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햇살에 신비로운 광채 발하는 백발
쏟아지는 햇살에 신비로운 광채 발하는 백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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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젊음의 광장 3



누군가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홍 교수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박찬우 교수였다. 그의 백발이 햇살을 받아 신비로운 반사광을 발하면서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 표정이 쓸쓸하다기보다 그의 분위기가 오히려 더 쓸쓸하다고 보는 것이 어울리는 표현이리라. 학내에서 홍 교수가 그래도 호의를 가지고 지내는 몇 안되는 교수 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신비롭고 젠틀한 사람인 것 같다.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누어본 적은 없었으나, 서로들 호의를 가지고 있음에는 틀림없었다.

무엇보다도 박찬우 교수의 남같지 않은 인생편력을 홍 교수는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때는 홍 교수도 그의 그런 인생역정을 아주 나쁘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이상하게도 그것이 그렇게 나쁘게 생각되지를 않았다. 하지만 학내에서는 여전히 그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따지고 들어가 보면, 박 교수에게 부정적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은 학내에서 교수진, 그것도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다. 학생들 측에서는 그에 대하여 굳이 부정적이지 않다. 그럴 수도 있다는 태도이다.

좌우간 홍 교수는 박 교수의 그 특이하고도 끔찍스런 인생유전을 왠지 나쁘게 보지 않게 된 자신을 깨닫고 있었다.

그는 몇 해 전에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자살했었고, 그런 일이 있은 후 일년여의 세월이 흐르고 난 뒤, 자신이 데리고 있던 조교와 재혼하였으나, 일년이 채 되지 못하여 헤어지고 말았다.

몇 줄의 글로 간단히 묘사되어지는 그의 인생편력이었으나, 당사자들이 겪은 여러 가지 내면적 외면적 고통이야 어찌 쉽게 표현할 수가 있겠는가.

사람의 일생이란 긴 것 같지만, 몇 고비 사건을 치르고 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힘이 빠져 버리고 늙어 버리는 것이다. 박찬우 교수에게도 요즈음 늙음이 완연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백발은 한결 신비롭게 비치는 것이었다.

"아이구, 홍 교수님, 길고 긴 겨울방학 잘 지내셨습니까?"

박찬우는 가벼운 발걸음을 내쳐 옮겨 놓으며 인사를 했다. 그의 태도와는 달리 목소리는 잠겨 있었고, 표정은 밝지를 못했다. 그것은 어느면 찌들어 있기도 했다.

식사를 잘 담은 식판을 들고 잠시 주춤거렸다. 홍 교수에게로 다가오기가 조금은 쑥스러운 듯했다. 사실 그럴 이유란 조금도 없는데도 말이다.

"박 선생님, 이리루 오세요."

홍 교수는 그에게 용기를 주고자 한마디 던졌다.

"아, 네."

그제서야 그는 쓸쓸한 미소를 흘리면서 홍 교수 맞은편으로 다가왔다. 그의 백발에 햇살이 내려와 신비로운 광채를 내며 반사되었다. 출렁거리는 백발을 이고 있는 얼굴은 핼쑥하게 느껴졌다.

맞은 편에 앉은 박 교수에게는 이상하게도 알 수 없는 경련이 이는 듯했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너무 긴장한 탓인 듯했다. 이 사연 많은 사람은 어떻게 지낸 것일까.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면서 식당이나 다방을 기웃거리며 지냈겠지. 쏟아지는 햇살에 신비로운 광채를 발하는 그이 백발이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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