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반 위 춤추는 ‘여왕’ 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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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피겨 스케이팅 그랑프리 5차 대회 우승

▲ 은반위에서 춤추는 요정이 여왕이 되기 위한 날개짓을 시작했다.
러시아에서 요정이 날아올랐다. 지난 11월24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리도보이 드바례츠(얼음궁전)’에서 열린 국제빙상연맹(ISU) 피겨 스케이팅 그랑프리 5차 대회 ‘러시아 컵’ 프리 스케이팅에서 김연아(17·군포 수리고)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김연아가 받은 프리 스케이팅 점수는 133.70점. 자신의 역대 최고 성적인 그랑프리 3차 대회의 122.36점을 경신한 기록이었다. 김연아는 프리 스케이팅 점수와 전날 쇼트 프로그램에서 얻은 63.50점을 더해 합계197.20점으로 2위 나카노 유카리(172.77점·일본), 3위 조애니 로셰트(169.91점·캐나다), 4위 키이라 코르피(154.26점·핀란드)를 큰 차로 따돌렸다.

이로써 김연아는 세계 상위 랭커 6명만 참가하는 그랑프리 파이널 출전자격을 획득했다. ‘은반의 요정’에서 ‘여왕’으로 가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한걸음을 나아갈 때마다 우리나라 빙상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작은 거인 김연아의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7살때 처음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한 어린 소녀가 17살, 빙상의 여제를 꿈꾸며 얼음판 위를 힘차게 달리고 있다.


꿈의 200점 노린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얼음궁전에서 김연아의 연기가 시작됐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선율에 맞춰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한 김연아. 그의 손짓 하나에 관객들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한결 부드럽고 성숙해진 몸짓과 우아하면서도 탄력이 넘치는 스핀과 스텝 동작, 3회전 연속 점프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4분의 연기가 끝나고 그녀를 기다린 것은 열화와 같은 성원과 자신의 역대 최고 점수를 넘기는 기록이었다. 133.70점을 얻어 중국 하얼빈에서 열렸던 그랑프리 3차 대회에서 받았던 122.36점을 가뿐히 넘긴 것이다.

‘러시아 컵’의 주인이 된 김연아조차도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그녀는 경기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나도 놀랄만한 성적이 나왔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연아는 이날 경기에 대해 “점프가 좋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중국 경기 때보다 피곤했지만 그런대로 만족한다”며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이 시합을 치를 때마다 연습을 더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겸손해했다.



러시아서 역대 최고 기록 경신, 그랑프리 파이널 티켓 거머줘
7살 피겨 스케이팅 시작, 17살 그랑프리 파이널 2연패 노린다

김연아는 그랑프리 파이널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지난 시즌 파이널 대회에서 좋은 컨디션은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는 여름 내내 철저히 준비를 한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허리부상을 딛고 아사다 마오에게 역전승을 거뒀던 기억을 떠올린 것.

그는 파이널 대회에서 만나게 될 아사다 마오에 대한 질문에는 “이번 시즌 처음 만나는데 서로 좋은 경기를 했으면 좋겠다”며 말을 아꼈다.


빙상의 ‘피겨 요정’


김연아는 7살 때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그리고 각종 국내대회를 석권했으며 13살이던 2003년 전국종합선수권대회 시니어부에 출전해 국가대표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 곧바로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최연소 국가대표였다.

국가대표가 된 후 김연아는 세계무대를 노렸다. 2004년 9월 헝가리에서 열렸던 ISU 2차 주니어 그랑프리 피겨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다. 이 우승을 계기로 우리나라 빙상 역사는 김연아의 손에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스케이팅이 도입된 1908년 이후 국제대회 피겨 종목에서 처음으로 맛본 우승이었기 때문이다.

2004년 12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2005년 피겨 스케이팅 주니어 제5차 대회 1위에 이어 체코에서 열린 2005~2006 ISU 피겨 스케이팅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세계 정상에 우뚝 선 것이다.

비록 주니어였지만 첫 우승의 감격이었다. 피겨 전용연습장 하나 없는 척박한 조건을 극복하고 일군 성과였기에 우승은 더욱 값졌다.

2006년 3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는 금메달을 차지하며 주니어부를 제패했다. 같은 해 11월 ISU 피겨 스케이팅 그랑프리 4차 대회 여자 싱글에서 우승하며 시니어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리고 허리부상이라는 악조건을 딛고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하며 다시 한번 세계에 한국 빙상계의 미래를 보였다.

올해 3월에는 세계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며 성인무대 데뷔전을 장식했다. 이어 세계대회 3위의 시드를 받아 출전한 그랑프리 3, 5차 대회에서 연속 우승, 역대 최고성적으로 6명이 겨루는 그랑프리 파이널 출전이 결정됐다. 한국 피겨 스케이팅의 역사가 김연아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이 철저히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은반의 미래를 연다


한국 피겨 스케이팅의 역사뿐 아니라 피겨 스케이팅의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김연아의 그랑프리 5차 러시아컵 쇼트 프로그램 연기 생중계는 밤 12시를 넘긴 시간이었음에도 6.4%(AGB닐슨미디어리서치·전국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같은 시간대 다른 방송 프로그램과 비교해 가장 높은 시청률이었다.

다음날 생중계된 프리 스케이팅 연기는 11.3%의 시청률을 보였다. 비인기 종목이었던 피겨가 국가대표 축구 A매치 정도의 시청률을 올린 것.

인터넷도 달아올랐다. 김연아가 올 시즌 베스트 점수로 우승을 확정짓자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에서 김연아라는 이름이 빠르게 상위권에 올랐다.

뿐만 아니다. 김연아는 산업정책연구원이 전국의 20~60대 소비자 1천5백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 설문조사에서 지난 4년간 부동의 1위였던 박세리를 제치고 여자 운동선수 브랜드파워 1위를 차지하며 ‘김연아’ 영향력을 보여줬다.

불모지와 같았던 척박한 피겨 스케이팅 분야에 홀로 꽃을 피운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김연아를 통해 한국 피겨 스케이팅을 보고 수많은 빙상 꿈나무들이 ‘제2의 김연아’를 꿈꾸며 피겨 스케이팅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김연아 효과’와 무관하지 않다.

선수 브랜드 파워 1위…빙상계 꿈나무 ‘제2의 김연아’ 꿈꾼다
‘요정’에서 ‘여제’로…척박한 빙상위에서 피워낸 ‘영광의 꽃’

올해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등록된 선수는 모두 2백67명. 지난해 2백37명에서 30명이나 증가한 수다. 피겨 스케이트를 배우려 실내 스케이트장을 찾는 어린이들은 김연아 선수가 시니어 세계 대회를 제패한 후 꾸준히 늘기 시작해 2배 가까이 증가한 곳도 있다.

제대로 된 피겨 전용연습장이 없어 대부분의 훈련을 외국에서 해야 하고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자비를 들여 훈련비를 내야 했던 비인기 종목의 설움이 가시고 있는 것이다.


‘피겨 여왕’으로 한걸음


‘피겨 요정’으로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김연아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13일부터 사흘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개최되는 2007~2008 ISU 피겨 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 2연패에 나서는 것이다.

그랑프리 파이널은 6개 그랑프리 시리즈 중 성적이 뛰어난 상위 6명의 선수만 출전하는 대회로 김연아와 함께 그녀의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가 출전을 준비 중이다.

김연아는 지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가진 인터뷰에서 “아사다 마오가 실수를 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확실한 ‘승리자’가 될 만발의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김연아가 ‘러시아컵’ 프리 스케이팅에서 받은 133.70점은 국제피겨연맹이 주관한 대회 역사상 최고의 점수다. 2007년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아사다 마오가 세운 종전 최고점 133.13점을 넘는 수치이기도 하다. 그랑프리 2·4차 대회 우승자인 아사다 마오보다 20.40점 높은 점수로 파이널 진출 티켓을 딴 것도 고무적이다.

빙상계는 김연아의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뿐 아니라 여자 싱글 사상 최초 200점대 기록까지 기대하고 있다. 2004년부터 채점 규정이 바뀐 현재 피겨 점수 체제에서 여자 싱글 선수가 얻은 최고 종합점수는 아사다 미오가 2006년 NHK트로피대회에서 기록한 199.52점이다.

이를 위해 김연아는 승리의 기쁨을 누릴 틈도 없이 그랑프리 준비를 위해 캐나다 토론토행 비행기에 올랐다. 11일까지 캐나다 토론토에서 마무리 훈련을 한 뒤 그랑프리 파이널이 열리는 이탈리아 토리노로 이동하게 된다.

대한빙상경기연맹 이지희 피겨 심판이사는 “김연아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내년 3월 세계선수권대회 우승까지 바라보면서 준비해야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 피겨 세계에서는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 우승자보다는 세계선수권대회 승자를 진정한 승자로 인정한다”고 못박았다.

그는 또 “피겨는 기록 경기가 아닌 만큼 이번 대회 결과에 자만하지 말고 세계선수권대회까지 체력을 유지하면서 기술을 보완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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