 과정이 방송돼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줬다.

그 결과 비록 앞은 볼 수 없었지만 가족과 후배들의 도움으로 2005년 12월 연극 ‘초대 받지 않은 자’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했고 2006년에는 연극 ‘헬렌켈러’에서 맹아학교 교장으로 무대에 올랐다. 제2의 인생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보고 듣고 말 할 수도 없는 헬렌켈러에게 스승인 셜리반 선생을 만나게 해주는 인물을 연기했던 그는 “난 괜찮다. 세상의 눈들이 다 내 눈인데 뭘 걱정하느냐”며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 “연기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며 “난 배우로서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앞을 볼 수 없지만 연기를 하는데 조금 불편할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고인은 올해 개봉한 영화 <전설의 고향>에서 시각장애 의원으로 특별 출연했고 <펀치레이디>에서는 극중 손현주의 아버지 역할로 출연하는 등 생을 다하는 마지막까지 순간까지 연기혼을 불태웠다.
당시 고인은 “아직 건강하다”며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지만 안타깝게도 <펀치레이디>를 끝으로 제2의 인생의 막이 내렸다.
한편 고인의 별세 소식을 들은 <펀치레이디>의 강효진 감독은 “고인은 총 세 장면을 찍었는데 영화에서는 그 중 두 장면이 편집됐다.

DVD 제작사와 협의해 이 부분을 그대로 담도록 할 것”이라고 지난 5일 밝혔다.
발인은 5일 새벽 경희의료원에서 치러졌고 유해는 경기도 벽제 납골당에서 화장돼 인근 고양시 해인사 미타원에 안치됐다.
경희의료원 관계자는 “3일 사망해 5일날 발인했으니 장례기간이 짧기도 했지만 연예인 치고 조용한 장례였다”고 말했다.

쓸쓸히 떠나간 사람들

고 홍성민씨의 사망소식이 전해지면서 새삼스레 올해 쓸쓸히 세상을 떠난 연기자들이 회자되고 있다.
지난 9월1일 암투병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원로 연기자 고 최길호(71)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지난 2003년 신장암 수술을 받은 이후 치료를 받아오던 중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전이 된데다 심장병까지 겹쳐 운명을 달리했다.

KBS 공채 1기 출신인 최길호씨는 개성 넘치는 드라마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냈다. 특히 한국 드라마사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여로’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지금도 40대 이상의 시청자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올해 6월에는 SBS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옛날 TV’에 출연해 한국방송사의 산증인으로 과거 TV 드라마 제작의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투병생활로 인해 수척한 모습으로 휠체어를 타고 녹화장에 들어서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지난 8월에는 성우 겸 연기자로 활약했던 배우 이도련(60)씨가 세상을 떠났다. 한창 연기자로 관록 넘치는 활약을 펼치던 고인은 4년간 투병하던 간암으로 8월4일 운명을 달리했다.
1974년 MBC 성우 공채 6기로 방송계에 발을 디딘 고인은 성우와 연기자로 35년간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누비며 활약했다.

‘태조왕건’을 비롯해 많은 시대극에 출연했고 현대극 KBS2 ‘마왕’과 MBC ‘개와 늑대의 시간’에 출연하기도 했다. 스크린에서는 영화 <한반도>에서 일본 외무장관역으로 출연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고인은 성우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성우로 3백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으며 특히 MBC 라디오 ‘격동 50년’에서 그의 목소리는 드라마를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와 같았다.
사망 당시 고인의 유족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건강한 모습이었다. 갑자기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했고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서 어떤 유언도 남기지 못했다”고 전했다.

수려한 외모로 1980~90년대 멜로드라마의 단골 주연이었던 김주승(46)씨도 지난 8월13일 지병인 췌장암이 신장으로 전이돼 46세의 안타까운 나이에 팬들의 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은 경기도 부천의 석왕사에서 조용히 치러졌다.
1983년 MBC 공채 16기 탤런트로 데뷔한 고인은 수려한 외모를 바탕으로 많은 멜로드라마를 통해 여성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1997년 암 선고를 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했지만 병마와 싸우면서도 연기는 물론, 드라마 외주 제작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열정적인 활동을 계속해왔다. 2002년 병세가 호전되는 듯 했으나 올해 1월 병이 재발해 홀로 투병생활을 해왔으며 병세가 악화되자 조용히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가 지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후문이다.

고 홍성민씨의 사망 소식으로 새삼스레 회자되고 있는 여러 고인들의 소식에 다시금 마음이 숙연해진다. 높이 떴다가 지고 마는 게 별이라고 하지만 연기를 향한 그들의 열정을 기억하는 한 그들은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한 큰 별로 자리할 것이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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