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저기 저 도둑놈 좀 봐라. 도둑놈이 벌건 대낮에 잘도 돌아다니네"
"오~오데? 도둑놈이 오데 있다카노"
"저어기 저기~ 도둑놈 좀 잡아라카이"
"흥~ 아~들이 자꾸 장난 치모 잡아간다카이"
"이히히히~ 니 바지 가랑이 좀 보라카이. 도둑놈이 떼지어 붙어있다 아이가"
"이 뭐꼬?"
"이히히히~ 이히히히히~"
"에이! 오늘 재수 옴 올랐네"
우리 마을 앞에는 도랑이라고 부르기에는 서운할 것 같은, 제법 넓은 시내가 펼쳐져 있었다. 그러니까 이 시내가 우리 마을과 들판의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비음산 계곡에서 늘 흘러내리는 그 시냇가에 내려가면 거울처럼 맑은 물 속에 우리가 '물고동'이라 부르는 다슬기와 피라미떼들이 은빛 몸을 비틀며 놀고 있었다.
그래, 그 시냇가...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가을날 오후가 되면 가을햇살을 물고 윤슬을 반짝반짝 빛내던 그 시냇가... 한동안 넋을 잃고 가을햇살이 오색찬란하게 부서지고 있는 그 시냇물을 오래 바라보다가 문득 눈을 돌리면 눈앞에서는 노오란 별들이 벼알갱이처럼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우리 마을과 들판 사이를 배암처럼 휘어지며 흘러내리는 그 시냇가 양쪽에는 45도 정도 비스듬히 드러누운 널찍한 둑이 있었다. 양쪽으로 비스듬히 드러누운 그 둑은 우리 마을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였다. 또한 장마가 지면 우리 마을의 홍수를 막아주는, 우리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둑이었다.
가을날 오후, 우리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누구나 그 둑으로 소를 먹이러 가고, 소풀을 베러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 둑에는 온갖 야생초들이 다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시 그 야생초들의 이름을 모두 알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자연 책을 들고 나와 일일이 확인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야생초들은 모두 '이름 모를 들풀'과 '이름 모를 들꽃'으로 불렀다.
그때 가장 우리를 괴롭힌 들풀이 바로 우리가 '도둑놈'이라 부르는 '도깨비바늘'이었다. 그 도둑놈은 두 종류였다. 하나는 실거머리처럼 생겨 입가에 뾰쪽뾰쪽한 바늘가시가 달린 제법 큰 '소도둑놈'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표준어로 '털도깨비바늘'로 불리는, 마치 날파리같이 조그마한 것이 줄기에 다닥다닥 붙은 '바늘도둑놈'이었다.
"이크!"
"와 그라노? 독새(독사)한테 물리기라도 했나?"
"아~아이다. 오늘은 소캉 지게캉 다 잊어뿔라고 그라는갑다"
"뭐라카노?"
"이 봐라, 소도둑놈 바늘도둑놈이 내 옷에 새까맣게 붙었다 아이가"
"괜찮다. 나중에 그 도둑놈들 뗄 때 내가 도와주께"
그랬다. 그 둑에는 우리가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오요요요~ 오요요요~' 하며 가지고 노는 강아지풀과 슬쩍 묶어놓고 휘파람을 불고 있으면 가까이 다가오다 걸려 넘어지는 수크령을 비롯한 온갖 야생초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새깃털 같은 하얀 꽃잎 속에 노오란 원색 금가루를 뽐내는 구절초, 마치 보리처럼 생긴 꽃대에 보랏빛 작은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꽃향유, 은빛과 보랏빛 긴 꽃을 가을햇살에 빛내고 있는 억새, 지렁이처럼 쑤욱 솟은 가느다란 대롱이에 마치 보랏빛 오이를 매단 것 같은 오이풀과 자주가는오이풀, 그리고 산국, 쑥부쟁이 등등...
그 둑에는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야생초가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유난히 많은 것이 그 도둑놈이었다. 말 그대로 그 도둑놈은 우리들이 좀더 좋은 소풀을 베기 위해 둑을 마구 휘젓고 다니다보면 어느새 바지 가랑이에 새까맣게 들러붙어 있었다.
그래. 말 그대로 도둑놈은 도둑놈이었다. 도둑놈은 한번 옷에 붙으면 절대로 그냥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일일이 손으로 떼내야 했다. 그리고 급히 떼려고 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