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삼성 비자금 특검제’를 계기로 ‘반부패연대’를 들고 나왔다. 겉으로는 ‘삼성 비자금 특검제’를 외치지만 후보들의 속셈은 다르다. 이를 통해 후보단일화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보는 입장과 연대만 가능할 뿐 단일화는 없다고 선을 긋는 입장이 상충되고 있다.
정동영 후보는 문국현, 이인제 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해 당내 특별팀을 가동, 단일화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막판 대역전을 향한 단일화 움직임. 이에 따라 ‘개혁세력’을 외치며 ‘민주당 중심의 통합’을 주장해온 민주당과 이인제 후보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정치권은 각 후보들의 정책과 이념이 판이한데다 내년 총선에서의 지분문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신경전으로 쉽지 않은 단일화 과정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범여권 후보단일화를 둘러싸고 주판알을 튕기는 후보들의 손놀림이 요란하다. 조금 더 많은 것을, 조금 더 높은 것을 얻으려는 ‘그들만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반부패연대서 단일화까지
국정감사는 범여권에 기회이자 위기였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의혹제기를 통해 이 후보를 궁지로 몰 수 있는 기회였지만 이회창 전 총재가 범여권의 기회를 자신의 출마로 무산시켰다. 그는 출마선언에서 “국민은 한나라당 후보에 대해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 충분한 신뢰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전 총재가 ‘기회’를 가져가며 범여권에 남은 것은 ‘위기’뿐. 이 후보뿐 아니라 이 전 총재의 출마로 범여권 지지자들마저 이 전 총재에게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싫어서’라는 막연한 이유를 가진 이들이 그들이다.
범여권은 이 후보의 의혹과 함께 터져 나온 ‘삼성 비자금 의혹’을 새로운 시도의 시작점으로 인지했다. 특검법 도입을 매개로 연대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반부패 미래사회 연석회의를 제의,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와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부패 미래사회 연석회의’를 통해 의견을 모으자는 것. 하지만 이는 3자 간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정동영 후보는 ‘반부패 미래사회 연석회의’에 대해 “언론은 연석회의가 후보통합의 전초전이라고 분석하고 있고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을 수도 있으나 성격은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단일화 논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여운은 남아 있다.
문국현 후보는 반부패 관련 시민단체 대표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삼성 비자금 사건이 폭로됐고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국세청장이 구속되는 등 부패 공화국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부패 문제를 이번에 바로잡지 않으면 온 국민이 암담해진다”며 반부패 정책연대를 거론했다. 그리고 “반부패 3자연대 제안은 후보단일화와는 관계없다”며 후보단일화 논의를 일축했다.
권영길 후보도 “정치구도를 짜기 위한 정치공학적 제안이기에 거부 의사를 밝힌다”고 말했다. 권 후보는 노선과 정책을 부각시키며 삼성 비자금 특검발의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세 후보는 ‘반부패’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저마다 다른 계산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정 후보는 ‘반부패 연대’를 발판삼아 후보단일화까지 노려본다는 입장인 반면 문국현·권영길 후보는 ‘반부패’에 초점을 맞춰 자신의 지지율 상승을 노리고 있다는 것.
그는 “서로의 계산이 틀린 것이 사실이지만 ‘삼성 비자금 의혹’ 해결을 위해서라면 조율을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정동영 TF팀으로 단일화 시동
범여권 후보단일화에 큰 의지를 보이고 있는 정동영 후보는 당내 비공식 TF팀을 운영, 단일화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단일화 대상은 최근 당 내·외에서 대통합 압박을 받고 있는 이인제 후보다.
정 후보측은 이를 위해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정대철 고문 등 신당 중진들을 급파, 박상천 민주당 대표와 접촉하고 있다. 또한 양당 원내대표들도 최근 잇따라 만나 단일화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 후보는 단일화 절차상 정 후보와의 1대1 TV 토론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정 후보와 의견을 달리했다. 하지만 이미 신국환 의원의 탈당과 최인기 원내대표의 범여 후보단일화 촉구 성명으로 후보단일화 마당으로 내몰리고 있다.
신국환 의원은 “경선이 끝난 지금 대통령 후보와 당의 행보를 보면 중도개혁세력과의 대통합에 대한 의지가 약할 뿐 아니라 대통령 후보 단일화도 민주당 중심으로 새롭게 구현되기란 불가능한 냉엄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7일 민주당을 전격 탈당했다.
신 의원은 “민주당 대선후보에 의한 중도개혁주의 새정치 구현을 기대할 수 없게 됐고 민주당은 중도개혁세력의 통합에 의한 경제성장회복을 주도할 수 없는 정당으로 전락한 만큼 나는 정치를 시작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념과 정파적 대결에 휘말리지 않고 지역정치를 초월해 중도실사구시의 정책정치를 펴라고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시켜 준 이들의 뜻을 받들고자 민주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최인기 민주당 원내대표도 “모든 민주·평화·개혁 세력은 결단을 내리고 후보단일화를 해야 한다. 이 일을 해내지 못해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겨준다면 개혁세력은 역사와 국민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게 될 것”이라며 후보단일화 촉구 성명을 냈다.
최 원내대표는 “후보단일화 방법은 정당통합과 후보연합, 선거연대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후보는 물론 정당 지도자들은 모든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앞으로 소속 당을 초월해 후보단일화의 과업을 성취하는데 작은 씨앗이 되겠다”고 밝혔다.
저조한 지지율과 당 소속 의원들의 범여권 통합 촉구에 따른 탈당 및 성명, ‘뭉쳐야 산다’는 신당의 손길까지. 정치권은 대통합과 후보단일화 압박이 이 후보에게 거세진 만큼 조만간 그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단일화 NO 연대 YES
정 후보가 ‘인물중심’ 후보단일화를 논한다면 문국현 후보와 이인제 후보의 셈법은 이와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들은 이 후보와 이 전 총재에 맞서려면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처럼 누구를 탈락시키는 ‘뺄셈 단일화’보다는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 연대와 같은 ‘덧셈 단일화’가 주효할 것으로 보고 있다. 후보를 단일화하는 대신 권력과 지분을 나눠 갖는 ‘연정론’을 들고 나온 것.
문국현 후보는 “가치와 정책으로 논쟁을 하다 사람들의 재편이 이뤄지고 난 뒤, 나중에 필요하면 연정 형태로 갈 수 있지만 현재는 후보 단일화 가능성은 없다. 사람 중심의 단일화는 2002년에 한번 써서 국민들이 2007년에는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책과 가치 중심의 연대’를 들고 나왔다.
문 후보는 자신의 정책 중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들먹이며 권력 분점론을 전제로 하는 연정을 단일화 논의의 의제로 내세웠다.
이인제 후보도 ‘4년 중임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反한나라당 연대를 앞세웠다. 이 후보가 내세우고 있는 ‘4년 중임의 분권형 대통령제’는 “외치(外治)는 직선제 대통령이, 내치(內治)는 정당과 의회 중심으로 다수당에 속하는 정당 대표가 총리가 되는 형태로 바꾸는”는 연립 정부다. 연대를 통해 정권을 창출하고 권력을 대통령과 총리로 나누겠다는 의도다.
정 후보측은 “연정은 각 후보 진영의 결과물이다. 지금은 구도를 만들어야 할 때지 이를 공론화할 시점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전 총재의 출마로 대선이 ‘이명박 대 이회창’ 대결로 굳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후보단일화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이 경우 범여권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정권을 내줘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들은 “4년 중임제나 내각제 등 후보들이 공감하는 권력구조 개편 문제가 충분히 단일화 논의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들은 또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새틀을 짜야 하는 세력간 단일화보다는 연정이 유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