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옮기면 골짜기는 좁아지고 어느새 차차 언덕이 다가선다. 언덕에는 여기저기 나무들이 자란다.
진달래, 산벚나무, 개암나무, 도토리나무. 왼쪽 경사지엔 잣나무를 조림했고 그 옆 맞은편에 소나무가 서있다.
신록의 계절에 여기 오르면 잎새마다 피어나는 초록의 합창을 듣는다. 나는 이곳에 오면 요즈음 눈여
겨보는 곳이 생겼다. 진달래 수풀 사이 낙엽이 쌓인 곳에 오늘도 보랏빛 도라지꽃이 수줍게 피어있다. 굽어보면 산 아래로 고층아파트가 서있고, 산업도로 위에는 차들이 빠르게 질주하는데, 청초한 산촌 아가씨 자태처럼 보랏빛 도라지가 꽃을 피우다니!
산야에 자생하는 초화(草花) 모두가 애잔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있을까만 그중에도 청초하고 섬려(纖麗)하기로는 도라지꽃이 으뜸이다.
이제 이곳에도 인구가 늘고, 반월, 시화공단에도 공장이 늘게 되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질 텐데?. 그러면 여름부터 내가 남몰래 눈을 맞추던 저 도라지꽃도 해마다 온전하게 볼 수 있을까?
가사미산 꼭대기에 이르르면 시야가 트이고 서해바다가 보인다. 저녁 낙조는 서해가 으뜸이다. 장려하고도 비장하다.
인간의 꿈을 담은 공장 굴뚝은 멀리 흰 연기를 뿜어내고 나는 그 흐린 연기 사이로 서울을 떠나온 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을 떠올린다.
한숨을 돌려 산길을 내려오면 안산 토박이 농부가 있다. 도시가 개발되고 공장이 들어서자 살던 곳, 살던 땅을 잃어버린 노인이다. 자기가 부치던 논밭이 수용되어 거처를 나라에서 정해준 이주단지로 옮기고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이곳을 찾아 옛날에 버려둔 괭이를 찾아 들고 채전을 가꾼다.
이제 곧 가을이 된다. 고구마밭에서 노인의 공력대로 고구마를 거두면 햇볕은 하릴없이 스산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내 서리가 내리면 가사미산 허리에도 단풍이 들고 숲도 차차 성기어갈 것이다.
아, 어느새 들국화가 피어있다. 애잔하고 애틋한 꽃, 저 들국화! 사람은 한평생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저 꽃은 혼자서 무더기로 피어있다.
兩行秋柳一灣沙 拂袖亭亭野菊花
莫向西風怨搖落 古來白髮似君多
황매천(黃梅泉)은 저 국화를 보고 이런 시를 지었지만 나는 저 들국화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가?
오늘은 산길에서 들국화의 애잔한 자태를 마음속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