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은 이 전 총재의 대선출마를 ‘경선불복’이라 몰아붙이고 있다. 반면 박 전 대표에 대해서는 ‘아름다운 승복’이라고 못박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 전 총재와 박 전 대표의 연대설에 선을 그었다. 또한 박 전 대표측이 ‘화합의 걸림돌’로 지칭한 이재오 최고위원의 사퇴를 통해 갈등의 골을 좁히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
이 전 총재측도 박 전 대표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 후보가 ‘범보수중도’라면 이 전 총재와 박 전 대표는 ‘극보수우파’라는 점을 들어 정치적 연대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박 전 대표는 여유롭다. ‘침묵’을 계속하며 이 후보와 이 전 총재를 저울질하고 있다. 정치권은 박 전 대표가 침묵을 깨는 날 이 후보와 이 전 총재의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고 박 전 대표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출마로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후보와 이 전 총재의 목줄을 죄고 있다.
이회창 손 잡아? 말아?
이회창 전 총재는 출마직후 2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며 만만치 않는 저력을 과시했다. 7일 대구 영남일보 여론조사에서는 37.4%의 지지를 얻어 32.6%를 얻은 이 후보를 앞서는 등 TK(대구·경북)의 움직임 또한 심상치 않다.
정치권은 한나라당의 텃밭인 동시에 박 전 대표의 정치적 고향이자 지지기반인 TK에서 이 전 총재가 이 후보를 앞선 것에 많은 의미를 두고 있다. 박형준 한나라당 대변인이 “(이 전 총재 지지층의 성분 분석 결과) 70%가 지난 당 경선에서 박 전 대표를 지지했던 층”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
이 전 총재측은 출마와 함께 박 전 대표 영입 움직임을 내비치고 있다. 이 전 총재측 서상목 전 의원은 “이 전 총재와 박 전 대표의 정치철학이 비슷하고 지지자들이 비슷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정치적인 동반자가 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보수우파 결집을 시사했다.
여기에 한나라당과 이 후보를 반대해 온 박사모가 “이 전 총재의 출마를 환영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했다”고 밝혀 박 전 대표가 이 전 총재에게 합류할 것이라는 설을 뒷받침했다.
박사모 정광용 대표는 “박사모가 창사랑과 연대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BBK나 주가조작사건, 특히 김경준 씨가 귀국을 하게 되면 기소 또는 구속기소까지 이야기가 나오는 판에 불안한 후보로 한나라당이 계속 가는 것보다는 후보의 다양성도 좀 보장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때문에 박사모는 일단 보수우파의 선택권 강화를 위해 이 전 총재가 출마하는 것은 환영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측 의원들 또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이 전 총재의 출마를 비판하는 동안 “할 말 없다”로 일관, 이 전 총재의 출마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화해의 손짓 간절
이명박 후보도 다급해졌다. 이 전 총재가 20%대에서 지지율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출마와 함께 이 후보 자신의 지지율이 50%대에서 40%대로 하락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 이 전 총재의 출마와 관련 “어찌 보면 당으로서는 가장 위기를 맞은 엄중한 사안이다. 11월 중순이면 김경준씨가 돌아오게 된다. 이 전 총재의 출마, 김씨의 귀국이 우리가 앞으로 넘어야 할 파고”라는 이방호 사무총장 말처럼 김씨의 귀국과 BBK 의혹이 이 후보를 덮칠 경우 지지율 추락은 40%대에서 그치지 않을 것은 불보듯 뻔한 이치.
이 후보는 상황 타개를 위해 큰 수를 뒀다. 무한한 신뢰를 보내던 이재오 최고위원의 사퇴를 내건 것이다. “좌시하지 않겠다”며 박 전 대표측을 겨냥, “오만의 극치“라는 박 전 대표의 분노를 일으킨 이 최고위원을 뒤로 물림으로써 박 전 대표의 도움을 간절히 청한 것이다.
이 후보측은 이와 함께 박 전 대표와의 회동을 제의하며 ‘박근혜 감싸안기’에 나섰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시큰둥하다. 이 최고위원은 “내가 물러난 만큼 또 다른 조건을 제시하지 말고, 정치적 이해관계의 전략적 고려없이 이명박 후보의 당선에 전력을 다해주기 바란다”며 박 전 대표에게 공동 선대위원장을 제의했지만 박 전 대표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박 전 대표측 의원들도 이 후보측의 화해모드에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최고위원의 사퇴를 곧 이 후보에 대한 지원으로 해석하는 데는 “앞서가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표측은 이 최고위원이 언제라도 다시 전면에 등장할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 최고의 사퇴로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라며 박 전 대표측 관계자들을 잘라내고 사과한다고 해서 상처가 아물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박근혜 침묵 왜?
이 전 총재의 출마와 ‘화합’을 위한 이재오 최고위원의 사퇴. 하지만 침묵을 계속하고 있는 박 전 대표의 속내도 복잡하다. 그의 손짓 한번에, 발걸음 하나에 이 전 총재가 날개를 다느냐, 이 후보가 대세론을 유지하면서 범여권의 공세를 막아내느냐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전 총재와 이 후보 지지로 인한 득실 계산과 몸값 올리기도 빼놓을 수 없다.
박 전 대표와 이 전 총재는 이념에서 뜻을 같이 한다. 이 전 총재와의 껄끄러운 감정도 측근 의원들을 당 주요 보직에서 배제시켜 박 전 대표를 ‘불편하게’ 했던 이 후보와의 갈등에 비한다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다.

강 대표는 “박 전 대표가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박희태 의원도 “박 전 대표의 깨끗한 승복은 국민에게 감동을 줬다”며 이 전 총재의 경선불복을 강조하는 한편 박 전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2008년도 대통령은 박 전 대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박사모의 뜻처럼 차기를 노리는 박 전 대표에게 ‘경선불복’이라는 꼬리표는 달갑지 않은 존재. 깨끗한 승복으로 당 경선 이후 ‘지고도 이긴’ 박 전 대표가 ‘제2의 이인제’를 자처한다면 그간의 인고는 물거품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와 함께 이 전 총재가 이 후보를 이길 수 있을 지 여부도 박 전 대표를 머뭇거리게 한다. 이 후보가 40%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으며 BBK 의혹이 사실로 밝혀져도 이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여론이 높은 상태에서 60%대의 출마반대 여론에 시달리는 이 전 총재를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내년 총선과 차기 대권을 노리는 박 전 대표로써는 장고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누구 떡이 더 큰가
박 전 대표로서는 이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하자니 여태까지의 불편한 심기가 가시지 않는다. 이재오 최고위원이 사퇴하며 앙금을 거둬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는 화해를 위한 기본적인 자세이지 이 최고위원의 사퇴가 곧바로 ‘화합’과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박 전 대표측 의원들의 발언도 이와 연결된다.
게다가 이 전 총재와의 연대라는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리는 꼴이 된다는 것도 박 전 대표측을 불안하게 한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당에 불만을 표한 것은 이 최고위원의 발언이 처음이 아니었다. 측근들이 당 주요 보직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 그를 움직이게 한 시발점”이라며 “대선 후 당권·대권 분리와 내년 총선 공천 등 실질적인 입지 보장이 있어야 박 전 대표측이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전 대표의 침묵이 이어질수록 이 전 총재와 이 후보가 몸 달을 것이라는 것도 박 전 대표측의 움직임을 자제하게 한다. 승리의 여신이 아닌 ‘박의 미소’를 위해 이 전 총재와 이 후보가 경쟁하게 되면 지금보다 몸값이 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 정치분석가는 “한나라당의 집중적 공세에 노출돼 구원병이 절실한 상황까지 내몰릴 이 전 총재와 범여권과 이 전 총재의 필사적인 공세로 주춤거릴 이 후보 사이에서 박 전 대표의 주판알 튕기기가 빛을 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분석가는 또 “당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이 최고위원의 낙마로 박 전 대표측 의원들의 운신 폭이 넓어졌다. 박 전 대표가 결정을 내리는 동안 측근 의원들이 당을 움직인다면 박 전 대표의 선택이 가져올 파장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