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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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릿한 갯내음, 핏빛 노을 어우러지는 추억의 '소래포구'



그 포구에 가면 드넓은 갯벌과 비릿한 갯내음 속에 오래 오래 기억 속에 묵혀두고 있었던 아스라한 추억이 되살아난다. 그 포구에 가면 시커먼 갯벌에 발목까지 푸욱 빠진 낡은 고깃배들과 그 고깃배들 사이를 한가롭게 나는 갈매기떼들이 잃어버린 낭만을 쪼고 있다. 그 포구에 가면 이 세상을 몽땅 불태워버릴 것만 같은 붉디붉은 노을이 서럽게 지고 있다.

그 포구에 가서 코 끝을 고소하게 파고드는 싱싱한 새우젓과 꽃게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그 포구에 가서 막 석쇠판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전어들과 망둥이, 소라, 우럭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그 포구에 가서 손님을 잡아끄는 시장 아낙네들의 억센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새삼 투박하고 끈질긴 삶의 속내가 읽혀진다.

그 포구 물 빠진 갯벌에는 검은 장화를 신은 낚시꾼들이 진종일 물고기를 낚고 있다. 그 포구에 걸린 낡은 철교를 걷다보면 만선의 기쁨을 담고 포구로 힘차게 달려오는 작은 고깃배들의 행렬을 만날 수 있다. 그 포구 왁자지껄한 시장통에 가면 비릿한 갯내음이 맴도는 난전에 앉아 싱싱한 물고기를 안주 삼아 하릴없이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그 아름다운 포구, 소래포구. 바다와 때론 동무가 되기도 하고, 바다와 때론 적이 되어 싸우기도 하면서 거칠고 억센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 눈물과 희망이 새우젓갈처럼 새록새록 숨쉬는 포구, 소래포구. 그 누군가에 대한 오랜 그리움과 그 누군가를 위한 오랜 기다림이 밀물과 썰물로 오가는 포구, 소래포구.

"소래란 이름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할 때 당나라의 소정방이 다녀갔다 해서 '소래'라 불렀다고 해요. 하지만 정확치는 않아요. 소래포구는 일제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천일염(天日鹽 )을 수탈하기 위해 수인선 철도를 놓을 때 나룻배 한 척을 소래포구에 정착시켜 인부들과 염부꾼(염전에서 일하는 사람)을 실어나르면서 최초로 포구의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지난 24일(토) 오후 1시, 나의 인천 길라잡이 김정숙(44) 시인과 함께 찾았던 소래포구(인천 남동구 논현동). 소래포구는 내가 서울에 살 때 두 번인가 왔었다. 한 번은 바다가 보고 싶어 나그네 홀로 월미도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들렀고, 또 한 번은 울컥울컥 피 토하며 지는 노을을 바라보기 위해, 소주를 마시며 그 노을에 퐁당 빠져버리기 위해 문우들과 찾았었다.

그날, 소래포구는 몹시 북적였다. 물 빠진 소래포구의 시커먼 갯벌 곳곳에는 시커먼 장화를 신은 낚시꾼들이 말뚝처럼 우뚝 우뚝 서 있고, 그 낚시꾼들 옆에는 배고픈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짭쪼롬한 갯내음을 폴폴 풍기는 갯벌을 열심히 쪼아대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나그네가 바라보았던, 자신도 몰래 추억과 낭만에 젖어드는 그 소래포구가 아니었다.



나그네가 소래포구에 빨랫줄처럼 걸쳐진 비좁은 소래 협궤철교 위에 올라섰을 때 그때 보았던 그 녹슨 레일은 보이지 않았다. 협궤철교 위에는 추억과 낭만을 일깨워주던 그 녹슨 레일을 덮은 철판 조각들만이 을씨년스럽게 얹혀 있었다. 서글펐다. 그 녹슨 레일을 천천히 밟으며 물 빠진 갯벌을 품에 꼬옥 안으려 했는데, 이제 이 철교 위에서도 그런 추억과 낭만은 찾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협궤철교를 지나자 곳곳에 전어와 문어, 쭈꾸미 등 싱싱한 생선들을 구워파는 아낙네들과 추억의 풀빵을 굽고 있는 아저씨들이 줄지어 서서 손님들을 마구 끌어당긴다. 첫 눈에 보기에도 입맛이 마구 당기는 전어구이를 안주 삼아 막걸리라도 한 사발(1천원) 마실까 하다가 소래포구 바로 옆에 있는 왁자지껄한 어시장으로 향한다.

하루에도 1만여 명, 주말에는 3~5만여 관광객이 찾는다는 소래포구 어시장. 주말이어서 그런지 어시장 곳곳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다. 붉으죽죽한 플라스틱 통마다 가득 담긴 꽃게들…. 어항에 빼곡히 담겨 날쌔게 헤엄치고 있는 새우들…. 코 끝을 고소하게 파고드는 새우젓갈 내음…. 목이 터져라 손님을 잡아 끄는 소래포구 어시장 아줌마들의 바쁜 손놀림, 몸놀림…. 그리고 사람 사람 사람 사람들….

저만치 물 빠진 갯벌이 환하게 바라다보이는 어시장 난전에는 전어회와 전어구이를 안주 삼아 대낮부터 소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그 사람들 곁에는 먹이를 던져주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갈매기들이 떼지어 앉아 있다. 그 갈매기떼를 깃발로 삼아 갯벌에 빠진 발목을 꽃게처럼 마구 꼼지락거리는 낡은 고깃배들도 보인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실향민 6가구 17명의 어업인이 어촌계를 만들어 고기를 잡으면서 생계를 이어가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 당시 어부들은 범선(돛단배)을 이용하여 가까운 바다에 나가 새우를 잡았대요. 그리고 그렇게 잡은 새우로 젓갈을 만들어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가까운 인천과 부평, 서울 등지에 나가 팔았대요."

늘상 드넓은 진흙탕의 갯벌이 펼쳐져 있어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살지 못한다는 달동네 소래포구. 소래포구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무동력선을 동력선으로 개량하면서, 어선 수가 차츰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수원, 인천 등지에서 상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일반 소비자들도 구경 삼아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포구로 발돋움했단다.

한때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1km 밖 오봉산 자락 우물에서 뱃사공들이 선주 아낙네들에게 잘 보이려고 물을 길어 날랐다는 외진 포구, 소래포구.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등잔불 아래에서 새벽밥을 지어 뱃사공들의 점심 도시락을 날랐다는 가난한 어촌, 소래포구. 하지만 지금의 소래포구는 하루에도 수천 명, 주말이면 3~5만 명이 찾아드는 관광촌으로 탈바꿈했다.

소래포구의 특징은 폭이 100m 남짓한 갯골을 따라 썰물 때가 되면 바닥이 완전히 드러난다는 데 있다. 또한 썰물 때가 되면 서해 간만의 차가 최고 9m로, 동해나 남해 그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물빠짐 현상이 일어난다. 게다가 밀물 때가 되면 물길을 따라 만선의 깃발을 촘촘촘 매단 낡은 고깃배들이 들어오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소래포구는 이 지역 어민들이 매일 매일 서해로 나가 싱싱한 물고기를 잡아오기 때문에 생선회 맛 또한 그만이다. 특히 고깃배가 들어오는 시간이면 갓 잡은 물고기들을 즉석에서 선주와 흥정, 값싸게 살 수도 있다. 지금 소래포구 어시장에는 350여 개의 좌판이 줄지어 서 있다. 그런 까닭에 소래포구 어시장에 가면 각종 생선류나 어패류, 건어물류, 젓갈류 등을 언제든지 값싸게 구할 수 있다.

"오는 10월 5일(수)부터 8일(토)까지 4일 동안 제5회 '소래포구축제'가 열려요. 소래포구 사진촬영대회를 비롯한 소래포구 선상 망둥이 낚시대회, KBS전국노래자랑, 김흥국-박미선의 대한민국 특급쇼, 갈대숲 추억 만들기, 연 날리기, 소래 먹거리 장터 등, 정말 다채롭게 열리지요. 저는 매년 가을에 소래포구 축제가 열릴 때마다 빠지지 않고 와요."

☞서울-시흥-남동나들목-소래포구 이정표-도창동 산업도로-영동고속도로 서창분기점-2번째 사거리 좌회전(남동구청 쪽)-풍림아이원아파트-풍림아파트 사거리 직진-소래포구
※서울에서 1호선을 타고 주안역에 내려 38번 버스(40분)를 타고 소래포구로 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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