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은 잘 아는 바대로 출가와 환속, 성聖과 속俗의 경계에서 한참 방황했던 1958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이다..
그러한 삶과 문학의 방황은 노동열사 전태일의 죽음을 통해 염세적 죽음에 대한 집착을 돌이켜 마침내 역사歷史앞으로 돌아온 것이 일반적인 고은문학 전향론轉向論이다.
문인으로서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것은 그가 깨달은 자유는 바로 나와 너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것이다.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정의에 수용되지 않는 자유인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가 19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투옥되어 육군교도소에서 시작된 그의 만인보 구상은 출소 후 구체화되어 1986년 1,2,3집을 내면서 2006년 현재까지 20여년간 23집까지 나온 상태다.
고은은 1980년의 상황이 1세기의 전 비운의 민족사와 총체적 연장선에 있음을 간파하고 그의 리얼리즘적 상상력과 시적 재치로 한 세기의 민중사, 민족사를(어쩌면 인간사일지도 모른다)를 노래로 풀어내고 있다.
‘聖俗不可分’,‘歷史不可分’이 빚어 낸
만인공감萬人共感 서사 벽화 - 『萬人普』
너와 나 사이 태어나는
순간이여 거기에 가장 먼 별이 뜬다
부여땅 몇천 리
마한 쉰네 나라 마을마다
만남이여
그 이래 하나의 조국인 만남이여
이 오랜 땅에서
서로 헤어진다는 것은 확대이다
어느 누구도 저 혼자일 수 없는
끝없는 삶의 행렬이여 내일이여
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이다”
(고은, <만인보> 서시)
『만인보』는 이른 바 승자 중심, 영웅 중심의 역사 해석 속에 가려진 군상들을, 소위 민중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인 듯 그리면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노래를 만들어 내고 있다.
만인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역사의 전면에 있든지 아니면 그 이면에 가려졌든지 어느 누구라도 하나같이 그 나름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문학이 특히 시가 개인의 노래나 흥얼거림으로 끝나버린다면 그것은 이미 문학적 사회성이 지닌 놀라운 전이 기능을 간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인보는 거대담론을 수용하만한 철학적 자세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나의 이야기고 내 가족의 이야기고 내 이웃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만인보를 대하는데 누구도 자격시비에 걸리지 않는다.
고은은 죽은 꽃잎에 묻었던 홀씨에 생명을 불어넣어 역사의 지상으로 피워 올린 것이다. 많은 독자와 평자들이 이미 만인보에 대한 감동서설(感動敍說)을 토로한 바 필자는 18집에 나타난 만인 중에 전쟁 와중에 나타난 만인 몇 편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