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원정’ 폭력 사건
‘해외원정’ 폭력 사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전명 “베트남태양을보다”


‘원정출산’, ‘원정성매매’는 들어봤어도 ‘원정폭력’은 처음이다. 지난 8월 베트남 한인 투자자를 협박해 호텔 카지노 경영권을 빼앗은 혐의로 추척을 받던 국내 폭력조직 양은이파 부두목 강모(51)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11월6일 베트남 호텔 카지노 투자자를 협박해 경영권을 빼앗은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강씨와 조직원 세 명을 추가 구속했다고 밝혔다. 변씨와 조직원 한 명은 지난 10월22일 붙잡혀 구속됐으므로 사건 접수 두 달여 만에 이번 사건과 관계된 조폭을 모두 검거한 셈이다. ‘돈이 있는 곳에는 부패와 함께 항상 조폭이 있다’는 말을 대변하듯 나라 멀리 베트남에서 벌어진 ‘조폭 해외원정폭력’ 사건. 경찰 조사 결과를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 송모(56)씨는 2년 전 베트남 하노이와 붕따우에 있는 호텔 카지노 두 곳을 인수해 투자 사업을 시작했다. 현지 관리와 친분이 돈독한 부동산 업지 이모(62)씨도 투자의 일부 지분을 대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이씨가 중도금 지불을 계속 지연하자 송씨는 올해 초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이씨는 한국에 있는 폭력조직 양은이파에 “경영권을 빼앗아 달라”고 청탁했고 부두목 강모(51)씨는 그의 심복 변모(49)씨에게 이 일을 지시했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의 지시를 받은 변씨는 베트남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작전명: 베트남 태양을 보다’라는 작전 계획서를 강씨에게 제출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구역 안 가리고 들이대

▲ 사진은 영화 '조폭마누라'의 한 장면. 특정기사와 무관함.
계획서에는 ‘작전에 임하는 우리는 이 회장님께서 운영하시는 베트남 사업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태양처럼 번창할 수 있도록 인간불량품(송씨)을 완벽하게 제거하겠다’고 쓰여 있었다.

8월3일 이들의 ‘작전’이 개시됐다. 베트남 현지시간 오전 7시 변씨를 포함한 일당 5명은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송씨의 집을 찾아갔다. 송씨의 집에 들이닥친 이들은 다짜고짜 송씨를 소파에 앉히고 둘러싼 채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들은 미리 준비해간 서류를 내밀며 무조건 손도장을 찍고 사인 할 것을 강요했다.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눌린 송씨는 어쩔 수 없이 서류에 서명했다. 송씨가 서명한 서류는 베트남에서 운영중인 호텔 2곳(60억원 상당)의 카지노 소유권과 경영권을 포기하고 이를 미국시민권자인 이씨에게 모두 넘긴다는 내용 등이 포함된 각서였다.

이들 일당의 만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날 오후 송씨가 운영하는 카지노로 데려가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시간부터 나의 권한을 이씨에게 넘기니 협조 잘하라”는 내용의 경영 포기선언을 하게 했고 또 이날 저녁 송씨를 한 호텔 술집으로 끌고 가 함께 술을 마시게 하고 술값을 계산 하게 했다.
송씨는 이 끔찍한 상황에서 그들과 밤 새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새벽 2시가 돼서야 풀려났다.

졸지에 사업체 빼앗겨

송씨는 이날 괴한들에게 무려 19시간이나 감금된 채 사업체의 경영권 포기각서를 쓰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여기저기 끌려 다녔다. 탈출 직후 자신이 억울하게 당한 사정을 진술서로 작성해 베트남 한국 영사관과 현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사건을 접수한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고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10월22일 이 사건과 관련해 폭력조직원 변씨와 조직원 한 명을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로 구속하고 양은이파 부두목으로 알려진 강씨와 조직원 3명을 추적했다.

사건 당시 베트남에 동행하지 않고 서울에 남아있던 강씨를 추적하던 경찰은 지난 11월6일 두 달여 만에 드디어 일당 모두를 검거했다.
경찰은 “최근 국내 조직폭력배들이 증거나 피해자 확보가 쉽지 않은 점을 이용해 이권이 있는 곳이라면 해외까지 나가 폭력을 휘두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폭력조직에 대한 심층적인 기획수사로 적극 단속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조사결과 강씨는 이씨에게 수고비 명목으로 베트남 카지노의 지분 참여와 경영권까지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강씨는 양은이파 부두목으로 1975년 사보이호텔 습격사건에 가담하기도 했다. 1981년 살인미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복역 중 20년형으로 감형돼 2001년 2월 출소했다. 강씨의 심복이라고 알려진 변씨는 강씨가 수감생활을 했던 20년 동안 옥바라지를 해왔다고 한다.

강씨는 출소 후 건설회사를 운영하다 2004년 공갈, 폭행죄로 구속돼 1년1개월을 복역해 지금까지 총 21년1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강씨의 복역기록은 폭력배로써 최장 기간으로 알려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