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쓸쓸한 사람이 보면 좋아할 꽃은?
마음이 쓸쓸한 사람이 보면 좋아할 꽃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구네미 마을의 기억 2

<갈매기들>

쇠뫼 포구는 백사장이 좁다. 바다와 바로 이어진 낭떠러지 돌산. 갈대도 아니고 대나무도 아닌 풀이 자라는 돌산 아래, 겨우 폭이 20여미터, 길이는 300여미터 남짓한 모래사장이 있다. 부드럽게 바다와 만나는 곳은 그곳뿐. 그곳에 갈매기들이 앉아있다. 수천마리, 수만마리 갈매기들. 육군 형무소 죄수 같은 갈매기! 여기저기 새꽃이 피어있고, 북풍이 부는데 꼼짝하지 않는다.

검은 갈매기, 흰 갈매기, 칼 갈매기, 재 갈매기, 끼룩끼룩 울던 갈매기, 뱃전을 따라 낮게 날던 갈매기, 갈매기들이 바다 위를 나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백사장에 깃을 접고 앉아있는 저 갈매기들. 갈매기는 서로 마주 보지 않는다. 마주보지 않는 새, 갈매기. 바다에 갇힌 새, 갈매기.

<갈꽃>



갈꽃은 마음이 쓸쓸한 사람이 보면 좋아할 꽃이다. 푸르름이 번성하던 시절이 너에게도 있었겠지! 푸르름이 번성하던 시절에 푸름 속에 있던 너의 청춘을 몰랐다.

봄과 여름이 젊음이라면 젊음은 젊음을 모르고 흘러간다.

설레이던 파도도 고요히 잦아진 가을 오후의 바닷가. 삶의 일순간이 한 정적에 잠기어 갈꽃이 잔잔히 바람에 나부낀다.

<검은 바위>

파도가 철썩이는 적요한 바닷가. 바닷물에 잠길 듯이 솟아있는 검은 바위 하나. 폭풍이 몰아치고 비바람 사나울 때 흔적마저 사라진다.

태초에 너도 하나의 영혼을 지니고 오롯이 태어나 미역을 기르고 파도에 몸을 맡기고 물새들을 쉬어가게 한다.

눈 들어 바라보면 인적 없는 바닷가. 바닷물에 잠길 듯이 솟아있는 저 바위.
고요히 물결치는 바닷가 기슭에 침묵이 감도는 검은 바위 돌바위여!
오늘도 너는 그 자리에 있다.

<원추리>

도라지꽃이 필 때 원추리는 핀다. 아직도 장마는 끝나지 않았지만 장마 사이 사이 갠 날이 있어 뒷산에 오르면 활엽수 그늘 사이 백합보다 조금 작은 황적색 꽃을 보는 설레임이 각별하다.

산야에 꽃은 선 채로 내려다보지 말자! 꽃대와 키를 맞춰 허리를 구부리거나 무릅을 접고 보아라!

초봄 산야에 무릇 싹이 돋을 때 푸른 잎새가 난초처럼 돋아나 눈길을 끌더니, 근경에서 대여섯겹 잎새가 피어 올라 외가닥 꽃대를 뽑아 올려 첫꽃을 피웠다.

활엽수 사이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수줍게 흔들린다. 꽃대 끝으로 아직 피어나지 않은 아기 손가락 같은 연록색 꽃망울들이 맺혀 있다.

모토(母土)에 뜨거운 사랑을 품었던 사람. 신동엽 시인의 숨결이 여기에 어려 있다.

무더운 여름 ‘산에 언덕에’ 고즈넉히 핀 원추리. 나는 너를 하염없이 보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