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씨는 “BBK와 LKe뱅크, e뱅크증권 3개 사가 모두 100% 이 후보의 회사다. 이를 입증할 이면계약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 후보가 자금흐름을 몰랐을 리 없다”며 주가조작 사건에 이 후보의 관련성을 부각시키는 한편 자신의 혐의에 대한 부분은 부인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등 범여권은 BBK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 이 후보의 BBK 실소유주 여부, 주가조작 사건 관련 여부, 다스의 실소유주 여부 등에 초점을 맞추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BBK 주가조작 사건과 이 후보는 관련이 없다”며 김씨의 주장을 전면 반박하고 나서고 있어 검찰의 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지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경준 전 BBK 대표가 한국땅을 밟았다. 승객들이 다 내리기를 기다려 한참 후에야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낸 김씨는 오랜 비행으로 다소 피곤해보이기는 했으나 호남형의 인상에 깔끔한 차림이었다.
천재 투자가로 이름 날려
1966년 서울생인 김경준 전 BBK 대표(41)는 6세 때 미국으로 건너간 재미교포다. 그는 미국으로 간 후 사립 명문 코넬대를 졸업, 세계적인 금융그룹 모건스탠리에서 근무했다. 30대 초반부터 투자전문가로 주목을 받은 그를 두고 일부에서는 ‘천재 투자가’로 부르기도 했다.
김씨는 누나인 재미교포 변호사 에리카 김의 소개로 이명박 후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에리카 김은 1994년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던 이 후보가 신앙 간증을 하기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한인교회를 방문했을 때 만나 친분을 쌓았다. 이후 이들의 친분은 더 두터워져 1995년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에리카 김의 자전적 에세이 ‘나는 언제나 한국인’ 출판기념회에 이 후보가 참석해 케이크를 함께 자를 정도였다.
1996년 이 후보는 총선에서 당선됐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에리카 김은 재기를 노리는 이 후보에게 자신의 동생을 소개시킨다.
인연에서 악연으로
김씨는 1999년 4월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 그해 11월 금융감독원에 투자자문업으로 등록하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김씨는 투자자문업 등록이 이뤄진 시기에 MAF(Plc·공개주식회사), MAF(Ltd·유한회사) 등 2개의 역외펀드에 국내 투자자들의 자금 6백45억을 끌어들인다.
2000년에는 삼성생명 등으로부터 투자금을 모았으며 2000년 3월부터 12월까지 이 후보의 큰 형 이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가 대주주인 ㈜다스로부터 1백90억원을 투자받았다.
김씨와 이 후보측은 BBK 설립과 관련한 부분부터 서로 다른 주장을 하기 시작한다. 김씨는 “다스가 BBK에 투자했다는 1백90억원은 MB 리(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돈이며, BBK·LKe뱅크·e뱅크증권중개 등 세 회사의 자본금으로 사용됐다. BBK와 LKe뱅크, e뱅크증권 3개 사가 모두 100% 이 후보의 회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BBK가 삼성생명, 심텍 등으로부터 수백억원의 자금을 유치한 것과 관련해서도 “투자 유치는 이명박 회장이 모두 한 것으로, 내가 그 다양한 사람들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 후보측은 “BBK 자본금은 1999년 4월에 5천만원, 그 해 10월에 30억원이 조성됐다. 이 후보는 LKe뱅크에 2000년 2월 20억원의 자본금을 넣었다. 그리고 다스가 BBK에 투자한 것은 2000년 4월부터다. 따라서 다스의 투자금이 BBK·LKe뱅크 등의 자본금으로 사용됐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고 맞서고 있다.
김씨는 2000년 미국에서 귀국한 이 후보와 각자 30억씩을 출자해 LKe뱅크라는 금융지주사를 만들며 이 후보와 동업자가 되지만 2001년 4월 이들의 인연은 악연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BBK는 투자자들에게 투자 유치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했고 투자자들에게 위조된 펀드 운용 보고서를 전달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BBK를 문서위·변조로 투자자문업 등록을 취소당한 것이다.
이 후보는 BBK가 등록 취소당하자 2001년 2월2일 자본금 5천만원으로 설립, 예비허가를 추진 중이던 e뱅크증권중개 설립을 중단했다. 이어 4월18일 LKe뱅크 대표이사직을 사임하면서 김씨와의 관계 청산에 들어갔다.
이 후보 주가조작에 관여?
김씨는 뉴비전캐피탈의 주식을 외국법인(MAF 리미티드) 명의로 매입해 경영권을 인수한다. 그리고 옵셔널벤처스코리아라는 업체를 설립, 대표로 취임하게 된다. 이와 함께 외국인 매입설이 퍼지면서 회사의 주가가 급등한다.
금감원은 김경준이 옵셔널벤처스코리아가 외국인들의 투자를 받았다는 소문을 퍼뜨려 주가를 400%까지 끌어올렸다는 혐의로 2002년 4월 검찰에 고발했다. 이 사건으로 소액투자자 5천2백여 명이 6백억원대의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이미 김씨는 2001년 12월 회사공금 3백84억원을 빼돌려 위조한 여권을 이용, 미국으로 도피한 후였다.
김씨의 횡령으로 피해를 본 것은 회사와 소액투자자뿐은 아니었다. 이 후보도 LKe뱅크 투자금 30억원을 손해 봤다. 또한 이 후보의 형 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가 운영하던 다스도 BBK 투자금 1백90억원 가운데 1백40억원을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씨는 옵셔널벤처스코리아 주가조작에 LKe뱅크 계좌가 사용됐다는 점을 들어 “회사 계좌가 주가조작에 동원된 사실을 대표이사 회장이던 그가 몰랐을 리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씨는 이 후보도 주가조작에 연루됐으며 더 나아가 BBK와 LKe뱅크, e뱅크증권이 모두 이 후보의 회사였던 만큼 자신은 하수인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BBK, 공은 검찰로
김씨는 2005년 5월27일 LA 베버리힐스에 있는 자택에서 미 FBI에 의해 체포됐다. 그는 미국에서 한국 송환을 거부하며 재판을 벌여왔으며 최근 항소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밝히러 한국에 가겠다. 한국에 가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측과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며 한국행을 택했다.
한나라당은 “대선에 가까워지자 그토록 거부하던 한국 송환을 기꺼이 받아들인 것 자체가 의문스럽다”며 김씨를 ‘제2의 김대업’으로 규정하고 강력 대응하고 있다. 검찰 조사나 김씨의 발언 한마디로 이명박 후보 위주의 대선정국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김씨의 가족들도 한나라당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김씨의 부인 이보라씨는 미국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이면계약서의 존재를 강조했다. 김씨의 어머니 김영애씨도 “1건의 한글계약서와 3건의 영문계약서 이외에 또 다른 증거자료도 있다”고 주장하며 이른바 이면계약서의 원본을 검찰에 제출했다. 사건에 깊이 관여한 에리카 김도 김씨를 후방지원하고 있다.
정치권은 김씨가 한국으로 송환되며 보인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 그토록 한국 송환을 거부해오던 김씨가 한국을 찾았을 때는 나름의 계산이 섰기 때문이라는 것. 범여권에서는 김씨가 보여주는 여유만만한 모습 뒤에 숨겨진 카드가 BBK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