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후보는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통합과 후보단일화를 호기로 삼아 고건 전 국무총리의 출마설을 잠재우는 한편 문 후보까지 끌어안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반해 이 후보는 50 대 50이라는 통합조건을 내세우며 정 후보를 압박하고 있고, 문 후보는 단일화 거부를 무기로 삼아 정 후보의 목줄을 죄고 있다.
고건 전 총리의 출마설도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고건 전 총리가 출마선언을 하게 되면 대선정국은 범보수우파 진영의 ‘昌風’에 이어 범평화민주좌파 진영에도 ‘高風’이 휘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범여권 통합과 후보 단일화를 통해 지지율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있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대선후보가 고민에 빠졌다. 민주당과의 통합조건으로 내건 ‘50 대 50’이라는 지분을 놓고 당내 의원들의 반발이 너무나 거세기 때문이다.
50:50 걸림돌, 정동영 고민
‘갈 길 바쁜’ 정 후보로서는 최대의 걸림돌을 만난 셈이다. 정 후보가 최근 신당 지도부 회의에서 “전쟁터에 나간 장수를 말에서 끌어내리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며 당 지도부에 고개 숙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믿었던 이해찬 공동선대위원장마저 “후보 단일화 의지는 존중하지만 결과는 잘못됐다”며 정 후보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손학규 의원 또한 “의원들의 사기에 문제가 생긴다”며 정 후보의 섣부른 판단을 꼬집었고, 김근태 의원까지 나서서 “후보와 대표가 재협상하라”고 정 후보를 압박했다.
곤경에 빠진 정 후보는 “내년 총선이나 당권에 티끌만 한 관심도 없다”며 당내 지도부 달래기에 나섰다. 이에 따라 당 지도부는 ‘4자(정동영-이인제-오충일-박상천)회동 결과를 존중한다’는 원칙 하에 추가 협상을 진행시켜 나간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 후보로서는 우선 한 고비를 넘긴 셈이다. 하지만 이는 정 후보의 입장과 당내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당 지도부의 임시 절충안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절충안은 언제든지 다시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다.
10%대의 낮은 지지율도 정 후보의 발목을 잡고 있다. 중앙일보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정 후보는 충청권 지지율에서조차 이명박(27.2%), 이회창(23.6%) 후보에게 한참 뒤진 13.1%에 그치고 있다. 범여권 일각에서 고건 전 총리 출마설이 흘러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당 일각에서는 “지지율이 10%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후보 교체까지 검토해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떠돌고 있다.
정 후보의 마지막 승부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이인제 후보와의 단일화다. 정 후보가 당내 비판을 무릅쓰고 지분 50%를 민주당에 내준 것도 ‘정동영 후보-이인제 선대위원장-오충일 박상천 대표’체재로 가기 위해서다.
둘째, ‘통합=단일후보’ 선출이라는 카드를 쥐고 고 전 총리 출마설을 잠재움과 동시에 고 전 총리를 아예 당 고문으로 모셔 ‘범여권 후보 교체’라는 최고의 악재를 벗어던지기 위해서다. 셋째, 고 전 총리 영입을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다.
정 후보는 이 세 가지 전략과 함께 이명박 후보 ‘자녀 위장취업’문제와 ‘BBK 김경준’을 비장의 카드로 내세우고 있다. 이 후보의 도덕성에 큰 흠집을 내 반사이익을 얻겠다는 것이 정 후보의 계산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먼저 이회창 후보부터 따라잡아야 한다. 정 후보가 대선정국을 양강 구도로 만들려면 문국현 후보와 손을 잡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못박았다.
통합=후보 단일화, 이인제 노림수
이인제 민주당 대선후보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통합에 따라 2차례 TV토론과 여론조사를 통해 정동영 후보와의 단일화를 마무리 짓기로 했기 때문이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내세우고 있는 이 후보는 최근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정동영 후보에게 지게 되면 “선대위원장으로 열심히 돕고 중도개혁정권을 세우는 데 모든 희생과 헌신을 다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후보의 이 같은 발언은 신당과의 통합에 따른 50 대 50이란 엄청난 지분 때문에 나왔다. 이 후보로서는 정동영으로의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당권과 내년 총선 지분권을 절반이나 쥐고 있기 때문에 큰 손해가 없다는 계산에서다.
하지만 지분에 따른 신당 내 의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때문에 이 후보와 민주당이 지분 절반을 약속대로 다 거머쥐기는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정치권 관계자는 “1백40명의 의원을 가진 신당에 비해 8명이라는 초라한 군소정당인 민주당으로선 최소 7 대 3의 지분만 챙겨도 큰 손해가 없다. 따라서 정 후보와 이 후보가 지분 분배에 따른 물밑거래를 할 가능성도 높다”고 내다보고 있다.
이 후보와 민주당이 당 통합과 후보 단일화에 선뜻 나설 수 있게 만들었던 원인은 또 있다. 이 후보의 형편없이 낮은 지지율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인제 후보는 정동영 후보 13.7%, 문국현 후보 6.6%, 권영길 후보 2.1%보다 훨씬 낮은 0.9%로 꼴찌를 차지했다.
게다가 같은 충청권 출신인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의 출마로 이 후보의 서부벨트 전선에도 이상이 생겼다. 이 후보와 민주당으로선 신당과의 통합과 후보 단일화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얘기다.
이 후보는 지금 “현재 지지율 차이는 의미가 없다. 합당으로 새로운 판이 짜여지는 순간 바뀔 수 있다”며 후보 단일화에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정 후보로의 후보 단일화에 따른 이 후보의 자존심 세우기라 볼 수밖에 없다.
범여권 ‘고건 출마’ 변수

고 전 총리의 출마설은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들불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전 총재의 출마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이 순식간에 정동영 후보를 훌쩍 뛰어넘어 2위 자리를 꿰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위기를 느낀 범평화민주좌파 진영에서는 대안후보가 아니면 ‘정권 재창출 불가’라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범평화민주좌파 진영의 한 관계자는 “정동영 후보와 이인제 후보가 단일화를 해도 지지율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고건 전 총리가 결단을 내리게 된다면 지지율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도 있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범여권의 한 관계자는 “고건 전 총리가 지난 1월 정치 은퇴선언을 할 때에도 고정 지지율이 15%대였다”며 “지금 동교동 측에서 대안 후보로 고건 전 총리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고 전 총리 측에서는 출마설에 대해 가타부타 답변을 피한 채 묵언으로 일관하고 있다. 예로부터 묵언이란 ‘일종의 긍정’이라 했다. 고건 전 총리의 출마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나는 것도 이 ‘묵언’ 때문이다.
문국현, 단일화 거부 속셈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후보가 범여권 후보 단일화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문 후보는 최근 “희망 없는 과거 정치세력과 정치공학적 단일화는 없다. 새로운 정치세력을 결집시켜 희망의 정권교체ㆍ시대교체를 시작하겠다”며 “세력과 세력이 권력만을 위해서 무원칙하게 몸을 섞는 단일화에 관심이 없다. 양당의 합당에 반대하는 의원들 중 창조한국당과 뜻을 함께할 수 있는 의원들을 영입하겠다”며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통합과 후보 단일화를 거칠게 비꼬았다.
하지만 문 후보는 정동영 후보, 권영길 후보와 함께 만든 ‘부패VS반부패’ 전선에는 함께 나아감으로써 범여권 통합과 후보 단일화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문국현 후보의 ‘단일화 거부’ 속내에는 어떤 계산법이 숨겨져 있을까. 첫째, 고건 전 총리 영입으로 지지율을 정 후보보다 높여 범여권 후보 단일화의 키를 쥐겠다는 계산이 들어 있다. 둘째, 범보수우파 집권 저지를 강조하면서 권영길 후보까지 범여권 후보 단일화의 장으로 나오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셋째, 범여권 단일후보가 되면 ‘반평화민주좌파VS범보수우파’ ‘부패VS반부패’전선을 확장, 이명박, 이회창 후보를 ‘도매금’으로 넘기겠다는 계산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문 후보가 고건 전 총재를 끌어안을 수만 있다면 세 가지 시나리오가 얼마든지 가능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문 후보의 손 안에 고건 전 총재라는 카드가 없다면 후보 단일화 거부는 몸값 올리기로 비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