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교수 자신이 학생들의 몸매에 대하여 무슨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은 어디까지나 학생일 뿐이다. 학문을 배우러 온 사람이라는 사실 이외의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학생이건 남학생이건 개중에는 뛰어난 미모와 몸매를 가진 학생들이 있다. 그럴 경우, 홍 교수는 다만 젊은 학생들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고 치부해 버린다.
창밖을 내다보며 사념에 빠져있던 홍 교수는 지금 다가오는 학생의 외모를 샅샅이 살필 여유가 없었다. 그럴 기분도 되지가 않았다. 3개월간의 겨울방학을 마치고 직장이 있는 이 강변도시로 내려온 그녀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여유와 자유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왠지 모르게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은 기분에 젖어 있는 것이다. 서울의 남편이 마구 뛰는 사람의 이미지를 주는 탓일까.
"선생님, 영문학과 3학년 김영길이라 합니다."
"응, 그래, 무슨 일이냐?"
그제서야 홍 교수는 학생의 얼굴을 향하여 얼굴을 들었다. 무엇보다도 학생의 얼굴은 희디흰 피부였다. 거기에다 짙은 눈썹 꼬리 부분이 조금은 위로 치켜져 올라가 있었고, 날카롭고 가느다란 두 개의 눈이 그 아래 자리잡고 있었다.
흰 피부 때문에 연약한 인상을 주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검고 윤기 나는 눈썹과 눈 아래에는 우뚝하면서도 펑퍼짐한 주먹코가 자리잡고 있었고, 그 밑으로는 꽉 다문 입술이 두툼하게 그려져 있었다.
험상스런 얼굴을 아니었으나, 절대 유약한 얼굴을 더더구나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인상이었으나, 제대로 자리를 잡은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얼굴이 홍 선생 자신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웃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 학생이 자기를 보고 미소를 지어야 할 이유를 금방 알아차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혀 생면부지의 학생이었다.
"저기, 선생님, 사진 서클에 지도교수로 모시고 싶은데요. 꼭 좀 모시고 싶습니다."
"내가 꼭 해야 할 이유라도 있냐?"
"글쎄요. 꼭 그럴 이유는 없습니다만 왠지 선생님을 모시고 싶었습니다. "
"내 강의를 들은 적이 있나?"
"네, 몇 해 전에 교양국어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언제? 몇 연도에?"
"한 4,5년 됐을 겁니다. 입대하기 전이니까요."
솔깃한 키를 가진 김영길은 시종 웃음 띤 얼굴을 흩뜨리지 않았다.
그의 투명한 듯이 새하얀 얼굴에는 멀지 않은 강 수면의 햇살이 반사되고 있었다. 인상적인 학생이었다. 어디를 보아도 운동권 학생은 아니었다. 이렇게 고운 피부를 하고 우아한 미소를 머금을 줄 아는 학생이 거센 시위를 하는 학생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