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영화제의 제목은 ‘시네마 노보 회고전’으로 대선을 한 달 남짓한 시점에서 정치영화의 걸작이란 극찬을 받은 글라우버 로샤의 <고뇌하는 땅 Land In Anguish> 등 색감과 음감이 유니크한 브라질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1950년대 카스트로 쿠바혁명의 성공에 힘입어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탈식민을 부르짖는 민족주의 문화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 즈음 ‘새로운 영화’를 기치로 내건 ‘시네마 노보’의 흐름이 브라질에서 생성됐다.
글라우버 로샤의 ‘빈곤의 미학’으로 표상되는 ‘시네마 노보’ 운동은 아르헨티나의 페르난도 솔라나스 등이 주창한 ‘제3영화’론과 더불어 제3세계 민족해방 문화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의 지성파 거장 장 뤽 고다르를 비롯, 혁명적 영화와 영화적 혁명을 동시 추구하려던 서구 아티스트들에게 미학과 사상 양면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세계 영화미학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던 시네마 노보는 군부독재의 표현 탄압이 극심해지기 시작한 1968년 이후로는 급격히 예술적인 추진력을 잃어갔다. 그러나 브라질 고유의 음악, 토속신앙 등 문화요소를 융합하여 독창적인 영화언어를 탐색하려던 시네마 노보 작가들의 탐구의 궤적은 사그라들지 않는 브라질 영화의 기름진 토양 역할을 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넬슨 뻬레이라 도스 산토스의 〈황폐한 삶>, 글라우버 로샤의 〈검은 신, 하얀 악마〉등 ‘시네마 노보’의 대표작 6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상영작 목록>

1962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안셀무 두아르테 Anselmo Duarte 연출
1962 브라질 98min B&W 15세 이상 관람가
전 재산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십자가를 봉헌하겠다는 맹세를 산타 바바라에게 했던 젊은 부부는 이를 지키려고 먼 성당까지 힘들게 걸어오지만, 이교도적인 우상숭배의 행태라며 꾸짖는 신부의 비난에 직면하는데… 배우 출신인 안셀무 두아르테는 1942년 오슨 웰스의 미완성 영화 <모두가 진실이다>(It' s all true)로 데뷔하였으며, 1950년대 브라질의 가장 인기 있는 배우 중 한 명이었다. <산타 바바라의 맹세>는, 1957년에 만든 <확실해!>(Absolutamente certo!)의 흥행 및 비평적인 성공에 힘입어 만들어 진 그의 두 번째 영화로, 당시 흥행하던 희곡에 영감을 받아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했다.
■황폐한 삶 Vidas secas / Barren Lives
1964년 칸국제영화제 OCIC상
넬슨 뻬레이라 도스 산토스 Nelson Pereira dos Santos 연출
1963 브라질 103min B&W 12세 이상 관람가
시네마 노보의 시작을 알린 넬슨 뻬레이라 도스 산토스가 그라실리아노 라모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황폐한 삶>은 1940년 전후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던 브라질 사람들의 삶을 다룬다. 가뭄을 피해 길을 떠난 부부와 두 아들, 그들 곁에 머무는 한 마리의 개의 이야기가 중심 줄거리를 이룬다.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은 흑백 이미지의 간결한 형식은 그들의 고초와 생존을 위한 투쟁을 더욱 아프게 표현하는 효과를 얻어, '배고픔의 미학'이라는 별칭을 지녔던 시네마 노보 운동의 대표작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이 영화는, 가난한 미국 농민들의 삶과 죽음을 다룬 존 스타인벡의 원작을 존 포드가 영화화한 <분노의 포도>와 자주 비교되기도 한다. 작품 공개 당시, 작품에 출연했던 개 ‘발레야’도 브라질 민중들 사이에 큰 인기를 누렸다 한다.
■ 검은 신, 하얀 악마 Deus e o diablo na terra do sol / Black God, White Devil
1964년 칸국제영화제
글라우버 로샤 Glauber Rocha 연출
1964 브라질 120min B&W 15세 이상 관람가
대양까지 이어진 브라질 북동부의 사막 지대인 세르타우에 거주하는 가난한 농부들은 빈곤한 삶을 참다못해 지주 모랄레스에 맞서 봉기한다. 그들 속에 섞여 있던 마누엘과 호사는 모랄레스를 죽이고 도주하는데…“역사에 대한 변증법적인 버전을 기초로, 재현의 대중적 형식을 긍정하는 미학적․이데올로기적 프로젝트를 구체화하면서, 그리고 사회적 변화를 위해 투쟁하면서, 영화는 대중문화를 이상화하지도 않거니와 격하시키지도 않는다. 이데올로기적 올바름이라는 명분으로 대중적 형식을 축출하기보다, 로샤는 재현의 전통적 성격에 관해 질문을 던질 때조차 대중적 형식을 사용한다. 시네마 노보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 과제-사회적 현실에 대한 변화 지향적 비평을 위한 출발점으로서 대중적 전통을 다시 정교하게 만드는 일-에 직면한다.”(이즈마일 자비에)
■ 고뇌하는 땅 Terra em transe / Land in Anguish
1967년 칸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상
글라우버 로샤 Glauber Rocha 연출
1967 브라질 106min B&W 15세 이상 관람가
남아메리카의 상상 국가 엘도라도에서 임종을 맞으려는 파울루는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엘도라도의 여러 정치 세력 중 대표적 우익 자본가 디아스는 파울루의 죽마고우이지만 파울루는 좌파인 비에이라를 지지한다. 정치 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에서, 로샤는 인민주의적 좌파와 파시스트적 우파가 모두 실패하게 된 과정을 꼼꼼히 파헤친다. 전형적인 극영화 구조를 거부하며 새로운 방식의 플롯을 선보이는 <고뇌하는 땅은>, 브라질 쿠데타를 에둘러 표현하는 듯한 시공간과 사건 설정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엄혹한 ‘정치적 경험의 느낌’(로버트 스탬)을 표한하고 있다.

1968년 브라질리아영화제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 의상상
로게리오 칸젤라 Rogerio Sganzerla 연출
1968 브라질 90min B&W 18세 이상 관람가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채 대단한 테크닉으로 무장한 도둑이 연일 상 파울로의 고급 주택가를 턴다. 붉은 등을 소지하고, 폭행 피해자들과 긴 얘기를 나누기도 하는 대담한 이 도둑을 언론에서는 ‘레드 라이트 밴디트’라 부르는데… 시네마 노보를 지지하는 저명한 비평가였던 로게리오 칸젤라가 처음 만든 장편 극영화. 웰스와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 로빈 후드 이야기 등의 영향이 혼재하며, <마꾸나이마> 등의 작품에서 만개할 ‘트로피칼리즘’이 성공적으로 영화에 쓰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사랑의 갈구 Fome de Amor / Hunger for Love
1968년 베를린국제영화제
넬슨 뻬레이라 도스 산토스 Nelson Pereira dos Santos 연출
1968 브라질 73min B&W18세 이상 관람가
눈 멀고 귀 먹고 말 하지 못하는 알프레도와 그의 아내는 리우 해변에 가까운 강 하구의 섬에 살고 있다. 어느 날, 뉴욕에서 온 커플이 그들을 방문하고, 네 인물은 육체적 욕망에서 비롯된 열정과 증오의 감정에 휘말린다. 많은 비평가들이 이 영화를 넬슨 뻬레이라 도스 산토스의 가장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로 칭하며, 감독 자신도 ‘느낀 그대로를 표현한’ 자신의 ‘가장 내밀한’ 영화로 이 영화를 꼽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