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69) 현대·기아차 회장과 김승연(55) 한화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이 잇따라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아 사회봉사명령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1989년 소년법에 처음으로 도입된 뒤 1997년부터 성인 범죄자들에게도 적용된 이 제도는 지금까지 재벌 총수에게 선고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유명 연예인들에게는 종종 선고되어 복지단체 등에서 봉사하는 모습이 TV 브라운관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던 사회봉사명령. 그렇다면 사회봉사명령 제도는 과연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시사신문>은 최근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은 유명인과 함게 사회봉사명령 제도에 대해 살펴봤다.
범죄자의 교화 목적 강해
무보수, 연속 집행이 원칙
하루에 9시간 봉사 가능해
봉사이행 이후 계속되기도
사회봉사명령은 1989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됐으며 당시 1백21건에 불과했던 사회봉사명령은 지난 2005년 4만5천26건까지 꾸준히 늘다가 지난해 3만5천8백86건으로 소폭 감소했다.
이례적인 사회봉사명령

정 회장은 지난 9월6일 비자금 조성과 횡령 혐의 등으로 기소되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과 함께 이색적인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아 눈길을 끌었다. 서울고법 이재홍 수석부장판사는 정 회장에게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원 또는 다른 경제인을 대상으로 준법경영을 주제로 합계 2시간 이상 강연할 것 ▲국내 일간지와 경제전문잡지에 준법경영을 주제로 각 1회 이상씩 기고할 것 ▲피고인이 이 법정에서 공표한(향후 7년간 매년 1천2백억원 출연) 사회공헌약속을 성실히 이행할 것 등의 사회봉사를 명했다.
강연이나 기고 등은 예규에도 나와있지 않은 부분이었다. 때문에 법원 안팎에서 말이 많다. 전형적인 ‘유전무죄 무전유죄’ 식 판결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고 일각에서는 “매우 독특하고 창조적”인 판결이라는 견해도 있다. 결국 검찰은 지난 9월10일 정 회장의 사회봉사명령에 대한 법리판단 문제를 이유로 대법원에 상고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대법원의 결정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강연이나 기고 등의 계획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이로인해 대법원이 정 회장의 사회봉사명령에 대해 ‘문제없다’는 최종 결정을 내릴 경우에만 명령 이행이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2013년까지 매년 1천2백억원씩 총 8천4백억원을 사회에 출연하라는 명령은 현재 이행되고 있다. 지난 10월 해비치 사회공언문화재단을 발족하고 정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글로비스 주식 92만3천77주를 해비치 사회공헌문화재단에 증여한 것이다. 어찌됐든 정 회장은 대법원의 결정이 나는 대로 나머지 사회봉사명령을 수행해야할 단계에 놓여있다.
일반인 VS 유명인 다르지 않아
법원에서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할 때 대부분은 ‘사회봉사 ○○○시간’이라고만 선고하고 구체적인 분야나 방법은 법무부 산하에 있는 전국 44개의 보호관찰소가 정한다. 보호관찰소는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사람의 성별, 연령, 거주지, 보유기능, 신체조건 등을 고려해 앞서 말한 네가지 봉사 분야 가운데 한가지를 지정해준다. 영구 임대 아파트 도배, 복지 시설에서 청소, 빨래 봉사, 폭설 뒷수습 등 궂은일이 대부분이지만 사회봉사명령을 수행한 사람들의 80%이상은 자신의 봉사활동에 대해 보람을 느끼며 만족감을 표현했다.
최근에는 개개인의 특기와 적성을 살리는 등 봉사 분야가 다양해 지고 있으며 대리출석을 방지하기 위해 화상전화를 이용해 하루에 두 번 혹은 수시로 본인 출석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하루에 8~9시간 씩 연속적으로 봉사해야 하고 일정 연기 등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하지만 건강상의 이유나 생계의 이유라면 야간이나 공휴일 근무도 허용된다.
최근 법원에서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백시간을 선고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경우, 선고 직후 건강상의 문제를 이유로 사회봉사명령 이행시간은 3개월 정도 늦춘 채 일본으로 요양을 간 상태다.
서울보호관찰소 관계자는 “유명인의 사회봉사명령 선고로 많이 힘든 상태다. 언론의 매서운 눈초리 한 가운데 놓여 있는 것도 그렇고 개인의 신변을 보호해야하는 입장에서 김 회장의 개인적인 정보들을 알려주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재벌이나 유명인이라고 해서 특혜를 받지는 않는다. 우리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법을 집행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해진 절차와 규정에 따라 일을 진행한다. 김 회장의 경우 일단 일본에서 귀국한 후에 건강상태를 보고 파악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취재결과, 지난 8월 나란히 집행유예 판결과 함께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은 두 회장은 이후 대법원의 결정과 건강상태를 살펴봐야 사회봉사명령의 수행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봉사명령도 신식으로

사회봉사명령에 응하지 않아 세 번 이상 경고를 받으면 법무부에서 집행유예 취소 청구를 하고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면 다시 실형을 선고받게 되며 집행유예가 취소되지 않더라도 법원 결정이 나올 때까지 1~2주 가량은 구치소에서 보내야 한다.
경고조치를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지시불이행 등 봉사명령을 정상적으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를 들고 있으며 무단이탈과 불성실, 불량한 태도 등도 이에 해당한다.
서울보호관찰소 관계자는 “사회봉사명령을 수행한 80~90% 이상의 범죄자들이 봉사활동이 끝난 이후 봉사활동이 보람있다고 생각하고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자발적인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며 사회봉사명령제도의 장점에 대해 설명했다.
실제 지난 2003년 미성년 연예인 지망생과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16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배우 이경영(48)는 사회봉사의무기간 이후에도 자원봉사활동을 계속해 눈길을 끌었다.
이씨는 2002년 11월25일부터 한 달간 정신지체장애인 특수학교인 경기도 고양시 삼송동 명현학교와 성사동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장애인과 노인들을 대상으로 목욕봉사 등 16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이행했다.
이후 봉사활동을 멈추지 않고 틈나는대로 함께 사회봉사명령을 받아 활동하던 동료들과 명현학교를 방문, 장애어린이들의 학습지도에 나서고 있다.
마지막으로 서울보호관찰소 관계자는 “사회봉사명령이라고 하면 강제적인 성격 때문에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국민들이 많지만 이 제도는 국민을 위한 제도다. 유죄를 인정하되 수감시설에 갇혀 지내면 얻을 수 없는 감정적인 교화를 이끌어 낼 수 있고 스스로 지은 죄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 재범을 방지하는 등의 효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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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명령제도는…
사회봉사명령은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되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범죄자에게 봉사를 통해 속죄할 기회를 주는 것으로 실형을 선고하는 것은 가혹하고 집행유예로 풀어주기에는 마땅치 않은 경우에 택하는 교화의 한가지 방법이다.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은 범죄자는 10일 이내에 관할 보호관찰소에 사회봉사명령 신고를 해야 하며 보호관찰소의 사전교육 이후 집행명령서가 도착하면 사회봉사가 시작된다.
사회봉사명령은 ‘무보수 강제노동’이 원칙이다. 일정시간 동안 무보수로 사회에 유익한 근로 봉사를 통해 범죄에 대한 처벌과 함께 피해자에 대한 배상, 속죄의식을 유도하는 교육적 효과 등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법에는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경우에는 사회봉사를 명할 수 있다’고만 돼 있을 뿐 구체적 내용은 규정돼 있지 않다. 대법원 예규 7조는 사회봉사명령의 예로 ▲자연보호 ▲복지시설 및 단체봉사활동 ▲공공시설 봉사활동 ▲대민지원 봉사활동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