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를 바라보는 눈은 싸늘하다 7
교수를 바라보는 눈은 싸늘하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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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젊음의 광장 2



홍 교수가 그들과 일정한 선을 긋고 지내는 것은 물론 그녀 자신의 강한 직업의식 탓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이유 중의 약간은 학생들이 보여주는 태도에서도 기인한다고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교수를 어디까지나 교수로 생각할 뿐이다. 하기야 교수를 교수로 생각해 주기만 해도 감지덕지할 노릇이다. 그들은 교수를 썩어빠진 가치관에 얽매인 기성세대로 치부해 버리고 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특히 운동권 학생들이 그렇다.

하물며 핵심적인 운동권 학생들은 교수를 부패한 부르주아의 전형으로 몰아붙이기조차 한다. 가장 안정되고 가장 긴 정년기간을 가졌으며 가장 고액의 봉급을 받는 부르주아의 전형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교수를 바라보는 눈은 싸늘하다 못해 경멸적이기조차 하다. 교수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더러운 유산계급이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고지를 지키기 위한 감언이설적인 속임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교수들과 운동권 학생들과의 관계란 이런 불신의 높은 벽으로 막혀있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갖가지 아름다운 말, 특히 그것들이 인간의 감정이나 인간 사이의 관계를 지칭하는 경우에, 그것은 오직 믿음을 기초로 할 때 가능한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우정도 사랑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믿음이 없는 우정과 사랑은 임시방편이요. 속임수일 뿐이다. 어쩌면 상대방에게 사기를 당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정을 기울이거나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혹시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완전히 일방적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그것은 언젠가는 자신의 믿음에 대한 대답이 있을 것이라는 대전제 아래 일방적인 우정과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특히 사랑이 그렇다.

우정은 어쩌면 이 점에 있어서 다소 톤이 약할는지도 모른다. 우정의 갖가지 형태 중에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할지라도 일방적으로 베풀어질 수 있는 것도 있다. 우정은 어쩌면 어떤 정신적 수혜에 대한 보답으로도 나타나는 수가 있다. 그것은 주로 남자들의 남성적인 허영심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그러나 남녀간의 사랑은 두 사람 사이에 믿음이 존재하지 않으면 성립될 수가 없다. 그 믿음이란 결국 상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상대방이 언젠가는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인 것이다. 반대급부를 포기해버린 사랑, 그것은 결코 이성간의 사랑은 아니다.

김영길 학생이 돌아간 뒤 홍 교수는 알 수 없는 정적감이 자신을 휘감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자신의 사무용 의자위로 내려앉았다. 이 정적감은 무엇일까. 그것은 전신에 오싹하는 소름이 끼칠 정도의 길고 무거운 정적감이었다. 그녀는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이 짙은 정적감을 깨고 일어나거나, 다가오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느끼며 뭔가가 멀리서 천천히 이 정적을 헤치면서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었다.

그녀는 어느 사인가 이 사진 서클 지도교수를 수락하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재작년인가 탈춤 서클의 지도교수를 맡았다가 너무나 혼이 나고 난 후 어떤 서클의 지도교수도 사양하리라고 굳게 다짐해 오던 것이 무너지고 말았다.

김영길이란 학생의 태도와 인상으로 보아 왠지 모르게 폭력의 이미지와 연관을 맺고 있는 운동권 학생들의 서클은 아닌 듯했다. 언제까지나 대학의 캠퍼스가 요즈음처럼 소란스럽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가라앉게 될 테지. 그러나 그것이 언제쯤일까.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발 이번 학기부터라도 좀 조용해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강의를 끝낸 홍 교수는 책상을 대략 정리해 놓고 연구실을 나왔다. 초봄의 따사로운 햇살이 교정의 잔디와 수목 위에 사뿐이 찾아와 있었다. 겨우내 추위와 메마름에 시달렸던 수목들의 가지에는 어느덧 푸르름의 기운이 베어들어 있었다. 교정을 오가는 학생들이 인사를 했다. 일견 저렇게 착하고 곱게만 보이는 학생들이 어쩌면 그런 끔찍스런 폭력을 휘두르게 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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